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다. 눈동자 깊숙한 곳엔 말로 감출 수 없는 마음의 진심이 들어 있다. 누군가 나를 바라볼 때, 나는 자주 속수무책이 되었다. 내 마음이 들킬까 봐 두려웠지만, 동시에 알아봐 주길 바랐다. 그 모순적인 감정의 진원지엔, 너무 솔직한 나의 ‘큰 눈’이 있었다.
눈이 크다는 건 장점만은 아니었다. 눈물이 맺히는 것도 빨랐고, 분노나 서운함, 피곤함조차 감추지 못한 채 그대로 눈으로 드러났다. 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아이였다. 눈으로 먼저 말하는 사람이었고, 그만큼 쉽게 상처받기도 했다.
눈이 크다 보니 먼지나 눈썹도 잘 들어가고, 황사나 꽃가루가 날리는 계절엔 눈을 제대로 뜨고 다니기도 힘들었다. 힘들 때도 가장 먼저 눈에서 티가 났다. 나는 늘, 눈으로 마음을 다 들키며 살았다.
안경을 쓰기 시작한 건 중학생 때였다. 안경은 콧등에 자국을 남기고 늘 불편했다. 공부할 때를 빼곤 안경을 벗고 다녔다. 안경은 나를 보호해 주는 방패 같았지만, 동시에 벽이 되었다. 안경을 벗으면 세상은 흐려졌다. 아는 사람의 얼굴도, 익숙한 길도 뿌연 막 너머의 풍경처럼 아득했다.
나는 희뿌연 안갯속을 부유하듯 걸었다.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쳤고 사람들은 “차갑다”라고 말했다. 희뿌연 세상은 나를 점점 고립시켰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시각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과의 거리감, 내면의 멍함, 무엇보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보이지 않으니, 웃을 일도 적었고 감정 표현은 더딘 사람이 되었다. 그저 어렴풋하게, 나는 세상과 분리된 채 살아갔다.
밤마다 나는 같은 소원을 빌었다. 눈을 떴을 때, 세상이 맑게 보이기를. 먼 곳에서도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고 내가 먼저 인사할 수 있기를. 마음속에 쌓인 이 안개가 언젠가는 걷히기를.
그 소원이 이루어진 건 30대 중반이었다. 직장에 적응하고, 조금은 삶의 여유가 생기던 시기였다. 나는 오랫동안 망설였던 라식 수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수술실에 들어가 누웠을 때, 눈앞에 빛이 번졌다. 거기서 나는 내 삶의 한 시기가 서서히 정리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마치 내 과거가, 한 겹 한 겹 깎여나가는 기분이었다.
레이저가 눈앞으로 다가왔고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똑바로 바라보았다. 눈동자를 움직이면 안 된다는 말은 생각보다 훨씬 더 두려웠다. 눈은 예민한 기관이었고, 그곳에 무언가가 다가온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아찔했다.
며칠 후, 붕대를 풀던 순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세상은 믿기지 않을 만큼 선명했다. 그동안 겹쳐 보이던 모든 사물이 하나로 또렷해졌고 흐릿했던 얼굴들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나는 마치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이었다. 사람들의 얼굴, 나뭇잎의 결, 하늘의 구름. 그 모든 것이 처음인 듯 반짝였다.
그 시절은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자신감이 솟구쳤고, 나도 모르는 사이, 표정이 밝아졌다. 길을 걸으며 내가 먼저 사람에게 다가가고 거울 속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안경 없이 보는 세상은, 마치 내가 잊고 있던 ‘진짜 나’와의 재회 같았다.
하지만 그 선명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밤이면 빛이 퍼지고 비 오는 날엔 도로의 선이 흐릿해졌다. 시간이 흐르자 다시 먼 것이 흐려지고 노안이 찾아오며 가까운 것도 명확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나는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한 모호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눈으로 보는 것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더 많아졌다. 일을 할 땐 정확한 눈이 필요하지만 사람을 대할 때, 자연을 느낄 땐 오히려 눈을 감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눈으로 보이지 않던 것들이 감각과 마음으로는 또렷하게 다가왔다. 나는 더 이상 눈으로만 보지 않았다. 눈 너머의 마음, 눈 뒤의 시선으로 세상을 들여다본다.
지금의 나는, 안갯속에 다시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모호하고 흐릿한 세상. 그러나 예전과는 다르다.
이젠 안갯속에서도 따뜻한 빛을 볼 줄 안다. 눈이 아닌 마음으로 진짜를 보는 눈을 갖게 된 것이다.
요즘 나는, 좋아하는 것들은 더 자세히 바라본다. 자연, 꽃, 고양이 똘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보고 싶은 것은 더 깊이 들여다보고,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은 조용히 흘려보낸다. 나는 선택적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보는 것은 사랑하는 일이다. 매일 똘이의 눈을 본다. 투명한 그 눈을 들여다볼 때마다 나는 사랑에 빠진다. 사랑은 그렇게 매일, 새롭게 시작된다. 결국, 무엇을 보느냐보다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가 더 중요하다. 마음의 눈을 가진 사람만이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보고, 결점 속에서도 사랑을 발견하며 세상을 따뜻하게 마주할 수 있다.
세상을 더 밝게 보고 싶다면 눈이 아니라 마음을 먼저 열어야 한다.
어둠을 걷어내는 것은 빛나는 시력이 아니라 따뜻한 시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