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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Dec 11. 2023

아내의 복직 첫 날

초심자의 행운

아내 복직일 한 달쯤 전부터 우리는 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한마음으로 복직 준비에 나섰다. 회사에서 입을 옷을 사고, 오래 사용한 핸드폰을 바꾸기 위해 알아보고, 대중교통과 자가용 출근 중 어떤 게 더 나을지 고민하고, 업무 방식도 함께 의논했다. 또, 복직 후 우리 가족의 하루가 어떻게 달라질지, 아이들이 힘들지 않게 어떻게 잘 챙겨야 할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는 거의 5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회사일과 사회생활에 대해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나보다 대범한 성격인 건 잘 알고 있었지만, 기대감이 더 느껴질 정도로 복직에 관한 어떤 염려도 없었다. 다시 일할 때를 오래 기다려 왔기 때문일까?


이런 아내에게 걱정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집과 애들은 내가 잘 챙길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아이들도 이제 많이 컸고 아빠도 잘 따르니까 혼자서 충분히 잘할 수 있다고 했다.


상황은 괜찮은 편이었다. 어린이집이 집 근처에 있고,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까운 곳에 사셔서 필요할 때마다 아이들을 돌봐주신다. 아이들도 잘 적응할 거라 믿었다. 네 살 첫째는 이제 어린이처럼 다 자라서 돌보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고, 얼마 전 두 돌이었던 둘째도 잘 먹고 잘 자는 편이라 손이 많이 가지도 않았다. 요즘 말도 빠르게 늘어서 어느 정도 의사소통도 잘 되고 있다.


무엇보다, 퇴직 후 몇 달 동안 아내와 함께 집안일과 육아를 해오며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스스로 많이 익숙해졌다. 게다가 원래도 가정적인 아빠라는 자부심 덕분에 이 정도 상황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집에서 아내 회사까지는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우리는 각자의 일과 육아를 어떻게 잘 조화시킬지 고민하다가, 아내가 유연 출근 제도를 신청하기로 마음먹었다. 동료들의 눈치가 보일 수도 있는 상황인데, 아내가 먼저 선뜻 결정해 줘서 내심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침에 일찍 나가는 방법과 저녁에 늦게 오는 방법 중 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첫 번째 이유는 아내가 아침 시간에 집중이 잘 돼서 회사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아이들이 엄마가 없을 때 잘 자고 일어난 아침보다 피곤한 저녁에 더 힘들 거라는 점이었다.


아내가 복직하는 날은 12월 1일 금요일이었다. 출근하기 전 아내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고, 하루는 첫째와 또 하루는 둘째와 따로 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첫 출근 전날 밤, 아내는 아이들에게 계속 엄마는 내일 아침에 출근해서 없을 거라고 아빠가 잘 챙겨줄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렇게 첫 출근 날이 다가왔다. 사실 많이 긴장되었다. 새로운 육아 일정과 돌발상황에 대해 아내와 함께 시뮬레이션을 많이 했지만, 몇 가지 불안한 점이 여전히 마음속에 있었다. 가장 큰 걱정은 엄마이기 때문에, 엄마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점이었다. 둘째는 물론이고, 거의 다섯 살이 된 첫째 조차, 힘들거나 짜증 날 때는 엄마의 품만 찾는다. 이럴 때는 무력감이 들기도 한다. 아빠의 어떤 재롱도 방정도 아이들의 울음을 달랠 수가 없다. 여러 차례 겪어본 상황이라 제발 이런 상황이 없기를, 아이들이 얼른 자라서 아빠의 품도 충분한 위로가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일곱 시까지 회사에 도착하려면 아내는 다섯 시 반쯤 집에서 나가야 했다. 나도 다섯 시쯤 일어나 출근 준비 중인 아내 옆을 서성이며 제발 아이들이 푹 자주기를 빌고 있었다. 첫째는 보통 일곱 시 반 정도까지 깨지 않고 푹 자지만, 둘째는 새벽 다섯 시에서 여섯 시 사이에 자주 깨는 편이라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아내는 지하철 첫차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걱정하는 얼굴을 모른 척하며 얼른 가라고 등을 떠밀고 파이팅을 외쳤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착한 아이들일 줄이야. 엄마의 첫 출근날, 아이들은 거의 여덟 시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깊은 잠을 자주었다. 거의 동시에 깬 두 아이들은, 심지어 엄마가 없다고 울지도 않고 잠에서 깨어 의젓한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가족 중에 나 혼자만 겁을 먹었던 걸까. 얼른 아이들 사진을 찍어 아내에게도 걱정하지 말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등원까지 모든 일이 굉장히 순조로웠다. 리허설을 성공적으로 마친 배우들처럼, 아이들과 나는 무대 위에서 모든 단계들을 무사히 잘 처리했다. 둘째가 갑자기 옷을 벗어던지고 뛰어다녀 정신이 없긴 했지만, 이 행동도 그저 우스울 뿐 아무 스트레스가 없었다. 그렇게 두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발맞추어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1층에서 둘째를 선생님께 맡기고, 2층으로 첫째와 함께 올라가 정답게 인사하며 들여 보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잘 들어감으로써 나의 임무는 완전한 성공으로 마무리되었다. 어린이집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굉장히 좋은 아빠가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아내에게 아이들 잘 등원시켰다고 당당하게 메시지를 보내며 혼자 으스댔다.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걸 몰랐다.


집에 돌아와 집안 곳곳을 청소하고, 아이들이 남긴 밥을 다 먹었다.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자, 아이들 돌보는 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이 씻은 듯이 전부 사라졌다. 혼자만의 시간 또한 달콤하게 보내고, 아이들을 각각 하원시키고, 어머니가 아이들을 봐주는 동안 밥도 짓고 미리 준비된 저녁 반찬들도 준비했다.


아내는 다행히 늦지 않게 퇴근하여 여섯 시가 조금 되기 전에 집에 도착했다. 엄마를 맞이하는 아이들은 무척 기뻐했고, 아내를 맞이하는 나는 무척 당당했다. 평온하게 저녁을 먹고 아이들을 씻기고 재운 뒤, 아내와 식탁에 마주 앉았다.


나는 아내에게 첫 복직날이 어땠는지 물었고, 아내는 나에게 혼자 아이들 돌보기가 괜찮았는지 물었다. 아내는 복직 첫 날이 아닌 것처럼 사무실이 익숙했다고 말했고, 나는 오늘 같기만 한다면 아무 문제도 없을 거라고 말했다. 앞으로 계속 오늘 같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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