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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Dec 09. 2024

내 안의 상처를 어루만지다

나의 상처

참 이상한 기분이다.

며칠 전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내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인생 그래프’를 그리며, 조를 이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행복했던 순간들,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나는 올해 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직장인 익명 게시판인 블라인드에 내 이야기가 올라갔던 그 사건이다.


같이 일하던 직원들이 내 이름을 거론하며 비방 댓글을 달았다. "놀고먹느니 월급 주기 아깝다"는 식의 악성 댓글이었다. 익명 게시판이지만 전국의 직원들이 다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내가 온라인상에 난도질당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고 악마 같은 그 댓글들은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연예인들이 댓글 때문에 자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이야기를 조원에게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내 이야기를 듣던 직원은 충격을 받은 듯 눈물을 흘렸다. 본인도 그 댓글을 다 읽었었다며, 그때 힘이 되어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내 진심을 5분 정도 털어놨을 뿐인데, 그는 몇 번이나 물었다. "지금은 괜찮은 거죠?"


하지만 괜찮을 리가 있나. 직장생활을 하며 겪을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종류의 사건이 바로 공개적인 비방이 아닐까. 가까운 친구나 가족들에게 이 일을 이야기한 적은 있었지만, 댓글을 직접 본 사람에게 말해본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직원은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 진정으로 내 고통을 느끼고 같이 울어주었다. 처음이었다, 내 아픔에 이렇게 깊이 공감해 준 사람이.


"비를 맞고 있는 사람을 위로하는 법은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이다"라더니, 정말 그 말처럼 비를 맞으며 내 옆에 있어주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 상처를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를 비방했던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거나 법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내 상처가 더 깊어질 것 같았다. 대신, 이 상처를 내 인생의 도약점으로 삼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네가 잘못 알았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에 외치고 싶었다. 나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열심히 살아왔다. 그렇게 나만의 글을 써 내려갔다.


‘신의 축복 30일 글쓰기: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며, 나는 비로소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내 안에는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다는 것을. ‘촌년 가시내’라고 놀림받을까 봐 움츠러들던 10살의 내가.


블라인드에서 공개적인 비방을 당하며 두려움에 떨던 내 모습은, 초등학교 운동장 한켠에서 열댓 명에게 둘러싸여 머리채를 잡히던 그날과 겹쳐졌다. 아무도 내 편이 없었고, 이미 진 게임임을 알면서도 끝까지 발버둥 치던 그 어린 날의 나.

그래, 그게 나였다. 아직도 그날에 머물러 있는 나. 그 어린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다시금 느끼며 한참을 울었다. 그러고 나서야 나는 내 안의 아이를 품어줄 수 있었다. "괜찮아. 이제는 다 지난 일이야. 너는 훌륭하게 잘 컸어." 그 10살의 나를 토닥이며, 내 상처도 어루만졌다.


이렇게 글을 쓰며 오늘도 또 하나의 내 모습을 발견했다. 더 이상 가식적으로 살지 않기로, 오롯이 나로서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악성 비방에 더 이상 떨지 않기로. 진심 어린 눈물을 흘리며 내 아픔을 나누어준 그 동료 덕분에,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깨달았다.


나는 다시 한 걸음 성장했다.
그리고 억수같이 퍼붓는 비를 나와 함께 비를 맞아준 사람에게 깊은 감사를 보낸다.

나의 이야기를 글로 써 내려가며 나는 나를 치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의 한 걸음이 쌓여 더 단단한 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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