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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Jan 01. 2024

서로를 비추는 아빠와 아이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이유

아내가 복직한 지 한달이 지났다. 해가 바뀌어 첫째 딸은 다섯 살이 되었고, 둘째 아들은 어느덧 두 돌이 갓 지난 세 살이 되었다. 퇴사 후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돌보다 보니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성격이 어떻게 변하는지, 어떤 특성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내 어릴 적 모습을 발견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는 생각을 한다. 외모와 성격, 기질까지 아이들은 거울처럼 부모를 닮아 태어나고 부모가 하는 말과 행동을 거울처럼 보며 자란다.


두 아이 모두 나와 아내의 여러 면을 고르게 닮았지만, 딸은 특히 내 성격을 많이 닮았다. 나와 비슷한 내향적이고 예민한 면을 볼 때면 마음이 복잡하다. 그런 성격의 장단점을 잘 알기에 세심하게 신경 쓰며 긍정적인 정서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민한 성격이 훗날 장점으로 발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디 나처럼 속앓이 하며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신나는 매일 아침 등원길




딸은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심하게 짜증을 내고 작은 자극에도 과한 반응을 보이는 편이다. 어떨 때는 몸에 힘을 꽉 주면서 분노한 사람처럼 괴성을 지른다. 그럴 땐 온갖 방법으로 달래 보고 어쩔 수 없이 혼내 보기도 하지만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몇 달 전 어느 날, 별 거 아닌 일로 계속 심하게 짜증을 내는 딸이 이상하게 처량해 보였다. 이 작은 아이가 얼마나 예민하면 이렇게 악을 쓰는 걸까.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민서야, 괜찮아. 민서가 생각하는 거보다 세상 일 다 괜찮아. 짜증 내면 민서가 더 힘들어져. 그냥 숨 한 번 깊게 쉬어봐” 아이가 달라지기를 바라고 말한 건 아니었다. 그저 어릴 적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해준 것뿐이었다.


며칠 후, 아내가 방에서 둘째를 먼저 재울 때, 거실에서 딸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밤 10시가 다 되어 피곤하고 졸린 딸은 또 떼를 쓰고 짜증을 내려하였다. 그때 아이가 말했다. “아빠, 아빠가 다 괜찮다고 했어. 나 깊게 숨 쉬어 볼게.” 내 말을 그대로 기억하다니. 딸은 계속 혼자 감정을 조절해 보려고 노력했고 그날 밤 한 번도 짜증을 내지 않고 잠에 들었다.




눈 쌓인 길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지!


거울처럼 나를 닮아 태어난 딸이 내가 한 말을 거울처럼 보고 배운다. 내가 아이들 앞에서 보여주는 모든 말과 행동을 아이들이 보고 기억하고 따라 했던 걸까. 부모는 아이들에게 가장 큰 세상이자 아이들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인 걸까. 나는 그동안 아이들에게 무엇을 비춰주는 거울이었을까.


아이들에게 투명한 거울이 되어 주고 싶다. 아이들이 아빠를 통해 세상과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좋겠다. 언젠가 아이들도 스스로 세상을 배우고 성장해 나가겠지만, 있는 그대로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는 다정한 마음을 심어줄 수 있는 투명한 거울이 되고 싶다.


내가 아이들에게 거울이 되는 것처럼 아이들도 나에게 거울이 되어 준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 속에 내 모습이 있는지 또는 없는지 살펴보게 된다. 아이들에게 대한 책임감이 커질수록 더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좋은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커진다. 결국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삶의 이유가 가만히 나를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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