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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작가 Mar 04. 2020

이건 조카 '유정이' 자랑입니다.

 2018년 12월. 2세들의 나이가 평균 34.2세인 외갓집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사촌 언니를 제외하면 모두 미혼인 데다가, 언니가 결혼한 지 거의 7년이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조카'라는 존재가 생길 거라는 생각조차 못 했었다. 그 아이가 태어나고 우리 가족의 단톡 방은 매일 유정이의 근황을 묻는 일로 시작했다. 단톡 방의 이름은 <유정이 팬클럽>으로 바꾼 지 오래였다. 우리는 매일같이 ‘유정이는 뭐해?’라고 물었고, 언니와 형부는 유정이가 밥 먹는 모습, 떼쓰는 모습, 신발장에서 느닷없이 신발을 가져오는 모습 등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한다. 주말마다 언니네 집에 (a.k.a 유정이네) 가는 건 일상이 됐다. 언니는 꽤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지만 명절이나 경조사가 아니면 특별히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사이가 어색하거나 불편하지는 않은, 적당히 친한 이종사촌의 관계였다. 유정이의 탄생은 우리 가족의 얇고 가느다란 가족연을 조금 견고히 해준 셈이었다.

 



한참 자는 시간이 많을 때의 유정이.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보며 '아이들은 예쁘지만 그만큼 힘든 존재'라는 정의는 알고 있었지만, 어디서도 갓난아기를 실제로 볼 일이 없었다. 그런데 유정이가 태어나고, 2배 힘들고 3배 행복하다는 엄마들의 마음을 0.1% 정도는 알 것도 같았다. 유정이가 한참 자는 시간이 깨어있는 시간보다 더 많을 때쯤, '자는 모습 보는 게 이렇게 즐거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참을 바라봤더랬다. 어쩌다 눈을 뜨고 일어나면 그게 어찌나 반가운지,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하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었다.


  이 작고 소중한 아이는 우리에게 매일 처음을 선물했다. 보행기 위에서 발을 휘젓고 다니면서 거실을 누비는 것도, 팔을 만세하고 자는 것도, 같이 사는 강아지 밥그릇을 쳐다보는 것도, 자고 일어나면 혼자 누워 콧노래를 부르는 것도, 우리 가족 사이에서는 나라의 대통령이 바뀌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손 짓 발 짓 하나에 모두가 웃었다. 현재 인생 16개월 차에 접어든 유정이는, 소리 지르고 걸어 다니면서 집안의 온갖 서랍을 다 열고 다니고, 과일은 꼭 양손에 쥐고 먹어야 하며, 집 안에서도 신발 신는 걸 좋아하는 개구쟁이가 됐다. 어떤 행동을 해도 잘했다며 몇 번이고 그것에 대해 토론을 했다. 이 아이에게만큼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았으면, 유난히 느리기 바랐다. 작은 아이가 유난히 작아 보여서 ‘아니 왜 저렇게 작아?’할 때마다 엄마랑 이모는 ‘너네도 다 저랬어.' 했다.




너무너무 예쁜 유정이




 그래, 나도 유정이 만할 때가 있었겠지. 내가 뭘 해도 기적이었겠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나를 보고 엄마 아빠는 함박웃음을 지었겠지. 나는 살면서 겪어본 적 없는 행복을 느꼈겠지. 그렇게 매일을 축복받으면서 살아온 날들을 지나 스무 살이 넘어 성인이 되고, 서른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매일이 축복인 날은 오지 않지만, 엄마 아빠의 아름답게 낡은 손과 등을 보며 어렴풋이 그 시간에 대한 부채를 느낄 나이가 됐다.


 나도, 당신도, 우리는 모두 존재만으로도 박수받던 시절을 지나 현재의 모습이 됐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상처 받더라도 그 상처가 아무는 시간에 많은 삶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삶의 계절이 찬 바람만 부는 날들의 연속일지라도, 넘어질 때마다 일으켰던 누군가의 손이 있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기적이었고 지금도 기적일 당신은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는 것을. 우리 가족의 유정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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