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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끝에 피어난 우리의 미소

by 별빛소정

“어머나, 너는 왜 이렇게 예뻐졌어?”
“언니는 살도 빠지고 훨씬 날씬해졌네. 비결이 뭐야?”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에 반가운 미소가 가득했다. 12월, 올해의 마지막 달. 분기마다 모이는 우리 ‘미소회’는 근사한 이태리 레스토랑에 둘러앉았다. 8년 전 불교대학에서 같은 모둠으로 처음 인연을 맺었던 그때처럼 자연스럽게 서로의 근황을 쏟아냈다. 한 명 한 명의 표정은 예전보다 밝았지만, 그 밝음이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다들 인생의 매서운 바람 속에 있었다. 어떤 이는 이혼 후 혼자 딸을 키우며 딸의 게임 중독 때문에 걱정을 한가득 안고 있었고, 어떤 이는 남편의 잇따른 사업 실패로 공무원으로 일하며 월급으로 빚을 갚으며 버텼다. 스무 해 넘게 남편의 술주정을 견디던 언니가 있었고, 집을 나간 남편 대신 두 아들을 키우며 보험설계사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회원도 있었다.


그 시절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불교 공부를 하며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의 상처를 조심스레 꺼내놓았다.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한 속 깊은 아픔을 나누었고, 2년 동안 서로의 삶을 붙잡아 주었다. 불교대학이 끝난 뒤에도 두세 달에 한 번씩 얼굴을 보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이어왔다.


만나서 나누는 말들은 겉보기엔 시시한 일상뿐이었다. 아이 이야기, 남편 이야기, 직장, 건강, 잔소리 같은 사소한 것들. 가끔은 ‘별 도움도 안 되는 이런 수다에 왜 앉아 있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대화를 이어갈수록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속에 오히려 진짜 진리가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아프게 살았던 사람들이라 삶의 구석구석에서 길어 올린 지혜가 묵직하게 배어 있었다.


“둘째가 내년 3월에 결혼해. 요리를 좋아해서 퇴근하면 예비 신부에게 매일 저녁을 차려준다더라.”
“요즘은 딸은 결혼하면 고생하니 귀하게 키우고, 아들에게는 결혼하면 해야 한다고 살림을 가르친대. 그러니 결혼하면 남편이 집안일을 더 잘하는 거지.”
“결혼하면 며느리에게 명품 시계 하나쯤 해줘야 한다더라. 아이 낳으면 축하금도 넉넉히 주고 조리원비도 보태 줘야 하니 부모 노릇은 돈으로 하는 거래.”
“아들이 호주 여자랑 결혼했는데 말이 안 통해서 올 때마다 곤혹스러워. 손주들도 말이 안 통하니 나만 보면 울어버리고…”
“간호조무사 학원을 다니다가 혈압이 190까지 올라서 결국 그만뒀어. 사는 게 참 쉽지 않네.”

웃고 떠드는 소리 속에 묵은 시간들이 겹겹이 보였다.


8년의 세월 동안 각자의 삶을 참 열심히도 살아왔다. 다행히 모두 조금씩 나아져 있었다. 게임 중독이던 딸은 게임에서 만난 삼성전자 직원과 결혼해 쌍둥이를 낳고 잘 살고 있고, 술주정으로 가족을 힘들게 하던 남편은 지방 공사 현장에 배치되어 몇 달째 조용하고, 혼자 두 아들을 키우던 회원은 가수가 되어 음반도 내고 행사장을 누비고 있다. 무직이던 아들은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 아이 둘을 키우며 호주에 살고 있었다.


이 모임에서 단 한 사람도 쉬운 삶을 살아온 이가 없었지만, 단 한 사람도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았다. 나이가 숫자로만 더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들 자기 자리에서 버티며 싸우고 회복하며 한 단계씩 성장해 있었다. 나는 25년의 주말부부 생활을 끝내고 작년부터 남편과 다시 살림을 합쳤다. 언니들은 나를 안쓰럽다며 농담처럼 걱정했다. “이제야 신랑 시집살이 시작이네” 하면서 웃어주었다.


지나온 세월 동안 고통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고통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생기는 단단함이 우리 안에 자리 잡았다. 어느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삶을 걸어온 사람들이 모여 조용히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정말, 우리 다들 고생 많았다.” 그 말 한마디에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삶이 던진 풍파를 견디며 흔들렸지만 무너지지 않았던 시간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상처를 지나온 자리에는 주름이 생겼고, 그 주름 사이로 미소가 슬며시 번졌다. 우리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고, 여전히 흔들리지만 견뎌온 세월이 훈장처럼 가슴에 남았다. 오늘 우리는 미소회의 이름처럼 잔잔한 미소 하나씩 품고 각자의 길로 돌아갔다. 다음 계절에 다시 웃으며 만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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