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내 동료가 돼라!!
"오 변호사님 축하드립니다, 저희 법인에서는 변호사님을 채용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언제부터 나오실 수 있으신가요?"
"아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보자… 전 아마 5월 20일쯤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희 법인은 신입 변호사님께 의무적으로 구성원 등기를 해야 되는데, 가능하신가요?"
"아…죄송합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요."
"그러시면 입사 이후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from 변호사_시작하자마자_2억원_빚진_썰.txt
고용변호사(associate attorney)가 법무법인에 막 입사한 직후 '구성원 변호사 등기'를 요구하는 법무법인이 종종 있다.
법무법인의 구성원 변호사란, 일반 회사의 이사라고 이해하면 알기 쉽다. 이 구성원은 변호사법상 법무법인의 설립, 존속 및 해산의 주체로 일반적인 변호사 업무 수행은 물론 법무법인의 자산 및 회계, 조직 변경, 합병 등을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자율적ㆍ독자적 권한을 가지고 있고, 구성원 회의를 통해 법무법인 운영 전반에 관여할 수 있다. 소위 로펌의 꽃이라 불리는 '파트너 변호사'가 이것이다. 당연히 일반 고용변호사에 비해 고용 안정성이 보장된다(어지간한 하자가 아니면 자르지 않음). 일반 고용변호사에 비해 더 나은 권한, 자율성, 처우가 주어진다. 별산이라면 방세를 면해주고, 여러 사건을 몰아 받는 등의 메리트가 있다. 유명 법무법인이라면 파트너를 다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란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문제는 구성원 등기한 변호사가 지는 책임이다.
변호사법 제58조 제1항은 '법무법인에 관하여 이 법에 정한 것 외에는 상법 중 합명회사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라고 규정하여 법무법인 구성원에게 무한책임을 지우고 있다. 등기 기간에 있었던 일이라면 '등기 1년 전부터 퇴직 2년 후'까지 무한책임을 진다. 퇴사하는 것만으로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소리다.
예컨대 오 변호사가 위의 로펌에서 일하다 퇴사한 직후 어떤 사건(재직 당시 수임)에 대해 20억 원짜리 멀프랙티스(malpractice, 법무법인의 실수로 재판에서 패소하는 등의 사고)가 터졌다고 치자. 이 법무법인이 들어 놓은 변호사보상책임보험액수가 3억 원이라면, 오 변호사는 퇴사하여 그 사건에 대해 더이상 관여하는 바 없더라도 나머지 17억 원의 채무를 법무법인의 현 구성원과 나누어 져야 하는 것이다. 종종 있는 변호사 자살사건의 배경이다.
다른 법무법인 구성원이 업무상 불법행위를 저지르거나, 멀프랙티스(쉽게 말하면 실수)로 패소하는 일 때문에 구성원 등기를 한 고용변호사들이 수십억 원의 연대책임을 지게 된 사례가 실제 있다. 등기만 되어 있을 뿐 구성원 변호사로 경영에 참여한 적이 없더라도 마찬가지다. 법원은 '구성원 변호사로 등기돼 있더라도 이익배당을 받은 것이 없고 배정받은 사건을 처리하며 월급을 받아왔다면 근로자에 해당하여 퇴직할 때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라고 최근 근로자성을 인정했지만, 이 부분을 확대하여 실제 구성원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연대책임을 면제해 준 판례는 찾지 못하였다. 실질적으로 고용변호사에 불과하더라도 피해를 입은 법인 외부인에게 있어서는 연대책임을 진다는 소리다(판례). 기사1, 기사2 참고.
도대체 왜 신입 변호사에게 법무법인의 '이사' 역할을 주려 할까. 그 이유는 주로 아래와 같다.
구성원 결원을 보충하려는 경우(법무법인의 경우 '3명'의 구성원 변호사가 필요하다)
분사무소를 등록해야 하는 경우(분사무소에 다른 변호사가 없는 경우 구성원 등기가 필수다)
절세(법무법인으로 만들 경우 적용되는 법인세가 개인이 각각 내는 것보다 절감된다)
별산제 법무법인에 입사해 활동하려는 변호사의 경우: 변호사법 제50조는 법무법인 명의로 소송을 수행하려 할 경우 구성원 변호사를 담당 변호사로 지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별산제 법인에서 변호사가 소송을 맡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구성원 변호사로 등록하거나 이름을 빌려줄 구성원 변호사를 찾아야 한다(있을 리가 없다). 별산제 법무법인이란 개인 변호사들의 법률사무소를 여럿 묶어 하나의 법무법인 이름 아래서 활동하도록 만든 형태의 법인인데, 개인 변호사처럼 활동하면서도 법무법인이라는 이름값을 통해 의뢰인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 부분 덕분에 상당수 법무법인이 별산제로 운영된다.
법인의 규모 면에서 신뢰감을 얻으려 하는 경우: 위와 상통하는 얘기로, 구성원이 많다는 얘기는 연대보증인이 많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라고 보면 된다. 자력이 보증된다는 얘기다. 의뢰인은 "아, 이 펌이 실수하면 손해배상받으면 되겠구나" 하고 안심을 한다. 사건 수임에 실제로 도움이 된다는 말도 듣는다.
연대책임을 걸 경우 고용변호사가 더 책임감 있게 일을 할 것이라는 대표변호사의 택도 없는 기대감
고용변호사의 이직을 방지하는 효과(이직 후 한동안 등기를 빼주지 않는 심술보 마인드)
구성원 등기는 예전부터 있었던 만큼, 단순히 구성원 변호사 등기를 요구한다는 점만으로 무조건 블랙이라고 판단할 순 없다. 다만 아직도 물정 모르는 신입 변호사들에게 이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어 주의를 요하는 차원에서 적는다. 특히 '사무장펌'이라거나 이미 법인이 망해가고 있거나, 법인 명의의 채무가 다수 있거나 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반드시 전임 변호사에게 연락하여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대표변호사가 "당신이 돈을 물어주지 않아도 되도록 '채무면제합의서'를 써주겠다"고 하더라도 이는 구성원간 내부 배상책임을 묻는 청구의 근거가 될 뿐, 외부 손해배상에 대한 면책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고용변호사를 상대로 강요에 가까운 구성원 등기를 요구하는 경우 변협은 이를 품위유지의무 위반으로 본다. 이런 펌이 지방변회 차원에서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중앙지검에 고발된 적도 있다. 다만 근절은 요원하다. 태평양(BAE, KIM & LEE LLC)이 2007년 유한회사로 전환한 이래 많은 펌들이 전환하였지만 아직도 상당수가 구성원의 무한책임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계속 같이 일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등기를 하라'라고 요구하는 경우, 현실적으로 쉽게 거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서초동에서 마냥 피하기도 어렵다.
하나만 기억하자. 구성원 등기는 연대보증과 똑같다. 무한책임이다. 사고가 터질 경우 피해가 너무나 크지만 실제로 사고가 벌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 때문에 다들 고민하는 것이다. 결국 구성원들의 법인 운영년수(법인명 교체)나 월급의 체불여부, 고용변호사 및 직원 근속년수 등을 따져 판단할 수밖에 없다. 좋은 펌은 절대 구성원 자리를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