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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Mar 22. 2022

아주 사적인 인터뷰 : Ep.3

나의 사적인 타투이스트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한 2년 정도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리 관계의 시작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때때로 대체 타투이스트랑 어떻게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거야? 넌 정말 외향적인 사람이다. 하고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맨 처음 만난 곳은 바늘이 가득하고 각색의 잉크가 일렁이는 작업실이 아니라 그저 쿰쿰한 냄새가 나는 지하층의 사무실 앞에서였다.

 첫눈에도 동이는 사무실과 어울리지는 않았다. 잔뜩 층이 낸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그물처럼 성긴 여름용 니트를 대충 걸친 동이는 1층의 사무실 현관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달달한 냄새가 났다. 액상형 전자담배. 누가 옆에 오든 말든 사무실 현관 흡연공간에 놓인 초록색 벤치에 기대앉아서. 편협한 내 시각으로 보아 이 사람이 여기 거주하는 사람 중에 하나인가? 싶을 정도로 동이는 사무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름용 긴팔 니트를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이사이로 보이는 살갗에는 이런저런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 엷게 훑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몇 분쯤 지나고 나니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꾸벅 숙여 머쓱한 인사를 하고 옆에 앉았다. 괜히 말을 한 번 붙여볼까 싶은 신입의 패기나 호기심 같은 것은 아니고 그냥 같이 앉아 담배나 하나 피울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의외로 말을 먼저 붙여 준 것은 동이였다. 머쓱하게 몇 마디를 나누고 회의실로 같이 내려간 것이 처음이었다. 우리의 처음.


 동이한테 타투를 받기로 한 건 약간의 객기였다. 그때의 나는 총 두 개 정도의 타투가 있었는데 하나는 강아지와 고양이, 다른 하나는 망해버린 나의 첫 레터링이었다. 동이가 수줍게 저 타투도 해요, 하고 내 타투를 콕 집어 가리키며 자신의 타투 계정을 소개해 준 게 우리의 첫 인연의 물꼬였다.



 동이와의 인터뷰를 잡은 건 계획적이면서 충동적이었다. 서로의 쉬는 날이 맞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짧은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내 '새'타투를 위해 만났을 때 인터뷰를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동이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고민했다. 타투에 집중할 때면 쓸데없는 이야기도 휘발시키지 않고 그대로 내뱉기 때문이라는 말을 반복했지만 내가 '알아서 걸러 들어 볼게!'하고 이야기하는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러자.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선생님. 그동안 잘 지내셨을까요? 근황이 어떻게 되세요?


동이 아 네. 잘 지냈습니다. 뭐 별 거 없이 잘 지내서 할 말이 없네요. 맨날 일하고 있죠.


지금 하는 일은 재미있으신가요?


동이 일이 일이죠 뭐. 재미란 게 있나요(웃음)


죄송하지만(웃음) 인터뷰를 위해 좀 길게 말해주시겠어요? 농담입니다. 어쨌든 본분 중이시니까-타투를 진행하기 시작했을 초반, 동이는 집중해서 내 팔에 바늘을 찌르고 있었다. 아야!- 아 일단은, 이 사터뷰 기획을 원래 본인이랑 같이 하기로 했었던 건데 제가 혼자 먼저 진행하고 있죠. 그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동이 제 죄가 큽니다. 저는 디자인이 정말 하고 싶을 뿐인데요.


그렇죠. 뭐 제가 진행을 잘해 놓으면 거기에 디자인과 사진을 입혀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최근에서야 제가 디자인의 '디'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중략) 일단은, 저희 사터뷰로 동이 씨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뭐 하시는 분인지 간단하게 소개 가능할까요?


