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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머문 자리 생명을 피워내다.

by 별빛소정

태양빛은 문득 나에게 묻는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누구와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이고, 나는 지금 삶의 어느 좌표에 서 있는지. 나는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아니면, 어떤 사람이라고 믿고 싶은가.


매일 아침, 나는 떠오르는 태양의 사진을 찍는다. 같은 태양, 같은 휴대폰인데, 매일의 모습은 다르다. 어떤 날은 둥글고 커다란 원형, 어떤 날은 사방으로 빛이 퍼지는 모양. 어떤 날은 유난히 온화하다.


매일 아침 태양을 바라보며 그 빛을 눈으로 들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인사한다.

“오늘도 나에게 빛을 주어서 감사합니다.”


구름 낀 날이라고 해서 태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저 보이지 않을 뿐, 구름 뒤에서 여전히 우리에게 빛을 보내고 있다. 태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생명의 근원이다.


우리는 태양 덕분에 에너지를 얻고, 살아갈 수 있다. 식물도, 동물도, 인간도 모두 마찬가지다. 매일 아침, 태양의 사진을 찍으며 나는 그 존재 앞에 경외감을 느낀다. 과거 조상들은 태양신을 섬겼다고 한다. 어쩌면 모든 신의 뿌리는 태양일지도 모른다.


태양을 통해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낮과 밤, 하지와 동지를 지나며 계절은 바뀌고, 태양의 고도에 따라 날씨가 달라진다. 그 변화는 우리의 성격과 삶에도 영향을 준다. 태양빛을 통해 나는 스스로의 방향을 확인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늘 하늘에 떠있지만, 때때로 공기처럼 잊히는 존재—태양. 그 빛이 지나치게 뜨거우면 지구는 끓고, 낮아지면 얼어붙는다. 태양의 자기장은 지구의 전자기장까지도 뒤흔든다. 태양은 우리의 생명이다. 무한한 에너지를 나누는 태양, 그것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주말농장에 심은 채소들도 태양빛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났다. 5월의 따스한 햇살을 받은 씨앗은 힘차게 새순을 틔웠고, 흩뿌려진 상추의 잎들이 빼곡하게 올라왔다. 며칠 사이 햇살이 강해지자 채소들은 놀라운 속도로 잎을 키웠다.


태양은 공평하다. 내가 애써 키운 작물뿐만 아니라, 잡초에게도 똑같은 에너지를 주었다. 우리는 땅을 갈고, 골을 파고, 울타리를 세워 이곳을 ‘내 밭’이라 정했지만, 식물에게는 그런 경계가 없었다. 돌아서면 잡초가 밭을 덮었다. 생명력 강한 잡초들은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잎을 빠르게 내밀며 점점 세를 넓혀갔다. 분명 다 뽑았는데도 며칠 후면 또 다른 풀들이 자랐다.


풀을 뽑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남편은 검정 비닐로 밭을 멀칭해 태양을 막았다. 비닐 아래에는 어떤 생명도 자라지 않았다. 빛을 가린 땅에는 생명이 없었다. 멀칭 한 땅에 구멍을 뚫고 고추, 상추, 오이 등을 심었다.


태양을 독차지하게 된 채소들은 잡초와 경쟁하지 않고 자랐다. 하지만 햇볕은 식물뿐 아니라 벌레에게도 생명을 나누었다. 햇살을 받은 벌레들은 활발히 번식하며, 내 채소들에게 새끼를 낳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 날파리, 달팽이, 배추벌레까지. 청정한 땅에서 자란 부드러운 잎은 벌레들에게 진수성찬이었다. 주말에 밭에 가보니 열무 잎에는 구멍이 숭숭. 벌레들이 반쯤 먹어치운 상태였다. 달팽이도 케일 잎을 야무지게 갉고 있었다. 우리 밭은 어느새 벌레들의 뷔페식당이 되어 있었다. '우리도 좀 먹자'라고 남은 열무를 얼른 수확해 왔다.


그러나 다음 주, 밭은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다. 새끼 염소들이 울타리를 뚫고 들어와 채소들을 모두 뜯어먹은 것이다. 따뜻한 햇살을 받은 염소들도 에너지가 넘쳐 울타리를 뛰어넘었다. 벌레는 반은 남겨줬는데, 염소는 잎 한 장 남기지 않았다.




향이 강한 쑥갓, 고수, 치커리, 당귀, 깻잎만이 염소의 공격을 피해 살아남았다. 이번 주에는 비가 오고 햇살도 자주 비쳤다. 밭이 걱정돼 주중에 밭을 다녀온 남편이 반가운 사진을 보내왔다. 염소에게 뜯겼던 잎들에서 다시 새순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생명에게 공평한 태양빛. 오늘도, 나는 창밖으로 비치는 햇빛을 바라보며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태양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든 생명에게 빛을 나누어준다. 잘 가꾼 작물에도, 들풀에게도, 벌레와 염소에게도 똑같은 햇살을 건넨다. 태양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우리는 그 존재를 종종 잊는다. 빛은 조건 없이 내리쬐고 생명을 피어나게 한다. 때로는 구름 뒤에 가려졌을지언정, 태양빛은 단 한 번도 자리를 떠난 적은 없었다. 태양이 존재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살아갈 이유를 얻는다.


세상이 어두워 보여도, 우리 안의 생명은 빛을 기억하고 다시 잎을 낸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처럼 오늘도, 나는 나의 자리에서 조금씩 피어나기로 한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그 빛처럼 나도 경계나 차별 없이 누군가의 하루에 따뜻한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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