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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Dec 25. 2023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 돌보는 일상의 면면

엄마가 있으니 역시 가족 모두가 편안했다. 아이들은 지난 며칠 동안의 모습은 까맣게 잊은 듯 까르르 웃고 방방 뛰며 기분 좋게 아침을 보냈다. 아내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동안 나는 그 장면을 지그시 바라보며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아이들이 등원한 후 긴 고행을 끝낸 사람처럼 홀가분한 표정이 되었다. 오전에는 간단히 집을 청소하고 씻고 잠깐 누워서 쉬기도 했다. 여유롭게 커피도 내려서 마시고 책도 읽었다. 역시 아내가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방금 내린 커피 향처럼 내 머릿속에 퍼졌다.


불현듯 이 생각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편안함이 익숙할수록 나는 조금만 힘들어도 그 상황이 크게 다가올 것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빠와의 아침에 얼른 익숙해져야 하는데, 이런 달콤함에 빠지면 익숙해질 수 없을 것이다.


“다음 주 휴가 동안은 일찍 나가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어때?” 점심을 먹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아이들에게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고, 여보도 오랜만에 출근하느라 힘들고 챙길 일도 많을 텐데 혼자 편안한 시간 보내면 좋을 것 같아.”


월요일 아침, 처음으로 아내의 도움 없이 아이들을 잘 달래서 무사히 어린이집에 들여보냈다. 지난 한 주 함께 고생하며 아이들도 나름대로 적응하고 있던 걸까? 그렇게 아빠 혼자서도 적당히 평온하면서 적당히 시끌벅적한 아침이 반복되었다.





아내가 복직한 지 열흘쯤 지나는 동안, 나의 하루에는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것이 가득해졌다. 익숙한 게 좋은 걸지, 익숙하지 않아서 안 좋은 일인지,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인지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올해 봄 직장을 그만둔 후로 아이들을 돌보는 일과 집안일에는 많이 익숙해졌다. 아이들과 즐거운 순간에 빠져드는 행복감도 익숙하다. 우리 가족을 위해 직접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익숙하다. 복직 후에 육아와 집안일 부담이 더 늘어난 것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킨 후 시작되는 하루 일정에도 금방 익숙해졌다. 집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아 오늘 할 일을 하나씩 하고, 아쉽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양과 맛의 늦은 점심을 먹고, 일을 마무리하고 네시 전후로 둘째와 첫째를 차례로 집으로 데려 온다. 많은 날 가까이 계시는 어머니가 도움을 주러 오셔서 아이들과 놀아주신다. 아내가 집에 돌아오면 나는 한 시간이라도 더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해 곧바로 카페로 출근한다. 저녁 식사 시간에는 아이들을 식탁에 앉혀 두기 위해 피에로가 되었다가 훈장 선생님도 된다. 차례로 아이들을 씻긴 후 한참 동안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고, 불을 끈 후에도 아이들의 장난을 한참 받아 준다. 아이들이 겨우 잠든 후, 운이 좋으면 한 시간 정도 더 일을 할 시간이 주어지지만, 대부분 같이 잠에 들거나 시간은 있지만 체력이 남지 않은 밤을 맞이한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상의 면면에는 익숙하지 않은 소소한 일들도 가득하다. 청소, 빨래, 설거지 같이 신혼 때부터 해왔던 집안일은 익숙하지만, 요리와 아이들 관련된 집안일은 아직 익숙하지 않다. 아침은 매번 요구르트, 과일, 견과류를 고정 메뉴로 정해놓고 계란 요리의 종류만 매일 다르게 정하고 있다. 보통은 삶은 달걀, 여유로울 때는 스크램블 에그, 애들이 밥이 먹고 싶다고 할 때는 간장계란밥을 준비하는 식이다. 아이들 관련 집안일 중 손재주 없는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첫째 딸 머리 묶어주는 일이다. 연습해도 잘 되지 않고 첫째가 연습하도록 잘 가만히 있어주지도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나름대로 매일 아침 머리카락을 열심히 빗어주고 꽉 한 묶음으로 묶어서 보낼 뿐이다.


어린이집 선생님과의 대화나 같은 반 친구 엄마들과의 대화도 아직은 어색하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려올 때는 선생님과 한창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웃으며 헤어지던데, 선생님들도 어색하신지 아빠가 데리러 가면 잘 있었고 잘 먹고 잘 잤다는 정석 답변만 듣게 된다. 반 친구 엄마들에게 되도록 먼저 밝게 인사하는 편이지만, 인사 외에는 대화가 오고 간 적이 거의 없다. 다른 아빠들도 보통 이렇게 느끼는지, 내가 좀 어색한 사람인 건지 헷갈린다.