동이 저는... 저는 뭐 하는 사람일까요? -이 대목에서 우리는 또 웃음을 터뜨렸다.- 일단, 일단 저는 합정에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매니저로 근무를 하고 있고, 쉬는 날에는 간간히 타투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렇죠. 사실 제가 알고 있는 동이 씨는 직업으로서의 타투이스트의 면모도 단단하신 분인데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타투 작업을 하고 계신데 그때와 지금의 본인이 달라진 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동이 본인의 달라진 점이라고 하면...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처음, 그러니까 초반에 작업을 할 때는 아 모르겠고 얼른 손님한테 바늘이나 찌르고 싶다. 그러니까 이게 말이 이상한데. 작업물이나 얼른 만들어내고, 내 스타일을 쌓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면 요즘은 제 '스타일'을 찾고 정착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제가 그 찌르고 싶어 하시는 바늘에 많이 희생당했겠군요.


동이 저기요 님이 하고 싶다고 하신 건데요.


네에, 어쨌든요.


동이 손님이 오면 예전에는 일단 손님이랑 함께 뭘 그리고, 일단 작업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지금은 내 스타일을 잡고 싶다. 완성하지 못해도. 이런 게 더 커진 거죠.

동이의 새 작업실의 실내화

그럼 본인이 추구하는 자신의 스타일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 같은 게 있을까요?


동이 그걸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우리들은 다 과도기라는 걸 거치니까요.


동이 그렇죠, 약간 지금이 그 과도기인 것 같아요. 나의 스타일과 정체성을 찾는?


저희가 계기가 타투였던 만큼 타투 얘기를 더 안 할 수가 없는데, 제가 지금 걸어 다니는(웃음) 거의 동이 포트폴리오인데 이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동이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고마워요. 제가 타투를 항상 그만둬야 하나? 접어야 하나? 생각이 들 때쯤 당신이 문의를 주거든요. 진짜로. 항상 그런 시기예요.


이건 좀 로맨틱 같은데. 사랑이죠 이런 게? 그럼 저한테 작업하시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즐거웠고, 이거 이 사람한테 찰떡인 것 같다! 생각했던 작업이 있을까요?


동이 빨래 인간이요. 재밌고 찰떡이었어요. 아픈 부위인데도 꽤 잘 참으시더라고요.


그때를 회상해 보면, 저희가 그때는 별로 친한 시기는 아니었는데 혹시 기억하실까요?


동이 네 맞아요. 저희가 친분이 있는 시기도 아닌데 냅다 타투를 받으러 오셨잖아요. 저는 근데 이게 진짜 신기해요. 제가 일하는 '회사'사람들을 제 삶의 바운더리로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주의거든요. 어느 순간 Y 씨가 제 바운더리 안에 들어와 있더라고요. 혹시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아, 이거 진짜 제가 할 말이 있는데 제가 이런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다들 자신의 바운더리로 쉽게 들이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대개 그들의 바운더리 안에 있거든요. 그냥 제가 그런 사람인가 봐요.


동이 틀을 깨는 분이시군요.


(웃음) 그러면 사터뷰 고정 질문을 한 개 해 보겠습니다. 제 첫인상이 어떠셨을까요?


동이 어.. 이런 말 해도 되나?-정제하지 말고 해 보라고 하자 상상치도 못한 말을 해 이 부분을 잘랐다. 녹음본으로 들을 때마다 웃음이 비실비실 나온다.- 아 안되는군요. 그러면. 음. 그냥 저랑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같았어요. 잘 맞을 것 같고.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도 잘 맞을 거 같다, 얘랑은.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귀엽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때 제가 짧은 숏컷이었을 거예요.


동이 맞아요. 기억하는 모습 중에 제일 짧은 숏컷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일주일에 한 번 회사에 갔었는데, Y 씨를 처음 보고는 솔직히 회사에 갈 때마다 오늘은 있나? 오늘은 나오나? 하고 기다렸습니다.

저를 사랑하시네요(웃음) 그러면 고정 질문 두 번째 해 볼게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실까요?


동이 사랑은 병이죠. 병이에요. 죽어야만 고쳐지거든요.


사랑은 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사랑하시는 게 있을까요? 어떤 사랑이 던지요.


