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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Dec 18. 2023

엄마 어디 갔어?

엄마 회사 가지 마!

가족 모두를 위하여 주말에는 집에서 편안히 시간을 보냈다. 몇 년 만에 출근한 아내도, 엄마 없는 아침을 처음 겪어본 아이들도, 알게 모르게 꽤 긴장했던 아빠도 휴식이 필요했다. 아이들은 주말 내내 평소보다 더 엄마에게 달라붙었다. 부디 아내의 첫 출근일처럼 이번 주에도 평화로운 아침과 여유로운 낮 시간이 찾아오기만을 바라며 잠에 들었다.


월요일 새벽, 둘째는 일찍 잠에서 깼다. 아내는 다섯시 반쯤 집에서 출발했고, 둘째는 그 후로 뭔가 불안했는지 계속 끙끙대며 뒤척거렸다. 옆에서 등을 토닥토닥해 주며 다시 잠들기를 바랐지만, 금방 잠에서 완전히 깨어버렸다.


일찍 깨더라도 울지 않고 잘 있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그저 일찍 일어난 아침 중 하나로 남았겠지. 이런 아빠의 바람을 알아주면 좋으련만, 둘째는 큰 소리로 울며 엄마를 불렀다. 이제 말이 트이는 중인 둘째는 그 외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역시 엄마를 찾는구나. 첫날은 그저 운이 좋았던 거구나. 잠시 어찌 할 줄 몰라했지만 아빠도 그동안 육아를 대충 하진 않았다. 괜찮을 거라고 속으로 되뇌며 그동안 아이들에게 효과가 좋았던 방법들을 하나씩 시도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품에 꼭 안아주고, 안은 채로 등을 토닥토닥하며 천천히 흔들어주고, 쉬하는 소리를 내며 “괜찮아 괜찮아 아빠 있어 괜찮아”라고 반복해서 말해주었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둘째의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거실로 나가서 불을 켜고 달래도, 좋아하는 공룡 장난감을 보여 주어도, 신나는 동요를 틀고 같이 따라 불러도, 욕실에서 좋아하는 물장난을 시켜줘도, 창밖 어두운 골목길을 보며 지나가는 차를 가리켜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고작 삼십 분 정도 흘렀을 텐데 하루가 다 간 듯했다. 내가 힘들어하면 아이도 더 힘들 걸 알지만, 조금씩 지쳐갔다.




둘째의 울음소리가 윗집 사람들을 깨울까 걱정될 때 쯤, 첫째가 갑자기 거실로 뛰어나왔다. 진짜 큰일 났다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의젓한 첫째는 동생을 달래며 울지 말라고 말했다. 물론 둘째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지만, 첫째의 말에 위로받고 다시 힘을 낸 건 아빠였다.


아빠와 누나가 계속 힘을 합쳐도 둘째의 울음은 이겨내지 못하였고, 결국 마지막 남은 해결책은 엄마였다. 실은 알고 있었다. 엄마랑 영상 통화를 하면 아이가 울음을 그칠 거란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혼자 달래 보고 싶었다. 아이들을 혼자 잘 돌볼 거라는 각오였고, 힘든 첫날부터 아내에게 기댈 수 없다는 의지였다.


아내가 회사에 도착한 시간이 되어 체념한 채 영상 통화를 걸었다. 다행히 아내는 바로 전화를 받아주었고, 둘째는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울음을 그쳤다. 손에 힘이 쭉 빠졌다. 이렇게라도 괜찮아진 게 다행이지. 엄마와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두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둘째는 엄마에게 애교까지 부리며 까르르 웃었다.


엄마와 영상통화 하는 아이들


충분히 괜찮을 만큼 통화한 후 전화를 끊었다. 누나랑 장난을 치고 있는 둘째를 다리에 앉혔다. “괜찮아 우리 아들? 왜 울었어?” 둘째는 입을 오물오물 우는 척하며 대답했다. “엄마가 없어서.” 그랬구나 우리 아들. 엄마 없으면 울고 싶구나. 이제 좀 큰 줄 알았는데 아직 엄마가 필요하구나. 아빠가 더 잘 달래주고 싶었는데 미안하구나.


그날 오후,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둘째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엄마 어디 갔어?”라고 순진하게 묻더니 “엄마 회사 갔어?”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내는 해가 지기 전 집에 돌아왔다. 아이들은 몇 년만에 만난 사람처럼 반갑게 뛰어가 엄마의 발 한쪽씩을 잡았다. 아이들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는 아내의 얼굴에는 반가움과 미안함이 섞여 있었다. 오늘 둘째가 한 말들을 아내에게 말해줘야 할까 고민되었다.


