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농장에 갔다. 빼곡히 심어놓은 채소들이 제각기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마치 저마다의 생을 향해 조심스레 손을 뻗는 것처럼. 당근 씨앗을 수백 개나 뿌렸지만, 흙 위에 어린잎을 올린 건 몇 십 개뿐이었다. 너무 깊이 심은 탓이다. 당근은 광발아 식물. 빛을 받아야만 싹이 난다. 나는 그걸 모르고 흙을 두텁게 덮었다. 한 줌의 햇살도 닿지 않는 땅속, 몇몇 싹들만이 올라왔고 나머지는 흙 속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하고 있다.
그 빈자리를 차지한 건 온갖 잡초들이었다. 땅은 본래 풀의 고향이다. 겨울 내내 흙은 풀씨와 뒤엉켜 숨죽이고 있었다. 봄이 되자 씨앗을 심은 자리에, 풀들이 먼저 달려 나와 자리싸움을 벌였다. 자기 집 안방에 새로 이사 온 작물들을 쫓아내듯 주변을 뒤덮었다. 잡초들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뽑았다. 어린 떡잎들이라 장갑 낀 손으로는 감각이 무디어서 맨손으로 제거했다. 풀이 뽑혀 나올 때마다 몸통보다 몇 배나 긴 뿌리가 매달려 있었다. 한 시간 동안 뽑았건만, 고작 한 평 남짓. 풀은 밭 전체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었다.
열무 씨를 뿌린 지 한 달이 지났다. 연초록 이파리가 성큼 자라나더니, 어느 날 보니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다. 벌레들이 연하고 여린 잎부터 야금야금 베어 먹었다. 벌레가 거의 다 먹고 남긴 것만 겨우 얻어먹을 수 있었다. 벌레를 먹이기 위해 열무를 키운 꼴이었다. 벌레가 다 먹어치우기 전에 사람도 좀 먹자고 부랴부랴 어린 열무를 뽑아왔다.
상추와 케일은 잘도 자랐다. 비료 하나 주지 않았는데도 하루가 다르게 잎이 돋아났고 돌아서면 먹을 것들이 수북했다. 그 잎들을 보며 작년에 세상을 떠난 시어머니가 떠올랐다. 상추며 파, 시금치와 배추, 고구마 등등 온갖 채소를 밭고랑마다 가지런히 키워내셨다. 구획을 나누어 또박또박 일정한 간격으로 길러내는 어머니의 밭은 예술 작품 같았다. 봄부터 가을까지, 한 뼘의 땅도 놀리지 않고 빼곡하게 채소를 길렀다.
작물들을 수확해 부산으로 수원으로 식구들의 집으로 택배를 보내셨다. 어머니가 병석에 누운 후 밭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풀밭으로 변했고 무엇이 농작물이고 무엇이 잡초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작물은 주인의 발걸음을 듣고 자란다. 주인이 드러누우니 키우던 채소들도 함께 사그라들었다.
남편은 농사꾼의 자식으로 어머니의 뒤를 잇겠다며 올봄부터 주말농장을 시작했다. 상추, 열무, 파, 당근, 가지, 고추, 고수, 옥수수, 양배추… 종묘상에 있는 거의 모든 채소를 종류별로, 줄 맞춰 심었다. 잎채소와 뿌리채소, 열매채소까지 세어보니 스물다섯 가지나 된다. 수확할 때마다 남편은 그 채소들을 꼭 친정엄마에게 들고 간다. 엄마가 "아유 열무가 야들야들하니 딱 먹기 좋게 컸네." 그 말을 들으면 흐뭇하게 미소 짓는다.
시어머니의 밭에서 친정엄마 집으로 부지런히 농작물을 날랐었다. 친정엄마는 반찬을 만들어 주변에 나누었다. 시어머니의 땅에서 우리를 거쳐 친청엄마의 손길로 이웃들에게 나누어주는 선순환. 그것은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남겨준 삶의 방식이었다. 남편은 그 선순환의 고리를 이어가고 싶어 했다. 정성으로 가꾼 어머니의 밭을 생각하며 흙에서 태어난 농사꾼의 아들은 오늘도 정성껏 농작물을 보살핀다. 나도 그 곁에서 흙을 뒤집고 풀뿌리를 뽑고 벌레 먹은 잎을 걷어내며 순환의 일부가 된다.
흙은 기억한다.
흙에 담긴 정성, 그 속에 뿌리내린 기억,
그 위에 피어난 생명은 세대를 건너 삶을 키워낸다.
밭을 일군다는 건 단지 먹을거리를 얻기 위함이 아니었다.
흙을 돌본다는 건, 내가 받은 사랑을 다음 사람에게 온전히 건네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