동이 저는 대개 모든 걸 사랑합니다. 뭔가 사람이랑 이렇게 어떻게 하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니까요. -동이가 두 번째 도안을 건드리기 시작한 즈음인 것 같았는데, 녹음본에서는 아프다는 내 말이 더 크게 들려서 뒷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본인이 지금 가장 크게 애정을 쏟고 있는 상황이나 물건은요?


동이 (조용히 팔을 찌르면서) 지금 당신의 팔에 이 도안이요. 아프세요?

팔과 팔꿈치에 자리잡은 세 마리의 새

당시에 진짜로 아팠다. 팔꿈치 아래쪽은 두 번 다신 하지 않을 거라는 다짐을 했다.


제가 받은 것 중에는 좀 아프네요. 그럼 사랑을 제외하고 22년 본인의 새로운 목표나 다짐이 있으실까요?


동이 2022년 목표.. 목표는 일단 코로나 안 걸리기가 목표입니다. 사실 지금 30만 40만이 넘어가면서 주변에서도 확진되는 경우들을 많이 보는데, 이게 경증 환자들도 분명히 있지만 가볍게 넘어가지만은 않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나이가 많은 분들 같은 경우나? 기저질환이 있는 분들한텐 위험하니까. 일단 저도 주변 사람들도 안전했으면 하는 마음이 22년 목표라면 목표일 것 같아요.


저도 목표 중에 하나로 추가해야겠네요. 그럼 타투 외에 본인의 취향이랄 게 있다면?


동이 앞서 이야기했던 타투 취향처럼,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이게 제 주변 사람들이 제 스타일을 더 확실하게 아시더라고요. 제 주변 사람들은 이거 동이가 좋아할 것 같다! 하고 딱 알아본대요. 남들이 보기에 제 스타일은 좀 확고한가 봐요. 요즘 취향은 털이 달린 것들을 좀 좋아합니다. 겨울 날씨가 다 지나가 버렸는데도요. 복슬복슬한 털실로 싸인 오브제를 보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져서 좋아해요.

작업대에서 잉크를 고르는 내 타투이스트

그럼 슬슬 마지막 질문을 해 볼까요? 타투가 아파서요(웃음)


동이 네. 사터뷰 마지막 질문이 뭔가요?


이번 사터뷰, 후련하셨나요? 재밌으셨는지도 궁금하네요.


동이 인터뷰라는 걸 처음 해봤는데, 작업하면서 인터뷰를 하다 보니까 너무 아무 말이나 하게 된 것 같아요(웃음). 재밌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일단 후련하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네요.


그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동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갑시다!



 동이와의 인터뷰는 작업이 끝나기도 전에 끝났다. 우리가 더 사적인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하기 때문이었다. 작업은 총 두 시간 정도가 걸렸고, 우리는 꾸준히 떠들었다. 인터뷰가 아닌 것들에서 이야기해야만 즐거운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의 과도기와 어른이라는 기준에 대해서. 또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종종 사랑하는 것이 없기도 하고 너무 많기도 한 삶을 살면서 어떻게 익숙해지고 어떻게 떠나가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우리의 관심사는 한 장 들추면 사라져 버리는 얄팍한 사랑에서부터 일상적으로 언제나 존재하는 사랑에까지 다가갔다. 대화를 나누다가 내용은 휘발되고 순간의 의미만 남는 순간도 분명 있었다.


 동이와는 앞으로도 다정하게 사랑하며 지내기로 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서로가 떠오를 때 안부를 묻고, 떠오르지 않아도 가끔은 안부를 묻고. 일 년에 하루뿐인 생일을 서로 돌보는. 그런 다정하고 사랑하는 사이로 지내기로.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과 감상에 대해. 나는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는 삶을 살지만. 동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무리한 내 사랑에 대한 태도는. 순간적으로 넘치는 감정들을 전부 사랑이라 부르지 않기. 충만한 무언가를 전부 사랑이라고 이름 붙이지는 말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동이가 말한 사랑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런 것도 사랑이니까.


20220322

그럼에도 우리 사랑하며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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