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눈이 나쁜 대신, 소리에 아주 예민하다. 작은 소리도 내게는 크게 들린다. 소리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해서, 마음이 끌리는 순간도 언제나 귀를 통해 찾아왔다.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지는 건, 흐릿한 얼굴보다 선명한 목소리를 통해서였다.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을 좋아한 적이 있다. 이유는 단 하나, 그분의 목소리였다. 낮고 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그림도 더 열심히 그렸다. 결국 내 그림이 교실 뒷벽에 걸리기도 했다. 지금도 그 선생님을 떠올리면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고 오직 그 목소리만이 마음속에 남아 있다.
남편과 처음 만났을 당시, 나는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었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던 친구는 안경을 벗고 나가라며 조언했다. 안경을 끼면 예쁘지 않다며, 그를 ‘잘 보는 것’보다 ‘그에게 잘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흐릿한 시야로 처음 만난 그 사람, 다행히 목소리가 참 좋았다. 같은 고향,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공통점 덕에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목소리만 들어도 “어디서 이런 사람이 나왔지?” 싶어 웃음이 나왔다.
카페에서 시작된 첫 만남은 대학가의 떡볶이집으로 이어졌고, 우리는 각자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는 다른 도시에 살고 있었기에 주말에만 만났다. 주중엔 전화로 데이트를 했다. 밤새 끊지 못한 통화, 끊이지 않던 이야기들. 그의 목소리는 내 상상력을 자극했다. 목소리가 이렇게 좋으니, 분명 외모도 멋질 거라 믿었다.
어느 주말 밤, 데이트를 마치고 집 앞까지 나를 데려다주던 길. 가로등 불빛 아래, 늘 멀찍이서 흐릿한 모습으로 이야기하던 그가 내 눈앞까지 다가왔다. 처음으로 그의 얼굴을 또렷이 보았다. 상상하던 목소리 좋은 왕자님의 모습이 아니었다. 얼굴은 넙데데하고 머리는 큰 대두상이었다. 이마엔 가로로 새겨진 깊은 주름 두 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앗, 이 얼굴이 아닌데…’ 싶었지만, 이미 너무 가까이 다가온 입술을 피할 수는 없었다.
남편은 어릴 적 고막을 다쳐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한다. 마주 보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야 겨우 뜻을 전달할 수 있다. 그는 늘 TV 소리를 크게 틀어놓는다. 주말에 혼자 있는 날엔 TV, 컴퓨터, 노트북을 다 켜두고, 핸드폰으로는 유튜브를 본다. 그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소음이 가득한 환경’을 견디지 못한다.
이렇게 소리에 예민한 나와, 소리를 갈망하는 남편은 오늘도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평화를 찾는다.
나는 조용해야 안심이 되고, 그는 소리가 있어야 안심이 된다. 결국 인생도 결혼도 볼륨 조절의 예술이 아닐까. 밤마다 나는 "시끄러워!"를 외치고, 남편은 "이게 그렇게 크게 들려?"라며 억울해한다.
이럴 땐 속으로 중얼거린다. "내가 예전에 목소리에만 반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소리에 시달리진 않았을 텐데…"
하지만 결국, 그 수많은 잡음 사이에서도 내가 끝까지 듣고 싶은 건 여전히 사람의 따뜻한 목소리다. 사랑은 이상적인 소리만을 찾는 게 아니라, 소음도 견디며 함께 사는 일이었다. 때로는 귀를 막고, 때로는 마음을 열며. 우리는 그렇게 ‘우리만의 볼륨’을 맞춰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