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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민 Sep 13. 2019

명절의 의미


 명절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멀리 사는 일가친척들 얼굴을 일 년에 한두 번만이라도 보고 살자는 취지에서 존재하는 것 같은데, 오히려 부정적인 측면들이 더 부각되는 게 사실이다.


 내가 기억하는 명절의 풍습은 엄마의 굳은 표정 속 차려진 방대한 양의 명절 음식들과,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고모들의 멸시 속 딸이라는 이유 하나로 절도드리지 않고 방에만 박혀 있던 나였다. 친조부모님께서 다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아버지는 형제들과 왕래를 끊고 엄마를 제사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었다. 몇십 년을 제사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던 엄마의 한은 생각보다 깊었고, 이따금씩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워너비 시댁과 가족의 연을 맺을 게 아닌 이상 결혼은 할 것이 못 되는구나 생각하며 살아왔다.



 벌써 결혼 8년 차에 접어든 나의 명절은 굉장히 즐겁기만 한 날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깨인 의식을 갖고 계신 시어머니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이번 명절은 두 분을 모시고 산정호수에 가서 원 없이 먹고 뒹굴고 놀고 오기에 바빴다.


 이런 나를 보며 친정엄마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던지, 마음을 그리 나쁘게만 쓰고 살아오진 않아서 이렇게 복을 누리는 건지, 긴가민가해하면서도 흐뭇하게 바라봐주었다. 당신과는 다르게 명절만 되면 시댁과 여행 다니기에 바쁘니 친정엄마 입장에선 이보다 복된 일은 없으리라.


 결혼하자마자 완전히 제사가 없던 시댁이 아니었다. 시어머니께서는 무려 삼십여 년을 홀로 제사를 지내오셨고, 그나마 줄인 게 큰 명절에 모든 제사들을 합쳐 두 번 꼬박 하는 것이었다. 시아버지께서는 장남이시기에 이를 손에 놓는 것이 자존심과 연결되는 일이었고, 시어머니께서는 어쩔 수 없이 해오셨던 일이기에 그러려니 포기하며 살아오셨던 것이다. 이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자유 영혼인 내가 결혼에 제사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겠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이혼할 게 아니면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설거지를 맡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를 향한 깊은 측은지심이 발동하였다. 같은 여자로서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오셨을지 가늠조차 못 하겠지만 경이롭기까지 해 보였다. 나라면 그 시절에 소박맞는다 해도 이혼하고 뛰쳐나갔을 텐데 어머님께서는 오로지 자식 하나 바라보면서 속된 말로 남의 집 제사를 맏며느리의 도리 하나로 지켜오신 게 아닌가.


 몇 년 전 차례를 마친 후 몇 주간 몸살을 앓고 나신 어머님께서는 아버님과 우리 부부를 한 자리에 모아놓으시곤 명절 제사마저 정리하자, 절대 하나뿐인 자식과 며느리에게 제사를 물려주지 않겠노라 대 선언을 해버리셨다. 속이 조금 쓰리셨던 아버님께서는 예스라는 말을 쉽사리 내뱉지 못하셨지만, 이번만큼은 어머님께서 아주 완강하게 밀어붙이셨다. 묘도 정리해버리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 정리해서 우리도 명절마다 애들이랑 여행 다니고 맛있는 것 좀 먹고 남은 여생 가족끼리 추억을 만들고 힐링이란 것을 하고 살자며 으름장을 놓으셨다. 그렇게 일순간에 정리된 제사는 우리의 명절 일정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어머님께서 전을 한 가득 사들고 여행을 떠나시는 모습이 여전히 익숙하진 않지만, 우리의 행복감은 식을 줄 모른다. 이게 진정한 명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산 사람 먹자고 만드는 음식들은 결국 식자재 낭비로 쓰레기가 되어 배출된다. 뼈 빠지게 일하는 것은 남의 집 귀한 딸들이고, 안방에서 술에 취해 코를 골고 자는 남편들은 정말 남보다도 못 한 사람들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곡소리 나는 명절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들숨 날숨, 이혼 소리가 절로 나오는 명절 다음 날은 가정 파탄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통계적으로 이혼율도 높게 나타난다.


 차라리 돈을 더 들여서 가족끼리 가까운 곳으로 미리 숙소를 예약해 하루라도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여러모로 의미 있는 명절날이 될 것 같다. 조상님들 모신다고 가정 파탄 내어 고독사 할 생각이 아니면, 가족들과 하루라도 알찬 시간을 보낼 생각에 바빴으면 좋겠다. 그러한 명절 풍습이 우리나라에 정착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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