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는 날 걸을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눈을 한쪽으로 밀고 더 이상 쌓이지 않도록 염화칼슘을 뿌려둔 길과 치워진 눈을 모두 차지해 소복하게 눈이 쌓인 길.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정돈된 길로 걷는다. 하지만 나는 눈이 소복하게 쌓인 길로 걷기를 좋아한다.
너는 눈이 오는 날이면 눈이 쌓인 길을 걷기 좋아했다. 신발이 더러워진다는 나의 때 묻은 핀잔에도 너는 아랑곳없이 길가에 자그맣게 난 눈길을 걸었다. 신발은 금세 더러워졌지만, 눈을 밟는 소리는 오직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것이라 밟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설명했다. 눈을 밟는 소리는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고. 눈을 밟을 때 느껴지는 뽀드득한 느낌과 함께 들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런 네 모습이 마냥 어리게 보였다. 하지만 어쩐지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길을 지나갈 때면 한 사람의 흔적만이 남았다.
삶이 지치는 순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일이 힘들거나 좋지 않은 상황이 찾아오는 것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속에서 24시간을 주기로 하루를 보내는 사람으로서 겪는 어쩔 수 없는 문제다. 추억은 그래서 중요하다. 수많은 시간의 파편, 그중에서도 일부일지라도 사는 데에는 그만한 약이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 물이 새지 않는 투박한 신발을 골라잡았다. 눈길을 걸었고 조금은 섭섭한 마음으로 기뻐했다. 누구도 내가 이 길을 걸었다는 사실은 모를 거다. 하지만 누군가 걸었다는 사실은 남아있겠지. 이런 날에는 소보로 빵을 먹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