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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변호사 Feb 09. 2022

차를 팔았다


1.

차를 팔았다. 아내가 결혼하면서 가져온 2007년식 흰색 아반떼 HD '럭셔리'다. 이 차는 아내가 다니던 회사 선배에게서 500만 원인가에 사들인 중고차였는데, 우린 이 차를 '돌돌이'라고 불렀다. '덜덜이'라고 부르면 차가 불쾌해할까 봐 바꿔 불렀다. '럭셔리' 모델이랍시고 오토 에어컨 기능이 됐다.


전 주인이 시대를 앞서갈 정도로 개인정보에 민감했는지, 차는 밤만 되면 밖이 잘 안 보일 정도로 선팅이 짙었다. 팔려 간 차량 양쪽에는 커다란 스크래치가 나 있어 아이는 차를 '스카페이스'라고 불렀다. 차 왼쪽의 흉터는 결혼 전 아내를 만났을 때부터 있던 것이었고(그 차를 산 첫날 만들었다고 했다) 오른쪽은 내가 주차장에서 우회전하다 벽을 차로 긁어 만든 것이었다. 양쪽에 꽤 크게 나 있어서 수리하려면 두 '문짝'을 통째로 바꿔야 했다. 차 값보다 수리비가 비싸서 그대로 두었다.


그 스크래치가 점점 녹슬어갈 때쯤 돌돌이는 14만 킬로미터를 달렸다. 차의 핸들을 처음 잡은 건 결혼한 후 로스쿨 통근을 시작하면서였다. 사고를 낼까 봐 시속 40㎞로 아파트와 학교를 오갔다. 아이가 태어난 후엔 뒷좌석에 카시트를 설치했는데, 요즘 차가 아니라 카시트를 고정하는 곳이 없어 애를 먹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면 공짜로 제공해주는 자동세차기에 차를 넣어 기스가 좀 나도 괜찮았고, 먼지투성이가 되어도 별로 부끄럽지 않은 차였다. 아이의 말머리 킥보드는 거의 항상 돌돌이 트렁크에 들어 있었다.


애가 커가고 하면서 안전한 차로 바꿔야겠다 싶어서 결국 차를 샀다. 돌돌이의 외관상 아무도 데려갈 사람이 없을 것 같았지만 우리 모두 폐차는 원하지 않았다. 회사를 다녀오니 120만 원에 차가 팔려 갔다. 마음이 허했다. 아이가 돌돌이 어디 갔어? 라고 물어 다른 사람이 타고 갔다고 했다. 아내는 "중동에 가서 택시로 100만㎞까지 뛴대, 그래서 팔았어"라고 위로했다.


안녕, 그리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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