오전, 점심 시간대에 카페나 마트에서 의식되는 시선들도 아직 익숙하지 않다. 아마 이 느낌은 온전히 나의 좁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내 또래 남자가 평일 그 시간대에 동네 카페나 마트에 손님으로 오는 경우는 내 경험상 거의 없었다. 동네 특성상 외부에서 찾아오는 곳은 아니기 때문인지 몰라도, 100명 중에 한 두 명 정도만 찾아볼 수 있는 정도다. 그 한 두 명도 외부 영업 중이거나 재택근무 중인 사람으로 보인다. 그 현상이 남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이유가 전혀 되지 않지만, 가끔 이상한 시선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다. 이것은 나의 좁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익숙한 일들은 나에게 안정감을 주지만, 익숙하지 않은 일들은 내 감정에 수많은 이름을 붙여 준다.


아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하루, 문득 나도 모르게 회사 다닐 때 기억이 훅 떠오른다. 아이들이 일어나는 시간쯤 지옥철을 타고 출근하던 내 모습이 떠오르고,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돌아가는 시간쯤 부서 주간 회의를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오전에 집에서 글을 쓸 때면, 무표정한 표정으로 기안문을 쓰던 내 모습이 떠오르고, SNS에 달린 댓글을 읽을 때면 회사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던 시시콜콜한 순간이 떠오르고, 홀로 점심을 먹을 때면 회사에서 상사가 좋아해서 억지로 먹던 코끝을 찌르는 부대찌개의 마늘 향이 떠오른다.


아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 불현듯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나타나 나를 뒤덮는다. 이 불안함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그 이유를 짐작이나마 할 수 있다. 이 불안함은 나를 이상한 망상으로 데려간다. 과연 나는 다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지, 아이들을 충분히 먹여 살릴 만큼 다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을지, 회사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아니었을지, 지금의 내 모습을 누가 비웃고 있지 않을지.


익숙해지지 않는 일들은 결코 억지로 익숙해지지 않는다. 회사 생활을 10년 정도 하며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직장인으로서의 삶에 익숙해졌던 걸까. 이 쓸데없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망상은 익숙해지지 않는 이 새로운 삶이 주는 내 미래를 위한 따끔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나는 이 모든 것들이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걸 잘 알고 있고, 그럴 때마다 따뜻한 차나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그저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을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내 할 일을 할 뿐이다.






아이들을 돌보면서 가장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것은 바로 엄마의 사랑이다. 엄마가 아이들에게 주는 사랑이자, 아이들이 엄마에게 주는 사랑. 세상 어떤 사랑보다 가장 위대한 최초의 사랑. 때로는 이 사랑을 아빠가 주거나 받을 수 없다는 걸 느끼며 헛헛한 쓴웃음을 짓게 된다. 아빠가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잘 챙겨주기 위해 많이 노력했을 때가 특히 그렇다. 무엇을 바라고 준 사랑이 아닌데도, 사랑을 돌려받고 싶은 게 사람인 걸까. 아빠의 내리사랑은 가끔 치사랑이 필요한 걸까.


이런 엄마와 아이들의 관계가 바람직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아빠를 뒷전으로 하고 엄마에게 달려가는 상황이 와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근 이런 감정이 들 때 이상하게 나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머니는 요즘도 자주 집에 오셔서 손주들을 돌봐주시고 집안일도 도와주신다. 나에게 쏟아주신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은 손주들에게도 나눠줄 만큼 무한한 듯하다. 어머니에게 더 효도하고 싶고 사랑 표현을 하고 싶은데 아직도 사춘기 아들처럼 행동할 때가 있어 죄송할 따름이다. 이런 면에서는 삼십몇 년 동안 받아온 엄마의 사랑은 너무 당연한 일처럼 익숙해진 것 같다.


빛나는 사람이 되기를 꿈꾼 적이 많았다.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멋진 일을 하거나, 유명한 사람이 되어 좋은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랐었다. 이제 이런 꿈은 익숙하지 않은 꿈이 되었다. 지금 나는 나 자신으로서 무엇이 되기보다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되어주고 싶은 것이 더 많아졌다. 내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는 목표보다, 아이들에게 어떤 아빠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더 많다. 나의 내리사랑도 조금씩 모성에 가까워지고 있는 걸까? 지금 아이들에 대한 내 이야기는 내 삶의 이야기에서 가장 익숙한 서사가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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