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에 변호사가 없는 경우
올해 로스쿨을 졸업한 나 변호사는 한 달 전 면접만 생각하면 유혹을 잘 넘겼다는 심정이 된다.
나 변호사는 꽤 오래 구직한 끝에 '법무법인 갑갑'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틀 후 면접장에서 그를 맞은 것은 사무장과 변호사 한 명이었다. 정작 자신과 일할 대표변호사는 자리를 비웠다며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고, 면접에 들어온 고용변호사 역시 나 변호사에게 면접 내내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았다. 사무장이란 사람만 자신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뿐이었다. 주로 서면을 어느 정도 속도로 쓸 수 있는지, 어떤 서면을 써 보았는지 등의 부분에 대해서였다.
면접 중간부터 이상한 낌새를 느낀 나 변호사는 확답을 미룬 채 처우를 논의해보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그제야 선배들에게 '법무법인 갑갑'의 평판을 조회해 본 나 변호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갑갑'은 유명한 사무장 로펌이었다. 경력을 망칠 뻔한 셈이다.
이직할 때 사무장이 운영하는 법무법인(이하 사무장 펌)만 피하라는 말이 있다. 지금 내게 욕설을 퍼붓고 있는 대표 변호사가 차라리 낫다는 소리다. 귀신같은 사수가 있어도, 대표변호사가 징계를 먹어도, 남에게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명한 블랙이라도 '사무장 펌'만 아니면 다행이라는 식이다.
그렇게 기피대상이 되는 사무장 펌이란 뭘까.
성실하게 일하시는 사무장님들은 억울할 이름이다만, 속칭 '사무장 펌'이란 이렇다. 겉으로 보기엔 정상적인 로펌처럼 보이지만 힘센 사무장(수임 능력 있는 사무장)이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로펌이다. 글로 적으면 마치 전문경영인(CEO)과 다를 게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변호사법 위반이다. 사무장이란 본래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의 업무보조 역할을 맡는 직책이다. 직원 업무를 총괄하고 법률사무소의 대소사를 도맡으면서 운영 측면에서 변호사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무장 펌에서는 '부'가 '주'가 된다. 법률사무를 할 능력이 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이가 책임 없이 이를 수행하는 것이다. 사무장이 수임, 영업, 계약을 판단하는 주체다. 사장이다. 변호사는 단지 일꾼일 뿐이다. 서면을 써주는 기계다.
위에서 예를 들었던 서초동의 '법무법인 갑갑'을 예로 들어보자. 이 법무법인 홈페이지에는 정상적으로 여러 변호사님이 소개돼 있지만 그 실질은 사무장 A가 모든 업무(수임 상담, 서면작성, 계산 등)를 총괄한다. 훌륭한 사무장 펌이다. 변호사님들은 서면만 쓴다. 월급쟁이다. 이 갑갑 로펌은 '수임'이 지상과제다. 착수금이 들어오니까다. A 사무장에겐 수임만 된다면 결과는 별 문제다. 사실 문제도 아니다. 승패를 감안 않고 수임하니 거리낄 것이 없다. 가망 없는 사건까지 모조리 승소할 수 있다며 떠벌린다. 피해는 고스란히 의뢰인의 몫으로 남는다.
수임하면 서면을 쓰긴 해야 할 텐데 그럼 서면은 어떻게 해결할까. A사무장은 여러 변호사에게 돈을 주고 '무기명 서면'을 위탁한다. 주니어급 변호사(사건을 수임할 인맥이 없는 저 연차 변호사)는 직접 고정급을 주고 채용해서 서면작성을 시킨다. 사건마다 변호사에게 배당된 시간은 짧고, 변호사들의 사건에 대한 이해도와 성실도도 낮을 수밖에 없다. 의뢰인은 대부분 첫 변론기일에 자신의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를 처음 만나게 된다.
