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호랑이띠다. 생김새부터 성격까지 호랑이를 꼭 닮았다. 성격이 얼마나 급한지, 내가 고등학생일 때 교과서를 몽땅 버린 적도 있다. 이유는 단순했다. "방바닥에 어지럽게 늘어놓지 말라고 했잖아!" 졸지에 교과서가 다 없어진 나는 헌책방을 뒤져가며 교과서를 다시 구해야 했다. 내 동생은 더했다. 정리를 더 못 했던 동생의 교과서는 한 학기에 두 번이나 버려졌다. 이제는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그땐 정말 힘든 기억이었다.
엄마는 나와 21살 차이가 났다. 젊고 예쁜 엄마가 좋았지만, 엄마는 방앗간 일을 하느라 항상 바빴다. 학교 행사에 참석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운동회 날이면 다른 아이들 엄마는 3단 도시락에 과일까지 준비해 와 돗자리를 펴고 가족과 하하호호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나의 엄마는 돈 500원을 주면서 중국집에 가라고 했다.
"짜장면 사 먹어."
중국집은 다른 가족들로 붐볐고, 소심했던 나는 혼자 짜장면을 사 먹을 자신이 없었다. 배는 고팠고, 결국 오후 달리기에서 꼴찌를 면치 못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나는 한 번도 달리기에서 꼴찌를 벗어난 적이 없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엄마는 점점 더 바빠졌다. 생활전선에도 나서야 했고, 도박판에도 늘상 출근해야 했으므로 집에는 항상 엄마가 없었다. 밤이 되면 아빠와 싸우는 소리가 익숙한 집안 배경음처럼 들렸다.
대학 학력고사 날 아침도 특별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엄마는 그때까지 잠에서 깨지 않고 있었다. "엄마, 나 오늘 대학시험인데 도시락은?" 졸린 눈을 비비며 엄마는 말했다. "오늘 도시락 싸야 하나?" 잠에서 덜 깬 엄마는 지갑에서 돈 1000원을 꺼내 손에 쥐어주고, "빵이랑 우유 사 가라"고 했다. 다른 수험생들은 대부분 보온밥통에 따뜻한 밥과 국, 소화 잘되는 반찬이 들어 있었다. 나는 찬 우유와 빵을 우적우적 씹어 먹고 시험을 봤다. 튼튼한 위장 덕분인지 대학시험은 한 번에 합격했다.
대학생활이 시작되었지만 부모님은 학비와 용돈을 주지 않았다. 학비는 장학금으로 해결했고, 용돈은 아르바이트로 충당했다. 나는 대학생활 내내 알바를 쉬지 않았고, 대학생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그러나 같은 대학을 갔던 나의 남동생은 한 번도 알바를 하지 않았고 당연한 듯 부모님께 학비와 용돈을 요구했다. 그때의 허탈감이란.
나중에 엄마에게 물었더니 "너는 알아서 잘하길래, 대학생들은 다 그런 줄 알았지." 남동생에게 당연했던 학비와 용돈이 나에게는 4년 내내 치열하게 고군분투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이놈의 착한 딸 증후군 때문에 손해가 막심했다.
엄마는 호랑이처럼 강하고 거침없어 보였지만, 속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돈을 빌려달라는 사람에게 척척 내어주고, 여러 계를 들다 돈을 떼이기도 했다. 나도 엄마의 부탁으로 지인이 하는 계에 몇 번이나 가입했다가 돈을 날려 먹었다. 엄마가 진 빚을 내가 대신 갚은 적도 많았다. 다시는 갚아주지 않겠다 결심했지만,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하면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막내 동생은 조폭이었다. 30년 전에 이미 온몸에 용문신이 있었다. 외할아버지를 닮아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잘생긴 막내 외삼촌은 싸움에도 탁월해 행동대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던 어느 날 큰마음을 먹고 그 조직에서 탈퇴하기로 결심했다. 조직의 보스는 "네가 나가려면 거시기를 내 눈앞에서 잘라라"고 했다. 그래서 정말 거기를 자르고 나왔다고 한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지만, 엄마가 직접 보았다고 했다. 모두 다 자르지는 않고 남자 구실을 할 수 있도록 끝만 자르고 엄청난 고통을 느끼도록 했단다. 조직에서는 나왔지만 조폭 성질은 버리지 못하고 온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기 일쑤였다.
어느 날 그 막내 외삼촌이 사귀는 여자를 데리고 엄마 집으로 왔다. 삼촌보다 5살 더 많은 이혼녀였는데, 이 여자가 어마어마한 사기꾼이었다. 엄마 집 옆집에 이사를 와서 엄마 피를 쪽쪽 빨기 시작했다. 본인은 건물주고 어마어마한 부자인데 지금 자금줄이 막혀 있다며 잠시만 융통해 달라며 엄마한테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외제차에 명품을 걸치고 다니며 비싼 식당에서 음식을 사주며 엄마 환심을 산 그 여자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쏟아냈다. 사람을 잘 믿었던 엄마는 그 말이 진짜인 줄 알고 그 여자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가진 것을 다 내어 주었다.
당시 남편이 외국에 있어 어린아이들과 엄마 집에 있던 나는 그 여자가 내 결혼 패물들을 다 훔쳐 간 줄도 몰랐다. 집안에 귀중한 것들은 다 훔쳐 갔고, 두 배로 갚아준다며 돈을 빌려가기 시작했다. 엄마와 같이 와서 내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진심 어린 듯한 호소를 하면 나도 같이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 여자의 사기 행각에 나도 걸려들기 시작했고, 나뿐 아니라 이모와 내 남동생도 같이 넘어갔다.
몇 년간 그 여자에게 놀아나다 점점 그 실체가 밝혀질 무렵, 갑자기 그 여자의 얼굴이 누렇게 뜨며 복수가 차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보니 간암 말기라는 것이다. 그렇게 병을 진단받고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지금 생각하면 참 거짓말 같은 이야기다. 어떻게 그런 말들을 다 믿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말이 안 되지만, 그때는 그 말들이 진짜인 것 같았고 막힌 돈이 풀리면 몇억씩 준다는 허무맹랑한 말을 믿었다.
그 여자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엄마는 그녀를 미워하지 않았다. "다들 사정이 있겠지." 엄마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고 황당한 일들이 많았다. 엄마는 호랑이 같으면서도 보살 같았다. 엄마 덕분에 나도 남들에게 베푸는 법을 배웠다. 이기적인 내가 엄마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베푼 덕분에 지금 이만큼이라도 살고 있지 않은가 생각할 때가 있다.
다음 이야기는 우리 가족의 또 다른 에피소드, 아버지의 춤바람과 지금의 엄마에 대해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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