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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Jan 08. 2024

아이에게 처음으로 화를 내고 말았다

아빠가 미안해

둘째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여태 그렇게까지 강하게 아이들에게 화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아이들에게 항상 다정한 아빠가 되고 싶었는데.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지 말자고 매번 다짐했는데.


아내가 회사 송년회로 늦게 집에 온 날이었다. 복직 시기가 연말이다 보니 여러 회식이 줄지어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가 늦는 날 걱정되는 건 딱 한 가지, 아이들을 재우는 일이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엄마 없이는 잘 잠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혼자 아이들을 재운 적이 열 번쯤 있었는데 재우기에 성공한 적은 딱 한 번이었다.


복직 후 첫 회식날에는 아내가 오기 전에 아이들을 재울 수 있었다. 특별히 무엇을 잘했던 게 아니라 아이들이 너무 피곤해서 쓰러지듯 잠든 것뿐이었다. 두 번째 회식날인 이번 밤도 부디 지난밤과 비슷하게 흘러가기만을 바랐다.




오후 네시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왔다. 두 시간 정도 신나게 놀아주고 미리 준비해 둔 저녁을 차려 먹었다. 한 명씩 차례대로 씻기고 설거지를 한 뒤 좀 더 놀아주는데 아이들이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몇 번 하품 좀 했다고 괜히 재우려다 고생한 적이 여러 번이라 이번에도 아이들이 쉽게 잠들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아홉 시쯤 침대방에 들어왔지만 최소 두 시간 정도는 더 놀아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들과 침대 위에서 여러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책 여러 권을 읽어주고 병원 놀이도 하고, 불을 끈 채 그림자놀이도 하고 창 밖에 지나가는 비행기도 찾았다. 밤 열 시가 지나자 나도 점점 피곤해졌고 아이들은 과하게 웃고 큰 소리를 내며 흥분한 상태가 되었다. 자야 할 시간이 지났을 때마다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엄마를 기다리며 인형놀이를 하는 아이들


그 순간 혼자 한 번 재워볼까 하는 욕심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이제 자자고 말하며 잘 때 매일 듣는 클래식 음악을 틀고 양쪽 팔에 한 명씩 누였다. 이십 분 정도 지났을까. 첫째는 계속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고, 둘째는 계속 로봇 변신 놀이를 하면서 몸동작이 점점 과격해졌다.


거의 열 한시가 되었을 무렵, 침대 위에서 몸을 던지며 장난치던 둘째가 난데없이 누나의 다리를 깨물었다. 무는 모습을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첫째의 큰 비명 소리로 얼마나 세게 물렸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아들의 양팔을 꽉 잡으며 소리치고 말았다.


“OO, 아빠가 하지 말라고 했지!”


거의 일곱 시간 가까이 아이들을 돌보며 나도 지쳤던 걸까. 누나를 무는 모습에 화를 참을 수 없었던 걸까.




서너 달 전쯤, 둘째가 처음으로 누나를 깨문 적이 있었다. 그런 비슷한 행동을 전혀 한 적이 없었는데, 거실에서 잘 놀다가 누나가 엄마 품에 안기자 갑자기 누나 팔을 물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이집에서도 친구를 깨물고 말았다.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친구와 장난감을 서로 갖고 놀겠다고 밀고 당기다가 둘째가 친구의 팔을 살짝 물었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아이의 돌발 행동에 당황했고 우리 아이가 앞으로 괜찮을까 걱정이 되었다.


둘째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건지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몇 가지 가설을 떠올릴 수 있었다. 18개월 차를 지나며 자아는 강해진 반면 의사 표현 능력이 아직 부족해서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걸까. 어린이집 선생님이 바뀐 지 얼마 안 되어 적응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은 걸까. 기질적으로 성격이 약한 편인 아이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을 표현한 걸까. 그럴듯한 추측을 여럿 내놓을 수 있었지만 어떤 게 진짜 원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이의 행동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도 많이 알아보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누나를 때리거나 물었을 때 단호하게 훈육한 후 일부러 누나를 계속 보살피는 모습을 보여주고, 친구와 불편한 상황이 있을 때 해야 할 말과 행동을 알려주고, 간단하지만 자주 쓰는 여러 표현을 연습시키고, 바른생활을 알려 주는 그림책도 여러 권 사서 읽어주고, 등원할 때나 잠들 때 아이에게 남을 아프게 하면 안 되고 친구들과 잘 놀아야 한다고 긴 이야기를 해주었다. 무엇보다 혹시 아이가 불안감을 느껴서 그러는 건 아닐까 싶어 더 자주 안아주고 더 자주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여러 방법을 계속 시도했지만, 둘째의 돌발 행동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보름 정도 아무 일 없이 잘 지내다가, 또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친구를 물고 오고 비슷한 시기에 누나를 때리거나 무는 식이었다. 그렇게 세 달 정도의 시간 동안 어린이집에서 친구 네 명을 물었다.


