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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그 가치는 도대체 누가 정하는 겁니까?

by 김만성

“피해차주입니다. 내 차는 비록 18년 된 차지만 바로 어제까지 멀쩡하게 아무 문제없이 잘 운행되던 차입니다. 내가 가해자도 아닌 피해자입니다. 사고가 나기 전의 상태로 되돌려만 주면 됩니다. 나는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젊은 친구가 내비게이션을 보다가 사고를 냈다고 증언했지 않습니까? 내 차와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그냥 사고가 나기 전의 상태로 되돌려만 주면 됩니다. 내가 피해자인데 그게 그렇게나 무리한 요구입니까? 왜 내게 돈을 내라 마라 하는 겁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골드, 아니 내 차의 가격이 248만원이라니요. 그 가치는 도대체 누가 정하는 겁니까? 나의 추억, 나의 소망, 나와 골드의 대화, 골드의 심장소리 그 모든 것들에 누가 값을 그 따위로 매긴 겁니까? 다시 말하지만 골드를 사고 나기 전의 상태로 그대로 복원해서 내 앞에 갖다 놓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뭔 짓을 할지 모릅니다. 내가, 내차 골드가 피해자란 말입니다.”

상대방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나는 나오는 대로 말을 쏟아냈다. 수화기 저 편에서 아무 말이 없었다.


인사과에서 면담요청이 들어왔다. 장기 승진누락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는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대강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갔다. 나는 바쁜 일처리가 있다며 면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후 반차를 내고 나는 골드가 견인된 자동차공업사로 향했다.

어제 내가 가입한 보험사의 전화를 받았다. 교통사고가 접수되었는데, 상대보험사에서 9대1로 사고처리를 하겠다고 통보가 왔는데 그렇게 해도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상황을 설명하고, 상대방이 100% 과실이 아니냐고 물었다. 내 보험사 직원은 난처한 듯 잠시 머뭇거렸다. 사고 당시에 왜 전화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사고당시를 떠올렸다.

젊은이가 맞은편에서 뛰어나와 머리를 곧바로 조아렸다. 연신 미안하다며, 자기가 미처 앞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친 데는 없느냐며 자기가 모두 책임지겠노라고 했다. 젊은이의 차는 보기에도 출고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차였다. 동그라미 네 개가 균등하게 잇대어진 엠블럼이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골드도 나름대로 제 색을 튕겨내고 있었지만 범퍼가 형편없이 찌그러져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였다. 곧이어 젊은이가 가입했다는 보험사 직원이 나타나더니 상황을 정리했다. 자기 측 운전자가 가해차량이니 보험을 통해 모든 것을 복원해 주겠노라고 했다. 병원에 입원하라는 말까지 덧붙이고 나서 내 차의 연식을 물었다. 나는 18년이 되었노라고 말했다. 그 때 젊은 운전자도 보험사 직원도 얼핏 웃는 것 같았다. 넋 나간 사람처럼 기운이 빠져 있는 나를 바라보며 아는 공업사가 없으면 자기네와 협약을 맺은 1급 정비공업사로 차를 견인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골드에게서 십자가 펜던트를 꺼내 양복 안쪽 호주머니에 넣었다. 이 차는 내게는 아주 오래되고 소중한 차니 잘 고쳐달라고 말했다.

나는 사고당시의 상황을 보험사 직원에게 말했다. 전화를 걸만한 상황이 아니었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노라고 했다. 직원이 길게 한 숨을 쉬었다.

“고객님! 상대편 차가 갓 출고한 새 외제차량입니다. 교통사고는 아무리 해도 100%과실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9대 1이라 해도 그 차 수리비용이 1000만 원 이상이 나왔답니다. 고객님 차는 연식이 오래되어 차량가액이 낮습니다. 오래된 차라 부품 구하기도 쉽지 않고, 제대로 고치려면 고객님 차량 가액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나옵니다. 보험사에서는 차량 가액만큼만 보상하게 되어 있습니다. 일단 고객님 차를 가서 보시고 폐차를 하시든지, 아니면 중고부품으로라도 저렴하게 고쳐달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먼저 가서 봤는데, 차라리 폐차하고 이번에 새로 차를 구입하시는 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아! 참고로 상대차량 수리비가 많이 나와서 내년부터 고객님 보험료가 할증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9대 1이라지만 외제차와 부딪히면 참 재수 없는 경우지요. 사고 당시에 저희를 불렀으면 그 자리에서 어떻게 조정을 해봤을 텐데 아무튼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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