밤에 다 함께 누워 있는데 엄마 품에 안긴 둘째가 갑자기 말했다. “엄마 회사 가지 마!”


아이들을 재우고 아내와 나는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 서로의 하루를 물었다. 아내에게 둘째가 한 말을 전해주었다. 아내의 얼굴에 대견함과 미안함이 섞여 있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둘째는 일찍 깨서 엄마를 울부짖었다. 아내가 나간 지 삼십 분쯤 된 여섯 시경에 꼭 잠에서 깼다. 울면서 “엄마 어디 갔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역시 어떤 방법도 둘째를 달랠 수 없었다. 아빠는 욕심을 내려놓고, 오래 울리지 않고 아내를 찾았다.


앞으로 이렇게 흘러갈 것 같았다. 첫째는 평소처럼 잘 자고, 둘째는 울며 일어났다가 엄마 얼굴 보고 바로 괜찮아지고. 이렇게 몇 주 반복하다 보면 괜찮아질 것 같았다. 육아는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나는 습관처럼 잊어버린다.


잘 자라줘서 고마운 아이들




목요일 아침도 둘째는 엄마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잠에서 깼다. 이번에는 엄마의 도움 없이 겨우 다시 재워서 안도하고 있었다. 이제 아이도 적응했구나 감사한 마음이 들 때, 갑자기 침대에서 자고 있던 첫째가 엄마를 큰 소리로 부르며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나쁜 꿈이라도 꾼 걸까. 첫째는 동생을 거의 밟을 뻔하며 아빠의 품에 뛰어들었고, 둘째는 누나의 울음소리에 겨우 돌아갔던 꿈나라에서 바로 빠져나와 울음을 터뜨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수십 가지 아침 기상 시뮬레이션에 전혀 포함되지 않은 긴급 상황이었다. 우선 첫째를 달래고 둘째도 바로 안아주어야 했지만,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오며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아이들의 울음 하모니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양팔에 첫째와 둘째를 동시에 안았다. 아빠의 노력은 역시 통하지 않았고, 엄마가 그리운 아이들은 역시 스마트폰으로 엄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진정되었다. 아내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왔다. 기분이 상당히 처졌다. 며칠 동안 아침에 애를 써서 피로감을 느꼈는지, 엄마를 보자마자 괜찮아지는 아이들에게 괜히 서운했는지 모르겠다.


아빠가 차린 엉성한 아침밥


겨우 힘을 내어 아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얼른 아이들을 보내고 쉬고 싶었다. 정신없이 급하게 아침 식사를 챙겨주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기분이 상당히 좋아서 자기들끼리 계속 웃고 장난치며 밥도 잘 먹었다. 그게 문제가 될 줄 몰랐다.


식사 후 첫째를 씻기려고 욕실로 들어가는 순간, 둘째는 혼자 신나서 자동차 장난감을 들고 방방 뛰며 놀다가 부엌 탁자에 얼굴을 세게 부딪혔다. 아프다고 울며 몸부림치는 둘째의 왼쪽 눈 옆에 피가 언뜻 보였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를 등원하고 병원으로 바로 가야 할지, 아이 눈은 괜찮을지, 시력에 문제가 없어야 할 텐데, 아이들을 더 잘 돌봤어야 하는데, 아이들을 좀 진정시킬 걸 등. 천만 다행히도 눈 안쪽은 부딪히지 않은 것 같았고 눈 바로 옆 부분 살이 살짝 까진 것뿐이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시간이 지나도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난 일들이 계속 떠오르며 괴로웠다. 아내는 "오늘은 전화 안 했네. 애들 괜찮았나봐" 묻는 메시지를 보냈다. 괜찮았다고, 걱정 말라고 답한 후 그대로 잠에 빠져 들었다.




그날 밤 나를 위로해 준 소식은 아내가 내일 휴가를 쓰게 되었고 다음 주도 이틀 정도 휴가를 쓸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아내의 회사에는 연차를 반드시 일정 이상 사용해야 하는 연차 소진 제도가 있었다. 덕분에 아내는 12월 한 달 동안 수 일의 휴가를 사용해야 했다. 내일은 마음 놓고 푹 잘 수 있겠구나, 아이들도 편안하게 등원할 수 있겠구나 안도했다.


평화롭게 아이들을 보냈던 첫날 아침은 초심자의 행운일 뿐이었다는 걸, 아이들에게 아직 엄마 품이 필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럼에도 아이들과 아빠는 서로 도우며 함께 자라고 있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힘들진 않을지, 장기적으로 볼 때 이런 상황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은 없을지 괜히 걱정되었다. 나는 잘하고 있는 건지,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잠든 아이들을 보며 아빠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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