첫째도 어린이집에서 여러 차례 친구들에게 물려온 적이 있었다. 우리 아이가 물려왔을 땐 아이에게 괜찮다고 다독여 주었을 뿐 우리 아이를 문 친구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둘째와 같은 반 친구 중에서도 다른 아이들을 심하게 무는 아이가 있다는 말도 들었지만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리 아이가 무는 아이가 되자 생각이 달라졌다. 아직 어린아이들끼리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다른 아이들에게 아픔을 주었다는 미안한 마음이 계속 들었고, 선생님들과 반 친구 엄마들이 우리 아이를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로 본다는 사실이 계속 신경 쓰였다. 물린 친구들에게 사과의 선물을 사주고, 반 친구들에게 사탕과 장난감을 나눠주게 해도 마음의 짐은 줄어들지 않았다.


어느 날, 어린이집 둘째 반 엄마들이 둘째와 우리 부부의 육아에 대한 험담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과한 반응에 상당히 화가 났고 한 편으로는 이런 상황 자체가 서글펐고 둘째가 안쓰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일들로 인해 나는 둘째의 무는 행동에 극도로 예민해지게 되었다.




다행히 둘째가 두 돌이 된 무렵인 작년 11월 정도부터 무는 행동이 돌연 사라졌다. 역시 정확한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그 무렵 어린이집 선생님이 다시 바뀌었는데 이번에는 아이와 잘 맞는 것 같았고, 아이도 입이 트이기 시작해서 간단한 표현을 잘하게 된 덕분인 것 같았다. 집에서도 누나와 전혀 다투지 않았고 누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잘 놀게 되었다. 역시 무는 이유에 대한 우리의 추측이 맞았던 것이고 이제 문제가 다 해결되어 돌발 행동이 완전하게 사라진 줄로 믿었다.


무탈한 날이 한 달 넘게 계속되자 마음속 염려가 거의 사라졌는데, 갑자기 그날 밤 누나를 물었던 것이다.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서 허탈한 마음이 들었던 걸까. 무는 행동에 대한 예민함은 아직 남아있던 걸까.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아빠가 화를 내자 둘째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서러움이 차올랐다. 항상 웃으며 대해주던 아빠의 처음 보는 모습에 둘째는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 침대 위에 누워 자지러지게 울며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고 바로 아이를 들어 품에 안고 화내서 미안하다고 말하며 달래주었다. 첫째는 아픔을 참으며 아빠의 눈치를 봤고, 둘째는 한참 동안 목이 메일 정도로 울며 얼굴이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었다.




아이를 달래는 동안 내 머릿속은 후회와 자책이 가득했다. 그렇게까지 소리칠 건 없었는데, 단호하게 훈육하는 정도로 끝냈어도 괜찮은데, 더 주의해서 누나 쪽으로 못 가게 막았어야 했는데, 괜히 재우려고 하지 말고 앉아서 더 놀아주었어야 했는데, 자라면서 봤던 내 아버지의 모습처럼 되고 싶지 않았는데. 여태까지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대했던 모습이 다 물거품이 된 건 아닐까. 아들에게 한 순간의 잘못으로 아빠에 대한 트라우마를 심어준 것은 아닐까.


둘째의 울음이 겨우 잦아들자 그제야 첫째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꽤 깊게 자국이 패인 걸로 봐서 상당히 아팠을 것 같은데, 딸은 오히려 자기는 괜찮다며 아빠에게 화내지 말라며 웃음을 보였다. 내가 피곤한 만큼 아이들도 피곤했을 텐데, 흐느끼는 둘째와 애써 웃는 첫째를 보며 한 번만 더 참을 걸 하는 괴로운 마음이 들었다.


미안한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며 두 아이를 추슬러 함께 누웠다. 첫째는 괜히 재밌는 이야기를 한다며 나름대로 우스운 이야기를 꾸며냈고, 둘째는 계속 코를 훌쩍이며 아빠의 팔을 베고 누워 있었다. 두 아이 사이에서 나는 속으로 울며 나는 내 아버지와 같지 않다고, 앞으로 절대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겠다고 되뇌었다.


열한 시 이십 분쯤, 드디어 아내가 집에 돌아왔다. 둘째는 서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엄마의 품에 안겨 다시 훌쩍였다. 엄마와 함께 침대에 누운 아이들은 오분도 되지 않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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