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아빠는 딱 10년 후의 너한테 메시지를 남기려고 해. 2031년의 딸한테 말이야. 지금은 네가 엄마 껌딱지지만, 나중에 아빠에 대해서 궁금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할까?
아빠는 있잖아. 너만 할 땐 '아빠의 아빠'가 어떻게 살았는지 관심을 잘 안 뒀어. 공부하느라 바빴거든. 진짜야. 사실 공부보다 뭐 다른 것도 좀 하고 그랬지만, 남자애 특유의 무관심도 있었던 것 같고.
나중에 아빠가 할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었거든. 그땐 너무 늦었더라고. 그리고 인생에서 늦었다고 생각할 땐, 보통 손쓰기 어려울 정도로 늦어버렸을 때가 대부분이고.
그리고 너, 엄마랑 아빠 피를 물려받았으니까, 분명히 우리한테 무심할 거란 말이지? 아마 원숭이처럼 학교 애들이랑 노는데 정신이 팔려 있을 것 같고. 그러다가 아빠한테 궁금한 점이 생길 수도 있잖아. 그렇게 생각하니까, 갑자기 이렇게 녹음을 하고 싶더라고. 그래서 목소리 편지를 남기는 거야 오늘부터. 뭐 특별한 걸 말하려는 건 아니고, 2021년 겨울에 아빠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려주고 싶었어.
사실 아빠는 10년 후의 딸이라니 잘 상상이 안 가. 아마 이걸 들을 땐 우리 딸, 중학생이 됐을 텐데. 지금도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하면서 키우는데 그땐 얼마나 많이 예뻐졌을지 잘 모르겠네. 그리고 애기, 너 두 달 전보다 2.5cm 컸던데 이런 기세로 하면 6년만 있으면 내 키를 넘어버린단 말이지.
아무튼 오늘은 일요일이야. 그리고 출근을 했지…거기에 대해선 여러 감정이 있긴 한데 제쳐두고, 엄청 추웠어 오늘은. 아빤 겨울마다 편의점에서 파는 호빵을 먹는데 말이야, 특히 편의점 찜기에서 갓 나온 걸 좋아해. 단팥 호빵 반으로 쪼개면 김이 폴폴 나는데, 후 불면서 먹으면 되게 맛있거든.
그런데 올해는 12월이 다 가도록 호빵을 먹질 못했어. 여기저기 찾아봤는데, 아빠가 사는 데가 시골이라서 편의점에 호빵 찜기가 남아있는 데가 별로 없나 봐. 게다가 지금은 코로나19 바이러스라고 전염병이 막 돌고 있거든. 그래서 다들 편의점 안에서 먹질 않아. 아마 배달을 시켜서 집에서 쪄먹는 모양인데, 그래서 찜기에 호빵을 넣어놓은 데가 별로 없어.
딸, 이걸 듣고 있는 지금도 편의점에 호빵 찜기가 남아있을까? 남아있을까 모르겠네. 딸이 호빵을 좋아할지도 모르겠어. 만일 좋아한다면 아빠처럼 단팥호빵을 좋아하면 좋겠는데. 야채호빵이나, 피자호빵일 수도 있겠지만 말야. 혹시 단팥호빵을 좋아하면 오후 다섯 시 정도까진 아빠한테 알려줬으면 해. 아빠가 집에 사갈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뭐 오늘은 거창한 거 하려는 것도 아니고 이정도만 할께. 그리고 아빠가 이거 회사 방송실 몰래 쓰는 거거든? 걸리면 아빤…쫓겨나고 말아. 그러니까 앞으로도 걸리지 않길 빌어줘. 아마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이렇게 만들어서 보내볼까 하는데. 생각해보니까 이 브런치가 10년 후에도 남아있을까 엄청 걱정이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