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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 Oct 27. 2024

서울을 떠나며

한강(韓江)은 소년을 불렀고, 소년은 한강(漢江)에 살았다. 


난 한강이 보이는 섬, 여의도에 살았다. 이곳에는 광장이 있었고, 한국의 맨해튼이 되려는 꿈을 가진 아파트 숲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욕망이 꿈틀대는 이곳에는 돈이 움직이는 증권거래소, 방송국, 그리고 그와 밀접한 국회가 자리했다. 대통령이 해외에서 돌아와 이곳을 지날 때면 나와 친구들은 학교의 지시에 따라 광장에 나와 태극기를 흔들곤 했다. 어느 날, 소년은 어른이 되기 위해 섬을 떠났고, 그 여정의 기록이 바로 이 책이다.


욕망의 시대, 우리는 그 욕망을 소비했다. 아스팔트 위는 함성과 연기로 가득했고, 수출 상품을 나르는 고속도로는 뜨거웠다. 상처받은 영혼들은 위로나 망각의 ‘3S’ 주사를 맞았다. 1980년대 전두환 정부는 스포츠(Sports)·섹스(Sex)·스크린(Screen)으로 국민의 정치적 관심과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1) 그렇게 감각이 마비된 시대에 나는 비디오테이프로 일본 애니메이션 및 홍콩과 할리우드 영화를 보았다. 외국 배우들의 연기가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고, 영화 속 집과 도시는 세련된 이미지로 기억되었다.


소년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 1992년 처음 뉴욕에 갔다. 그곳에서 본 한국 전자제품들은 싸구려 취급을 받았고,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놓여 있었다. AFKN, 할리우드 영화, 팝송 속에서 느꼈던 아메리칸드림을 찾아 뉴욕을 헤맸다. 신호등을 무시하고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배워야 할 대상으로 보였다.


새천년의 시작과 함께 청년이 된 소년은 미국 유학을 준비했다. 그 무렵, 중국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는 내가 즐겨 읽었던 <삼국지>, <초한지>, <채근담> 속의 중국이 아니었다. 나의 중국은 중화와 중공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2001년, 중국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유치권을 획득하고, 한국 드라마와 연예인이 중국에서 유행한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또 중국이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고 떠들썩했다. 그래서 2004년 나는 호기심에 이끌려 베이징으로 갔고, 2019년부터는 호찌민에 머물고 있다. 


이 책은 내가 베이징과 호찌민에서 지내며 질문하고 답을 찾으려 한 기록이다. 따라서 당신은 중국이나 베트남에 대한 나의 발견이나 의견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개인적인 한류 감상기나 ‘중국과 베트남은 없다’는 식의 비난이나 비판서가 아니다. 오히려 한류와 한국을 다시 바라보고, 비판하는 데 더 가깝다. 몸은 베이징과 호찌민에 있었지만, 내 시선은 늘 내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을 향하고 있었다. 내가 관찰하고 경험한 것을 통해 한국에게 질문하고, 따져보기 위해서였다.


떠나는 자는 질문하는 사람이고, 머무는 자는 주어진 답 속에 안주한다. 답은 안전하고 편안하다. 처음 방문한 베이징과 호찌민의 대학에서 배우고 가르치면서 깨달은 것은, 떠나지 않으면 머물게 되고, 머물면 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물리적인 공간만 떠난다고 모두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낯섦은 자극이 되고, 그 자극은 우리를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 묻기 위해 우리는 낯섦과 마주해야 한다.

2024, 호찌민


낯선 베이징과 호찌민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했다. 이것은 내가 발견한 사실이자 부딪친 사건이다. 한류는 한국 밖에서 발생하는 현상이기에, 현지에서 한류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중국과 베트남을 거울로 삼아 한류를 비추어 본다. 우리는 스스로를 볼 수 없다. 자신을 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나 거울이 필요하다. 특히 중국과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한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한류가 발생하고 성행하는 곳이기에 한류와 한국을 비춰보기에 적합하다.


중국과 베트남을 거울로 삼아 한류를 비추지만, 결국 한류를 통해 드러나는 한국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책에는 중국과 베트남에서 직접 건져 올린 사실이나 마주한 사건이 있지만, 그것으로 중국과 베트남을 규정하거나 판단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또한 한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한류 자체에 머물지는 않는다. 이 책은 한류 연구서가 아니다. 한류를 단순히 유행이나 현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전환과 전략 수립을 제안하고자 한다.


국경·심경(心境)·지경(知境)을 넘어야 한다. 한국은 오랫동안 동아시아의 중심-주변 구조에서 주변에 머물러 왔다.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 서구화 과정에서는 미국의 영향을 받았다. 지난 역사에서 중국·일본·미국의 영향이 일방적이거나 부정적이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떤 문명도 다른 문명과의 교류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은 빠른 추격국으로서 앞선 나라들을 따라잡기 위해 외부의 이념과 생각에 의지하는 경향이 컸다. 결국 중심을 향하지만 여전히 주변부를 맴돌았다.


이 책은 개인적인 관찰과 경험에서 출발해, 한류를 건너가는 첫걸음을 제안하고자 한다. 물론 뚜렷한 목적지가 없기에 길을 헤맬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찬성이나 반대, 비난 또는 비판의 길 찾기로 이어져 목적지에 닿기를 바란다. 새로운 길은 단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수많은 발자국으로 조금씩 열려 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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