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하 하세요."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이 말이 새로운 인사말처럼 쓰인다.
작년엔 '소확행'이 대세였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뜻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지만, 올해는 '아보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둘 다 트렌드코리아에서 언급한 키워드이다.
소확행, 행복을 강박으로 만들다
소확행은 단순히 작은 즐거움을 의미하지 않았다. 일상의 범주를 벗어나야 했고, SNS에 올려 타인의 공감을 얻어야만 완성되는 개념이었다. 작고 소소해 보였지만, 평범한 일상 이상의 특별함이 요구됐다.
나는 어느 순간 소확행이라는 유행을 따라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을 느꼈다. "행복하기 위해서, 난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담이 마음을 짓눌렀다.
2025년 새로운 트렌트 '아보하'가 등장했다. 이것도 따라 해야 할 하나의 유행인가 싶었다.
그 뜻을 알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주 보통의 하루 아무 일도 없어서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감사이다.
아, 이건 정말 내가 바라던 삶이었다.
아무 일도 없는 하루의 소중함
나는 매일 소망해 왔다.
"오늘도 아무 일 없기를."
평범하게 출근하고, 밥 먹고, 퇴근하고, 잘 자고, 잘 먹고, 아무와도 싸우지 않고 잘 지내기를.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게 그렇게 간절할 줄은 몰랐다.
내가 늘 빌어오는 삶이 아보하였다.
그러나 세상은 늘 평범하지 않았다.
한밤중에 계엄령이 떨어지고 군대가 국회 창문을 깨부수는 세상
코리안 디스카운트가 현실로 나타나 우리 국민이 수십 년간 갚아야 할 계엄의 부채
무고한 사람이 인도로 돌진한 차량에 목숨을 잃는 세상
사랑했던 사람이 흉기를 휘두르며 잔혹한 사건을 만드는 참혹함.
이런 세상을 살아가며, 아무 일도 없는 하루의 가치는 더없이 커진다.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간절히 바라는 삶이 아닐까?
나의 평범한 루틴, 나의 아보하
내 하루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루틴의 연속이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느긋하게 7시 30분쯤 일어난다. 아침형 인간이나 미라클 모닝 같은 건 내 삶에 없다.
천천히 일어나 급하게 씻고 준비를 마치면 8시 10분. 고양이 밥을 주고 침대를 정리한 뒤 급히 지하철로 뛰어가며 하루를 시작한다.
출근길에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회사에서는 커피 한 잔과 함께 업무를 시작하고, 점심시간에는 가벼운 산책이나 독서로 여유를 즐긴다.
퇴근 후엔 주 1회 PT를 받거나 글쓰기 수업에 참여한다.
토요일에는 월 2회 아침 7시에 독서모임에 간다. 7시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오면 피곤해서 종일 잔다. 역시 나는 아침형 인간은 아니다. 토요일 저녁에는 남편과 생선회와 소주를 먹는다. 일요일 오전에는 남편이 스크린골프를 치러 가고 고요한 시간이다. 빨래를 하고 고양이 화장실을 정리하고 식물에 물을 준다. 일주일에 한 번 내가 밥을 해놓는 날이라 남편이 남이 차려준 밥이라고 좋아한다.
일요일 오후는 목욕탕이나 미장원, 마트등 일상적인 할 일을 처리하고 쉰다.
특별한 자기 계발도, 치열한 목표도 없지만, 이런 소소한 일상이 나의 행복이다.
힘든 시절을 지나며
올해는 정말 힘든 일이 많았다. 시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허리뼈가 부러져 2달 동안 병간호를 했다. 회사에서 믿었던 직원들에게 비방을 받고 죽고 싶도록 힘들었다. 집문제로 소송에 휘말려 내가 직접 변호사를 만나고 처리해야 되는 일들이 생겼다. 10월에 갑작스레 인사이동에 생겨 새로운 업무에 적응해야 했다. 하나만 겪어도 힘들 일은 동시에 겪으며 사는 게 너무 힘들고 버거웠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라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일들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특별히 아픈 곳이 없고, 큰 고민 없는 평범한 하루.
그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다.
평범함 속에서 배우는 감사
'아보하'는 단순히 유행어나 트렌드가 아니다. 그것은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매일의 평범함 속에서 감사함을 느끼는 삶의 자세를 뜻한다.
힘들었던 날들을 지나온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진정한 행복은 화려한 성취나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아무 일 없는 하루 속에서 소소한 기쁨과 평화를 발견하는 데 있다는 것을.
오늘도 무탈하길. 내일도 평범하길. 그 반복 속에서 조금씩 배우고, 성장하며,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아보하', 그 보통의 감사가 내게 주어진 가장 큰 행복이다.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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