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립교향악단의 연주를 처음 본 건 20대 초반,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린 정기연주회였다. 클래식이 뭔지도 몰랐던 나는 공연 내내 졸음과 씨름하고 있었다. 베토벤의 교향곡이 한창 흐르는 가운데 무대에서 ‘빵’ 하고 총소리 같은 효과음이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나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고, 지휘자는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 나를 바라봤다. 그 순간 나는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
회색 머리칼을 가진 중년의 외국인 지휘자는 이후 총소리가 한 번 더 울릴 때, 나를 향해 살짝 윙크를 하며 미리 신호를 보내주었다. 내 옆에 앉은 친구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낄낄댔고, 그날 이후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놀림감이 되었다.
지난 5월 23일, 부산콘서트홀에서 열린 부산시향의 제620회 정기연주회를 찾았다. 2025년 6월 정식 개관을 앞둔 이곳은 부산 최초의 클래식 전용 공연장으로, 현재는 다양한 시범 공연을 선보이며 시민들과 호흡 중이다. 무대 전면을 가득 채운 국내 최대 규모의 파이프오르간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객석은 빈야드(포도밭) 형으로 무대를 감싸듯 구성되어 있어, 어느 자리에서든 연주와의 거리감이 거의 없고, 음향의 격차가 적었다. 실제로 앉아보니 모든 악기의 선율이 마치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들려왔고, 심지어 관객의 기침 소리나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까지도 또렷하게 느껴졌다.
부산시립교향악단은 1962년 창단된 이래 60여 년간 620회의 공연을 이어왔으며, 1997년 대한민국 최초로 미국 카네기홀 무대에 오른 바 있다. 현재는 제12대 예술감독 홍석원 지휘자의 리더십 아래, 국내 최고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날 무대에서는 모차르트 교향곡 제41번 ‘주피터’와 드보르작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가 연주되었고, 부산콘서트홀의 개관을 축하하는 뜻깊은 무대였다. 무대와 가까운 객석 덕분에 연주자들의 표정까지도 또렷이 보였는데, 그들 역시 새롭게 개관한 이 공간이 신기한 듯 공연장 곳곳을 둘러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전의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은 대체로 무표정했고, 지휘자나 협연자가 박수를 받을 때 뒤에 서서 지친 표정으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날의 연주자들은 달랐다. 감격에 젖은 표정,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며 전하는 따뜻한 미소, 그들의 얼굴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지휘자는 각 파트의 연주자들을 한 명씩 지명해 인사시키고, 무대의 좌우와 중앙을 향해 공평하게 인사하게 하며, 오케스트라 전체를 주인공으로 세웠다. 그는 또 관객을 향해 "부산콘서트홀은 시민의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오늘 이 무대의 진정한 주인공은 관객 여러분이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훌륭한 홀에서 연주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부산시향은 60년 전통을 가진 오케스트라이며 오늘로 620회 정기연주를 맞았습니다. 시향을 시민 여러분의 자식처럼 아껴주시고,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올해 우리는 베를린 음악축제에 초청받았습니다. 부산시향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고 오겠습니다.”
앙코르곡으로는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중 <꽃의 왈츠>가 연주되었다. 지휘자는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혼신을 다해 무대를 이끌었고, 춤을 추듯 리드미컬한 동작과 섬세한 표현력은 관객의 심장을 울렸다. 음악과 하나 되어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무대를 더 뜨겁고 아름답게 채웠다.
나는 현재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운영하고 있다. 얼마 전엔 영화의 전당 야외무대에서 다른 오케스트라단과 협연도 했다. 문득 이런 멋진 콘서트홀에서 우리 아이들도 연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부산은 2026년 오페라하우스 개관을 목표로 음악도시로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우리 아이들의 꿈도 그 흐름을 타고 함께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공연이 끝난 후, 나는 시민공원 소나무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음악의 여운이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 있었고, 잔잔한 선율이 발걸음을 이끌었다. 문득,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이 춤을 추듯 내게 인사하는 것 같았다. 음악에 흠뻑 취한 나는, 그 순간 세상이 조금은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클래식을 몰랐던 젊은 시절, 관객석에서 총소리에 놀라 비명을 지르던 날이 있었고 이제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음악의 꿈을 키워가는 사람이 되었다. 음악은 우리의 인생 페이지마다 감동의 음표를 남긴다.
지친 일상 속에서도 음악은 우리 마음의 숨은 틈을 찾아 들어와 위로가 되어주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건넨다. 나도 그날의 연주처럼 누군가의 마음에 선율 하나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오케스트라의 작은 꿈들이 언젠가 이 큰 무대 위에서 찬란하게 울려 퍼지길, 그 희망을 가슴에 깊이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