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어둠까지 껴안을 때

by 별빛소정
어떤 감정도 사소한 건 없다. 모든 감정은 다 나름의 가치가 있다. 좋은 건 어디에나 존재한다. 증오와 시기, 기리고 질투까지도. - 헤르만 헤세

전통적인 종교는 선과 악을 엄격히 구분하며 인간은 오직 선만을 지향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헤세는 인간의 영혼에 신적인 거룩함뿐만 아니라 어두운 본능과 파괴적인 충동도 공존한다고 믿었습니다. 소설 《데미안》의 핵심 상징인 '아브락사스'는 바로 이 지점에서 탄생했습니다. 빛과 어둠, 하늘과 심연을 모두 품은 이 존재는 어느 한쪽을 부정하지 않고 양면을 모두 긍정할 때 비로소 온전한 자아가 완성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가만히 내 안을 들여다봅니다. 그 안에는 기쁨과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외로움과 슬픔, 질투와 오만함, 그리고 편견과 나약함까지 존재합니다. 저는 이 모든 부정적인 감정 역시 온전한 나의 일부로 인정해 주려 합니다. 지금의 저는 그 모든 감정의 터널을 통과하며 빚어진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억눌린 감정은 언젠가 폭발하기 마련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바라보고 인정할 때, 그 감정들은 내 안으로 녹아들어 저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어 줍니다.


"삶의 다양한 스승으로부터 그대는 무엇을 배우려고 했나요. 그들이 도저히 가르치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의 의미와 존재의 본질입니다. 자신을 모르니 자신을 극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소설 《싯다르타》의 주인공은 오랜 시간 스승과 경전의 가르침을 받았음에도 늘 공허했습니다. 성자 고타마의 설법을 뒤로하고 홀로 길을 나설 때 비로소 그는 깨닫습니다. 모든 지식에 정작 '자기 자신'이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세상의 원리와 경전 구절은 타인이 전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존재 이유와 생명의 본질, 나만의 고유한 의미는 오직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에게 이르는 길은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외부의 정답에 의존하기보다 내면의 감각과 존재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 진정한 성장은 시작될 것입니다.


저는 남들보다 예민한 기질로 인해 오랜 시간 고통을 겪었습니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스스로 저지른 작은 실수, 세상의 뉴스 등 그냥 지나쳐도 될 많은 것들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 예민함을 바꾸고 싶어 부단히 노력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 예민함 덕분에 다른 사람의 감정에 조금 더 귀 기울일 수 있었고 누구보다 세심하게 세상을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민함은 작은 것 하나에도 마음을 쓰며 세상을 좀 더 사랑하는 저만의 삶의 방식이 되었습니다. 내 안의 어두운 방까지 따뜻하게 껴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도약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극복한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과정이 아니라, 내 안의 모든 감정을 하나도 외면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예민한 기질은 결코 단점이 아니다.
누구보다 세심하게 세상을 관찰하며 완벽을 추구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하루를 살 수 있으니까
-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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