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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Dec 04. 2023

프롤로그

아빠는 퇴직하고, 엄마는 복직하게 되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평범한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사는 일. 한때는 우리 사회에서 당연하게 최선으로 여겨졌던 일. 이제 이 일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엄청난 결심이 필요한 일이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선택할 수 없는 일이 되거나 스스로 선택지에서 지운 일이 되었다.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결혼에 대해 특별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주어진 삶에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것과 남에게 뒤처지지 않는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것 사이에서 끝없이 헤매는 것만으로도 나의 작은 세계는 꽉 차있었다. 누군가에게 내어줄 공간은 없다고 체념했을 때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이 사람이라면 내 작은 세계가 조금은 너그러워질 것이라 생각했다.


 결혼도 고려해보지 않았기에 육아는 한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이 있다면 참 귀엽겠다는 현실 감각 떨어지는 상상은 종종 해봤지만, 서울에서 맞벌이하며 아이를 키우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결혼 후 아내와 단 둘이 소박하고 따뜻한 일상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적당히 행복했다. 아내는 나와 달랐다. 다복한 가정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었고 우리가 그런 가정을 꾸리기를 원했다.


 나는 소중한 사람을 나 자신보다 더 아끼는 사람이었다. 대체로 아내가 원하는 바를 잘 따랐던 것처럼, 아이를 가지기로 결정했을 때도 아내의 희망대로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시기에 아이를 낳기로 했을 뿐이었다.


 우리 부부는 33살이 되어 첫째 딸을 만났고, 그로부터 1년 반쯤 지난 어느 날 배 안의 태아를 떠나보내야 했고, 다시 그로부터 1년이 조금 지나 둘째 아들을 만났다.


 아내는 5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을 이어가며 아이들을 낳고 키웠다. 둘째까지 낳고 일을 쭉 쉬기로 한 건 함께 결정한 일이었지만, 얼마나 아프고 고되고 외로운 시간 속에서 끝나지 않는 자신과의 싸움을 벌였을지 감히 짐작하기도 미안할 뿐이다. 아내는 그때도, 시간이 지난 지금도 대체로 괜찮았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아내는 본인의 일과 회사를 좋아하는 편이었고 커리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일과 회사 그 자체보다는 그곳에서 무언가에 열심히 살고 있는 자신을 좋아했을 것이다. 아내의 회사 생활 공백이 너무 길어지는 건 나로서도 무척 미안했고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둘째가 돌을 지난 무렵, 아내의 복직 시기를 고민했고, 어떻게든 도움을 받아 아이들을 돌보면서 맞벌이 생활을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아내의 복직은 미뤄지게 되었다. 나는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직장 사회와 10년 정도 전쟁을 벌였지만 결국 패배했다. 마지막 몇 달간 조금 더 나아 보이는 직장으로 이직 기회를 찾기도 했지만, 어쩐지 당분간은 회사에서 일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 된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든든한 지원군인 아내 덕분에 패배 끝에서 퇴직이라는 용기를 건져내었고 아내와 함께 몇 달간 상처에서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아빠와 엄마가 함께 집에 있는 약 8개월 동안 우리 가족은 늘 행복했다. 나 또한 불안함 속에서 나를 다독이며 그 행복에 젖어들었다. 인생이라는 큰 그림에서 본다면 이 시간은 가족 모두에게 좋은 상황이었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를 더 이상 지속할 수는 없었다. 내가 회사를 다시 구할지, 아내가 복직할지의 선택지를 마주하게 되었고, 아내와 나는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같은 선택을 내렸다.


 그렇게 아빠는 퇴직했고, 엄마는 복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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