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고 가는 자리에 놓여있는 카페의 테이블이 우스워 보였다. 사람들이 치고 가며 밀려버리는 게 내 모습 같아서.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빈 집은 내 기분처럼 난장판이 되어있고, 레인지에 데운 찬 밥과 반찬을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넘기며 채운 배는 더부룩하기만 하다.
그 와중에 내 발 밑에 똬리를 틀고 자리를 잡은 반려견 뽀삐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졸음을 참느라 애를 쓰고 있다.
감출 수 없던 냉소적인 한 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반기지 마.
어차피 너만 상처 받아.
시간을 공유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거나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이어폰을 꽂고 내 할 일을 그저 묵묵히 한다. 앞 뒤로 간격을 두고 걷는다. 삶의 수칙처럼 정해져 버린 마음 닫기는 이토록 한결같다.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관심을 받는 일도 괴롭기만 하다. 말 한마디 떼는 것이 힘든 사람에겐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일 수 있다. 그래서 위로마저도 와 닿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를 애써 위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나는 해결사가 아니기 때문에 타인의 답답함이 고작 위로의 몇 마디로 풀릴 리가 없다.
착하면 멍청하다고 손가락질받는 세상에서 애써 베푼 선의는 타인의 왜곡된 말 한마디에 악의로 변질된다. 나의 순수한 의도는 사람들의 저 마다 다른 기준점들에서 난도질당하다 벗어나 있기 일쑤였고, 숱한 왈가왈부 속에서 고개를 돌리고 나의 길을 가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하다는 것을 몸소 겪어왔다. 다른 길을 가는 것인데 틀리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혀놀림 속에서 나는 ‘정’을 버리는 게 개인적으로 더 가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정 때문에 사람들에게 끌려다니며 몰매 맞진 않아도 되니까.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마음을 돌보지 못했기 때문인지 스스로에 대한 신뢰도 퇴색되어 버렸다. 파란 하늘을 좋아하는지, 먹구름이 잔뜩 낀 날씨를 좋아하는지, 길거리를 쏘다니며 사람 구경하는 게 좋은 지, 혼자 집구석에 처박혀서 잠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좋은지, 나 자신조차 나를 모르니까.
그래서 섣불리 타인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그리고 관계가 깊어지는 것 또한 원치 않는다. 경계선을 명확하게 그어놓고 넘나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주제넘게, 염치없이, 상처주는 일 없도록-
한 땐 외로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토록 오래된 형제들이 남보다 못 한 사이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애초에 싸울 일이 없는 내 경우가 차라리 자유롭지 않은가. 추억은 시간의 저 편으로 묻혀져서 되돌아 올 길이 없으며 이따금씩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인데, 거기에 얽매여 있어봤자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테고. 그래서 혼자 있는 게 이제는 익숙하다 못 해 편하다. 어차피 내 인생을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니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아도 내 안의 먼지는 쌓인다. 그래도 벌레가 들어오는 것보다 들어오지 못 하도록 꽉 닫아놓는 게 심적으론 훨씬 편하다. 살다보면 누군가 나의 문을 부수는 일이야 있겠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내상이 덜한 편을 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