송사란 일반인에게 일생일대의 큰 사건이다. 평범하게 살아온 소시민이라면 법원에서 소장이 날아오면 겁부터 더럭 난다. 수백만 원이 어디 땅 파면 나오는 돈도 아닌진대, 변호사 수임을 하는 데도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펌에 잘못 걸려서 명백히 패소가 예상되는 사건을 그 돈 주고 수임하는 건, 눈 뜨고 코를 베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말 문제가 있는 사무장 펌은 소장조차도 내지 않는 곳도 있다. 그야말로 사기다. 그동안 언론에 보도되어 일반 법률수요자들도 사무장 펌의 실상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지만 아직도 모르는 분은, 속는다.
아래는 법률소비자가 접하는 로펌이 사무장 펌인지 의심할 만한 최소한의 단초들이다.
착수금 비율을 높게, 성공보수는 낮게 가져가려 하는 경우
사업자등록증을 보내달라고 했더니 거절하는 경우
대표변호사와 입금계좌주가 틀린 경우(법인 명의마저 아닌 경우)
변호사와 상담하고 싶다고 하면 전화든 방문이든 매번 거절하는 경우
가장 큰 피해는 의뢰인이 진다. 두 번째 피해자는 그곳에 이름을 걸고 있는 변호사다. 어떻게 그러한 곳에 이름을 걸어놓았느냐 묻기란 쉽지 않다. 짐작만 할 뿐 그 사정을 알 길은 없다. 사실 신입 변호사들의 경우엔 잘 모르고 고용되는 경우가 99%다. 이런 펌에서 일하는 변호사는 거의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사무장이 수임 노하우를 알려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좌충우돌하며 자기가 몸으로 체득한 지식만 알음알음 깨닫게 될 뿐이다. 그나마 사건이라고 해봤자 소위 물 좋은 사건, 기업이 맡기는 큰 사건을 경험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반면 사무장 펌이라는 얘기는 금방 퍼진다. 개업한 지 금방 공중분해되고, 그 탓에 경력으로 남기는 것도 어렵다.
그나마 경력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것은 둘째 문제다. 이제부터는 범죄의 영역이다. 사무장들이 사무실을 직접 개설한 로펌에 이름만 걸어놓는 대가로 일정 금액을 지급받는 경우다.
이는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 걸쳐 있다. 로펌 안으로 들어온 회생파산팀, 등기팀으로 불리는 존재들이다. 주로 이런 형태다. 사무장을 사무소 사무원으로 등록한 다음 속칭 '등기사무장' '회생사무장'으로 부르며, 사무장이 이끄는 팀이 단독으로 그 업무를 수행하되 변호사 명의로 수임, 처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 명의 이용 대가로 법인은 매달 수백만 원의 금액을 받는다. 누이 좋고 매부 좋다. 피해 보는 건 의뢰인뿐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불법이 자행된다는 점이다. 각종 명목으로 추가 비용을 청구하는가 하면 수임료를 받은 후 무작정 지연시키다 잠적하기도 한다. 개인회생절차가 종료되면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채권은 법적으로 면책받는데, 이 면책받은 채권의 금액 일부를 성공보수로 달라고 하는 악질적인 자들도 있다. 일부 사무장 펌에서는 문서 위조도 서슴지 않는다. 모든 불법적인 행위의 책임은 명의를 제공한 변호사가 최종적으로 지게 된다.
변호사님이 실제로 등기업무를 하는 것이라면 상관이 없다지만, 이미 모두가 알지 않는가. 이른바 '수익화 전략'이라는 미명 아래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들이다. 적발되면 변호사법 위반죄의 공범 취급은 물론이다. 당연히 자신의 경력으로 쓸 수도 없다. 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형사처벌될 경우 자격 정지도 감안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사무장 펌에 이름을 올릴 수밖에 없는 변호사님들이 있다.
건투를 빌 뿐이다.
올 들어 서울변회 변호사 한 명이 연간 수임하는 평균 사건수는 평균 20건 내외로 알려져 있다. 사실 말이 20건이지,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직원 비용, 임대료, 실비. 한 달에 한 건을 수임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개업 변호사는 없다. 2009년 32.8건이었던 데 비하면 1/3 가량이 증발한 셈이다. 분모가 늘어난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