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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만성 Apr 17. 2024

꼭 백 번째

먼저 사랑하고 더 나중까지 지키는 길을 걷기 위해...

    

  ‘너는 있어야 해/ 처음 만날 때처럼/ 그렇게 그 자리에/ 너는 있어야 해/ 오늘이 꼭 백 번째/ 그 자리에 나는 가네/ 그동안 익숙해진 / 외로움을 달래며/ 네가 떠난 뒤/ 비도 내리고/ 많은 연인들/ 다녀갔지만/ 애 타는 그리움 받쳐 들고/ 나처럼 서성이는/ 사람은 없었다’     

   나의 18번인 김태곤의 1집 앨범에 실린 ‘꼭 백 번째’의 가사이다. 18번은 우리의 판소리 마당극과 비슷한 일본의 가부키 배우였던 이치카와 단부로가 1840년 자신이 출연했던 극 중에서 걸작 18편을 선정 발표했는데, 이것을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것 = 18번’이라고 말하기 시작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우리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 문화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된다. 몰랐을 때는 18번이라고 쓰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유래를 알고 보니 썩 내키지 않는다. 하여 문장을 바꾸어 본다.


  나의 애창곡은 김태곤의 ‘꼭 백 번째’이다. 나는 이 노래를 중학교 3학년 때 형과 누나가 즐겨 듣던 카세트테이프에서 운명처럼 조우했다. 중학교 3학년은 변성기가 시작되고, 수염이 돋아나며, 소위 2차 성징이 울근불근 몸과 마음을 지배할 때이다. 그 시점에 나는 이 노래에 푹 빠져서 제목처럼 꼭 백 번 이상을 들었다. 카세트테이프를 되감아가며 가사를 적고 따라 부르기를 반복했다. 노래를 잘하지 못했지만 남 앞에서 노래 한 두 곡 쯤은 멋들어지게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꼭 백 번 째’가 내가 멋들어지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되었다. 그 후로 나는 울적할 때, 흥이 날 때, 나서서 노래를 부를 때, ‘꼭 백 번째’를 불렀다. 수없이 부르다보니 어떤 상황에서도 부를 수 있는, 몸이 기억하는 노래가 되었다.


  2022년 오랫동안 도전했던 신춘문예에서 나의 소설이 당선되었다. 소설을 쓰는 것은 외롭고 힘겨운 일이었으나 기꺼이 마주하고픈 고독과 고통이었다. 신춘문예 당선 후 그동안 썼던 작품을 모아 2023년 12월에 첫 소설집을 발간했다. 소설집을 발간하고 보니, 여기저기서 출판기념회를 해야 한다고 성화였다. 부끄러움도 있었지만 세상으로 나가 자기의 운명을 개척하고 있는 내 소설에 대한 응원차원에서 출판 기념회를 계획했다. 

  막상 출판 기념회를 하려고 보니 이것저것 걱정이 앞섰다. 남들의 출판기념회를 엿보면서 준비하는 과정에 문득 나의 애창곡이 떠올랐다. 습관처럼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나는 꽝하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세상에나! 중학교 3학년 때 운명처럼 조우한 ‘꼭 백 번째’라는 노래가 나의 애창곡이 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네가 떠난 뒤 비도 내리고 많은 연인들 다녀갔지만 애 타는 그리움 받쳐 들고 나처럼 서성이는 사람은 없었다’는 구절이 나의 소설의 주제이며 소재였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이든, 조직이든, 사물이든 먼저 사랑하고 더 나중까지 지키고픈 사람이었다. 그런 정서가 직장생활과 인간관계에서 항상 나를 들쑤셨고 자극했다. 먼저 다가가고 할 수만 있다면 더 나중까지 지키는 자리에 서고 싶었다.   

   

   먼저 사랑하고 더 나중까지 지키는 사람이 드문 요즘이다. 그런 사람이 오히려 호구나, 바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먼저 사랑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나중까지 지키려면 인내와 이해가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 내면이 탄탄하지 않으면 먼저 사랑하고 나중까지 지키는 고독을 견뎌낼 수 없다. 언제부턴가 우리 주위에는 먼저 사랑했다가 쉽게 떠나거나, 나중에 사랑했다가  금방 떠나버리는 관계가 비일비재하다. 감정에 충실하고, 속도에 반응하는 시대에 딱히 그것을 탓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먼저 누군가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며, 그 사람이 더 나중까지 자기를 이해하고 지켜주기를 바란다.   

  

  나를 사로잡는 것이 곧 내가 가고 싶은 길이다. 그걸 안다는 것은 좀 더 내 삶을 의미 있게 꾸릴 수 있는 방법이다. 애창곡은 나를 사로잡고 있는 무의식의 발로였다. 나는 출판기념회에서 작가의 말을 이 애창곡으로 대신했다.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근엄한 작가의 말을 기대했는데, 노래라니... 그러다 잠시 후 여기저기서 박수로 박자를 맞춰주었다. 웃음소리가 커지면서 마지막엔 환호가 나왔다. 모두가 나의 속마음을 눈치 챈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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