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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Nov 20. 2024

엄마는 타짜였다

첫 글은 엄마 이야기로 시작해 보려 한다. 엄마는 거제도 출신으로, 아홉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는 호탕한 성격과 출중한 외모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그를 두고 여인들이 줄을 섰고 기생집에 살다시피 했다. 정작 외할머니는 키도 작고 외모도 볼품없었다. 그런데도 두 분은 아홉 명의 자녀를 줄줄이 낳았다니 사이가 그렇게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외할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외가 식구들은 모두 키가 크고 눈이 부리부리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그런 외가의 넷째 딸, 내 엄마 **옥 여사는 열아홉 살에 맞선을 봤다. 고모의 권유로 나간 자리에서, 멀끔하게 생긴 총각이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총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말 한마디 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날부터 총각의 짝사랑이 시작됐다. 그는 매일같이 엄마의 집 앞을 찾아왔다. 특별히 할 일이 없어 종일 담배 두 갑을 뻐끔뻐끔 피워대며 기다렸다. 소문은 삽시간에 온 동네에 퍼져 나갔다. "저 집 넷째 딸, 바람났다!" 결국 외할머니가 총각의 어머니와 만났고 "형편이 어려워 혼인시킬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총각의 어머니는 몸만 오면 된다며 소를 팔아 그 돈을 외할머니에게 주었고, 엄마는 그렇게 스무 살에 시집을 왔다.


호랑이띠인 엄마는 성격이 불 같았다. 말이 없고 무뚝뚝한 아버지와는 도무지 맞지 않았다. 첫날밤부터 다투기 시작한 두 사람. 아버지는 항해사가 되어 원양어선을 타고 3~4년마다 한 번씩 집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첫 해에 내가 생기고 4년 터울로 큰 동생과 막내 동생이 생겼다. 아버지는 선장이 되었지만, 엄마는 남편 없이 시부모와 치매에 걸린 시할머니까지 모시며 점점 지쳐갔다. 독수공방으로 보낸 8년. 젊고 혈기왕성했던 엄마는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결국 엄마는 도저히 이렇게 못살겠다고 아버지에게 선장을 그만두게 하고 도시로 이사를 요구했다. 그렇게 가족은 부산으로 이주했고, 부모님은 떡방앗간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타고난 한량이었다. 떡방앗간의 고된 노동은 맞지 않았고, 결국 가게를 정리한 뒤 사업에 도전했다. 한 때 집안 사정이 나아지는 듯 했지만, 경험이 없던 아버지의 사업은 부도를 맞았고 그 후 우리 집은 쭈욱 내리막길을 걸었다.


아버지 대신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나선 엄마는 어느새 고스톱판에 발을 들였다. 엄마는 집에 늦게 들어오기 시작했고 매일 밤마다 부모님의 싸움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어릴 때부터 이혼하자는 소리를 들어와서 나는 부모님이 언젠가 이혼하게 되리라 생각했다. 학교 다닐 때 부모님 싸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 나는 공부에만 집중했고 부모님에 대해서는 관심을 줄였다.


엄마의 도박빚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엄마는 짜가 되었다. 노름판에서는 돈을 잃으면 빌려주는 사람이 있어 계속 도박을 하도록 만든다. 돈을 잃으면 빌리느라 빚이 늘어나고 돈을 따면 기분 좋아 흥청망청 써버리기 때문에 도박을 하면 늘상 빚이 늘어나게 된다.


눈덩이처럼 늘어난 도박빚을 누가 갚아줬는가. 그건 바로 나, 세상 착한 큰 딸이었다.

스물셋에 첫 직장에 취직하고 월급을 일 년가량 꼬박꼬박 적금을 부었다. 첫 적금을 타자마자 엄마의 도박빚으로 홀라당 날려먹고 얼마나 허무했는지.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또다시 내가 번 돈은 지속적으로 엄마의 빚을 갚는데 쓰였다. 결국 대출까지 받아 엄마의 도박빚을 끝도 없이 갚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을 반복하다,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착한 딸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엄마한테 각서를 받고 다시는 빚을 갚아주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다.  엄마는 도박을 완전히 끊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빚을 갚기 위해 고생했던 엄마의 모습은 기억난다. 빚 이야기만 하면 내가 경기를 하듯 싫어했기 때문에, 빚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도박빚 갚은 이야기만 풀어놓고 말았다. 결국 내 안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트라우마가 깊이 쌓여있는 것 같다. 착한 딸로서의 희생과 분노, 그리고 체념. 그것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던 것 같다.


다음 이야기에는 엄마가 사기를 당했던 사건과, 내가 다시금 맞닥뜨려야 했던 또 다른 빚 이야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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