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영 Apr 28. 2023

사랑의 존재

Amo volo ut sis

@meoweatscone



사랑을 적을 때면 마비된다. 생각나는 단어를 끄적이다 괜히 거울의 먼지를 닦기도 하고, 손톱의 멈춤 없는 자라남을 통해 일주일의 생활을 돌아본다. 사랑을 탐구하는 것은 밤의 기차를 타고 창밖 마을의 안온함을 어렴풋이 가늠해 보는 일과 같다.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나요? 잠은 잘 잤나요?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지만 눈을 감고 질문해 보는 것.

 


나에게 사랑이란 한 사람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일이다. 생이 유한하기에 아름답듯 사랑에는 빛이 있고 그림자가 있어 아름답다. ‘Amo: Volo ut sis.’ 하이데거가 한나 아렌트에게 보낸 편지에 적힌 아우구스티누스의 말, ‘사랑합니다. 당신이 존재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가늠함과 동시에 함께 생을 살아내자는 것. 자신의 걸음을 걷다가 저녁이 되면 무사히 곁으로 돌아와주었으면 바라는 마음이 사랑이다. 이 사랑은 여러 사랑의 기억들이 겹쳐진 모양일 것이다.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를 바랐던 때가 있었다. 초등학생 때 나의 사랑은 대부분 엄마로부터 받은 것이었기에 사랑은 엄마였고, 엄마가 세상에 없다는 것은 사랑이 없다는 것이었으며, 그건 내가 사라지는 것과 같았다. 당시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며 집을 나설 때마다 엄마가 나로부터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아빠와의 대화, 엄마의 눈 밑에 생긴 갑작스러운 주름살, 몰래 훔쳐본 엄마의 일기장 같은 것들에서 미묘한 차이를 발견했다.



알아차리는 것 또한 사랑이었으며, 엄마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살아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기도는 나의 최초의 사랑이었다. 집에 있지 않을 때면 전화를 걸어 엄마가 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불안함이 만든 내 일상이었다. 나는 여기 있으니 엄마도 잘 있어 달라고. 그런 전화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뒤 엄마가 여전히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불안감은 오래 전 사라졌지만 여전히 가끔 엄마가 무사히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엄마와 나는 일주일에 한번 씩 함께 목욕탕을 간다. 보글보글 끓는 따듯한 물 안에서, 차가운 냉탕 안에서 물장구를 치며 서로가 없었던 시간의 이야기들을 흘려 보낸다. 언젠가 엄마 등의 때를 밀어주며 지금까지 존재해주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사랑은 종종 행복하고 가끔 불안하고 자주 두렵지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기도 해서 나는 사랑을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 가득 넘어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