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소감과 심사평 그리고 작가의 말
<당선소감-2022 전라매일 신춘문예>
오랫동안 소설가를 꿈궜다. 19살에 첫 신춘문예투고를 했으니, 올해로 34년의 시간이 흘렀다. 간간히 투고를 쉬었던 시간도 있었지만 매년 우체국에 들러 신춘문예에 응모 후 마감했던 나의 12월의 정례행사를 이제 마치게 되어 시원섭섭하다.
무엇이 그 긴 시간을 소설의 곁에서 서성거리게 했을까? 아마도 나의 내면을 좀 더 들여다보고픈 욕망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도 알 수 없던 나에 대한 탐구가 세상과 타인으로 확장되었다. 어느 사이 내 안 깊은 곳에서 이야기가 꿈틀거렸다. 처음엔 나의 이야기였으나 시간이 흐르자 그것은 너의 이야기였고, 그의 이야기 거나 우리의 이야기가 되기도 했다. 이제,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예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 기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리고는 더 사랑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심사평- 김명희 소설가: 작품 전반에 깊은 사유의 흐름 깔려>
<골드>와 <상실의 벽>을 두고 한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골드>에 낙점을 찍었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장,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주제, 그것들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는 저력이 있었다.
작품 전반에, 깊은 사유의 흐름이 배어 있다. 이만하면, 문장과 주제와 작가의 자기 생각을 보자 ㅎㅆ던 심사의 취지는 충족된 셈이다. 축하를 보내며, 앞으로 더욱 정진해 주시기를 기대한다.
<작가의 말- 등단 후 첫 창작집{보스를 아십니까]를 발간하며 쓴 글>
고등학교 졸업반 때 첫 소설을 써서 신춘문예에 투고했다. 문학청년이 된 것이다. 돌아보면 그때 나는 삶과 죽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한 실존의 육체가 사라지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어떤 계기였는지도 모르게 나는 죽음의 문제에서 벗어났다. 해답을 찾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고민이 소설을 향한 동경과 소설가에 대한 꿈으로 변했다. 딱히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국어과목을 좋아했다. 고전문학에 실린 월명사의 제망매가를 지금까지 고전체로 다 암기하고 있는 걸로 보아 나는 문학작품을 통해 세상을 읽는 법을 배운 것 같다.
국문학과와 신문방송학과 진학을 두고 고민하다가 기자가 되면 다양한 분야의 취재를 통해 통찰력 있는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신문방송학과를 선택했다. 전남대신문이 주최한 오월문학상에 [소떼의 반란]이 당선되어 첫 당선소감을 썼다. 첫 문장이 ‘너희들 이제는 다 죽었어. 나 소설 쓴다고~’였다. 다 죽일 너희들은 누구였을까. 그런 오만한 자신감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사라졌을까.
오십 중반에 이르러 희끗한 머리 올 올리며 광주의 무등산을 올려다보았다. 무등산이 물었다.
“그대, 등 위에 잘 올랐는가?”
무등산은 등위가 없어서 무등산이다. 나는 젊은 날 어떻게든 등위에 오르려고 있는 힘을 다해 정상을 향해 걷고 뛰고 때론 기었음을 고백해야겠다.
대학졸업과 동시에 금융회사에 입사해 지금껏 생활을 좇았다. 빠르게 돌아가는 자본주의 첨병인 직장에서 소설은 가끔 생각나는 첫사랑 같은 존재였다. 그립고, 아쉬웠으나 곁에 두지 못했다. 쓰지 못했으니 당연히 가슴 뛸 일이 없었다. 직장생활 12년 차에 심하게 앓았다. 말하자면 번아웃증후군에 감염되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소설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가슴이 조금씩 다시 뛰었다.
꾸준히 신춘문예와 문학상에 도전해 2012년 중소기업청과 KBS에서 주관한 근로자문화예술제 소설 부분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투자군상을 다룬 소설 [서킷브레이커]로 금상을 수상, 태국여행을 다녀왔다. 이후 몇 번 신춘문예 최종심에 올라 한 줄 평을 얻었으나 당선되지 못하다가 2022년 전라매일 신춘문예에 소설 [골드]가, 2023년 전남매일에 소설 [보스를 아십니까]가 연이어 당선되어 등단했다.
등단하고 나서 나는 첫 당선소감을 썼던 기억을 떠올렸다. 더 이상 죽일 대상은 없었지만 잠깐 동안 나의 글이 누군가를 살리면 좋겠다는 꿈을 꿨다. 한국소설가협회와 작가회의에 가입하고, 본격적으로 소설 집필에 몰두했으나 어디서도 청탁이 없었다. 2년 연속 신춘문예에 당선한 이력이 있는데, 청탁하나 없는 현실에 주눅 들기도 했다. 소설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고, 현실이 소설 같은 시대에 소설가의 자리는 딱히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나는 한 문장을 떠올린다. ‘작가의 손을 떠난 소설은 저만의 운명을 갖는다.’ 운명에 대해서는 내가 간여할 부분이 아니다. 나는 일단 쓰고, 나를 떠난 글은 자신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문학을 꿈꿨던 소년이 마음에서 일어난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기어이 소설이란 불꽃을 피운 기나긴 세월의 이야기를 창작집으로 묶어 세상으로 보낸다. 처음엔 나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것은 너의 이야기였고 때론 그의 이야기 거나 우리의 이야기가 되기도 했다. 이제 좀 더 많은 분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고 더 사랑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무등산의 질문에 나는 이 작품집으로 답하고자 한다. 등위에 오르지 못했지만 나는 소설을 썼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