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대해 적어보려니 막상 아는 게 별로 없다. 어린 시절 기억 속 아버지는 무섭고 엄격한 모습뿐이었다. 대화란 걸 해본 적이 없고, 아버지의 삶에 대해 알게 된 건 오로지 엄마의 이야기뿐이었다. 엄마의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에 의해 늘 아버지를 나쁜 사람이라 들어왔고, 나는 그 말을 믿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돌이켜보니, 아버지도 가장의 무게를 지고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마도로스, 호랑이를 만나다
아버지는 거제도 출신 다섯 남매 중 셋째이자 맏아들이었다. 군대를 다녀온 후 1등 항해사 시험에 합격하고, 스물다섯에 눈이 부리부리한 아가씨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두 달 동안 하루에 담배 두 갑씩 태우며 밥도 안 먹고 그녀의 집 앞을 맴돌았다. 아가씨는 만나지도 못했지만, 동네에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결혼에 성공했지만, 부인의 성질이 보통이 아니었다. 한 번 싸우면 죽기 살기로 덤벼들었다. 매일 피터지게 싸우다 원양어선을 타고 외국에 나갔다. 8년 만에 아이가 셋이 생겼다. 아버지는 선장이 되어 큰돈을 벌며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불같은 성격의 마누라가 다 때려치우고 도시로 이사를 가자고 한다. 여우 같은 마누라를 원했는데 애 셋을 낳더니 호랑이가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부산으로 이사를 왔다.
인생의 회한과 춤추는 노년
지인이 부산에서 방앗간을 하고 있어 도와주다 방앗간을 인수하게 되었다. 그 일은 끊임없이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젊은 마누라가 힘든 일을 척척 해냈으므로 아버지는 당구장에서 종일 당구를 치며 놀고먹었다. 어느 날부터 애엄마가 도저히 못 해먹겠다고 방앗간을 때려치우자고 했다. 구내식당 부식 납품 사업을 시작했다. 한동안 사업이 잘 되었는데 어음으로 받은 거래대금이 회수가 되지 않으며 부도를 맞았다. 쫄딱 망했다. 다시 사업을 시작하려 했지만 자금도 없고 쉽게 시작되지 않았다.
마누라가 식당에 가서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어왔다. 그런데 귀가 시간이 점점 늦어지더니 어느 날부터 새벽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누라를 추궁하다 도박판에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고 한두 번 갚아주었지만 도박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그 뒤 직장을 구해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도박판에 날릴 것이 뻔해 집에 생활비를 가져다주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뭐든 다 퍼주는 버릇이 있는 마누라는 저축이란 걸 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구두쇠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재개발에 투자할 기회를 얻었다. 집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돈을 벌었지만 애엄마한테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애엄마는 생활비를 주지 않는다고 주기적으로 싸움을 걸어왔다.
우연히 사교댄스를 배우게 되었는데 이게 무척 재미가 있었다. 사교댄스를 추면 짝이 있어야 한다. 여자 짝이랑 가까이 지내게 되었는데 마누라가 쫓아다니며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 운동하라며 사교댄스라도 배우라고 부추길 때는 언제고 지금 와서 춤추러 다닌다고 난리에 성화다. 마누라를 피해 댄스장을 바꾸어가며 열심히 춤을 출 거다. 이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다.
아버지의 독백
'길을 잃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내 이름도, 사는 곳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화기가 울려서 받아보니 어떤 여자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노망난 영감탱이, 지금 어데고? 또 춤추러 갔제?" 아! 호랭이 같은 내 마누라구나.
딸이 보건소에 가보자고 해서 보건소에 가서 치매 검사를 받았다. 대학병원에 가서 치매약을 타 먹기 시작했다. 기억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점심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누라가 나보고 치매라고 하는데, 그건 절대 아니다.
나도 한때 잘나갔다. 1등 항해사로, 선장으로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마도로스 생활도 했다. 사업이 한창 잘 나갈 때는 떵떵거리며 살았다. 재개발 사업에 투자해서 오피스텔을 몇 채나 사서 월세를 따박따박 받으며 돈도 많이 벌었다.
최근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옛날에 내가 잘나갈 때 기억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마누라가 안 보이면 불안해서 종일 전화를 건다. 기억나는 건 마누라밖에 없다. 몇 달 전에는 뒤로 넘어져 허리뼈가 부러졌다. 좋아했던 사교댄스장에 갈 수도 없다. 안방에서 거실까지 종일 오락가락하며 옛 생각을 떠올리며 지낸다.
요즘은 평생 하지 않았던 애교를 부린다. "여보야 사랑해~" 그러면 호랑이 같던 마누라가 여우처럼 변하며 피식 웃는다. 이제야 여우 같은 마누라를 얻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젊었을 때부터 애교 좀 부려놓을 걸. 밥이라도 제대로 얻어먹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사실은 나는 치매가 아니다. 치매인 건 먹고살기 위한 처세일 뿐, 사실은 멀쩡하다.
마누라한테 이건 비밀이다.'
인생, 비극에서 희극으로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부모님의 삶이 꼭 그랬다. 치열하고 고단했던 순간들은 비극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하나의 드라마 같은 추억이 되었다.
엄마에게 지난 일에 대해 물어보니 나를 힘들게 했던 기억들은 잊혀지고 없었다. 내 첫 월급을 1년간 저축해 모은 적금을 도박으로 날린 것이 내게 얼마나 아픈 상처였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고비를 넘기며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서로를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여겼던 기억들조차, 지금은 웃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삶의 일부일 뿐이다. 결국 인생은 일어난 일 그 자체보다, 우리가 그것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비극과 희극의 경계를 허물며 오늘을 사는 것, 그것이 인생일 것이다.
이제 나는 부모님에게 남은 시간을 감사하며, 그들처럼 내 인생도 그 순간순간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지금은 비극처럼 느껴지는 일들도 언젠가 희극으로 남아 있을 것을 믿으며.
부모님 이야기는 끝. 다음 편부터는 내 이야기를 해볼게요.
Brunch Book
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