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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슈 Jan 14. 2019

일본의 양심이 보는 <현대 일본의 역사인식>

일본의 대중적인 역사관 '메이지 신화'속에 사라진 조선합병의 부당함

이번 글은 일본의 역사학자 나카츠카 아키라의 저 <현대 일본의 역사인식> 의 서평이다. 국내에서는 <"일본의 양심"이 보는 현대 일본의 역사인식> 이라는 제목으로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에서 번역출판하였다.


먼저 1장에서 저자는 일본 전반에 만연한 '메이지신화'를 소개한다. 이 메이지 신화를 간단히 말하자면, 이는 다시 말하자면 '쇼와의 실패'에 대비되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쇼와시대의 전쟁, 즉 2차세계대전에서의 비이성적이고 광기적인 측면을 실패로 보고, 그에 대비해 정의로웠던 메이지 시대를 대비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메이지 시대에 우리는 정의로웠으나 쇼와 시대에는 미쳐돌아갔고, 그것이 2차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실패의 원인이다"라는 생각이다.


저자는 여러 과거와 현재의 지식인들의 발언과 저서를 언급하며 이와같은 메이지 신화가 얼마나 널리 상식으로서 존재하고 있는지를 보인다. 물론 역사학자와 일반 대중간에 역사관이 불일치한 사례는 종종 발견되는 흔한 일일지도 모르나, 저자는 역사학자들과 지식인들의 발언에서도 이와같은 상식이 되풀이됨을 보이며, 이것이 지성인과 대중을, 혹은 역사계를 막론하고 널리 통용되는 상식임을 보인다.


그렇다면 메이지 시대의 '정의로웠음'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 시대에 있었던 주요 일본의 대외정책으로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조선의 합병과 타이완의 식민지화를 들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 내에 상식으로서 존재하는 믿음 하에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중에 일본은 문명국으로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국제법을 준수하였고 전쟁중에도 외국인 포로에대한 처우 등에서 선진적은 모습을 보였다고 여겨진다는 점에서 이러한 정의로움이 메이지신화에 내포되어있음을 보인다.


반면 쇼와의 실패에는 이러한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군이 정부의 통제를 따르지 않고 폭주하여 일으킨 만주사변, 중일전쟁중에서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학살과 인권유린, 국제법이 준수되지 않고 포로에게 가혹행위가 이루어진 태평양 전쟁 등이 메이지의 정의로움과 대비될 것이다.


그러나 메이지 성공에 가려져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당시 일본의 대외정책에는 타이완과 조선에 대한 침략이 존재한다. 2장에서 저자는 이 시기의 사건들이 대중들에게서 감추어져있음을 보이고, 이 시기 실제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독자에게 설명한다. 어쩌면 이 부분은 한국인 독자에게는 크게 새롭지 않은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한일합방과정에서 있었던 조선정부 혹은 민중의 저항을 언급하고(*이 부분은 후에 4장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가치관과 연관되어 보인다) 이를 통해 한일합방이라는 행위가 오랜 전통과 독자성을 가진 국가를 침탈한 행위의 부도덕함을 강조한다. 또한 조선정책과 만주정책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하는데, 다시 말해 일본은 처음부터 조선을 병합하고 만주는 완충지로서 국가 안보를 위한 영역으로 설정하고, 여기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왔음을 보인 것이다. 이는 쇼와의 실패는 메이지 신화와는 불연속적으로 만주사변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 된다.


3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일본의 역사 조작을 설명한다. 다만 이 조작이라는 것이 당시대에 이루어진 행위라는 점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역사왜곡'이라는 단어와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운요호 사건의 경우, 기존 일본에서는 운요호가 물을 찾기 위해 인천에 상륙했다가 공격을 받아 어쩔 수 없이 항전했다는 서술이 주류였으나, 저자는 실상은 그렇지 않았음을 보인다. 강화도가 조선의 안보상 중요한 요충지였음을 인지한 상태에서 측량을 목적으로 무리하게 진입 하였으며 이로 인해 전투가 벌어졌고, 이후 해당 행위가 국제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걸 분명히 인지 한 상태에서, 이에 대한 정당화를 기하기 위해 '물을 구하기 위해'라고 전후사실을 조작했음을 보인 것이다. 저자는 기밀로 분류되었던 사료들을 참조하고, 이를 통해 이러한 정치 외교적인 이유로 윤요호 사건에 대한 보고서가 한번 수정된 것을 보임으로써 그러한 정황을 폭로한다.


윤요호 사건은 이후 강화도 조약의 체결로 연결되며, 이는 이후 청일전쟁에도 원인을 제공한다. 동학농민운동을 계기로 청군이 조선에 파병되자, 일본 또한 조선에 파병하고, 이를 기회로 청군과 일전을 벌여 조선에서 청나라의 영향력을 일소하고 조선의 조정을 장악하려 하였다. 그러나 동학군이 자진해산하자 일본군은 더 이상의 군사적 움직임을 보일 명분을 잃게 된다. 여기에 일본은 강화도조약에서 명시된 독립국 조항을 들먹이며 명분을 조작하려 한다. 조선이 청에 종속적인 모습을 보이는것은 조약의 위반이니, 조선 조정의 요청을 받아 일본이 청의 군사를 몰아낸다는 명분하에 청군과의 전쟁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 조정으로부터 그와 같은 요청을 형식적으로라도 받기 위해서는 무력시위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이루어진 행위가 바로 경복궁 점령인 것이다.


이와 같은 경복궁 점령은 일본 외무성의 주장으로 시행되어 청일전쟁의 포문을 열었고, 이후 경복궁점령 사건은 우발적인 군사충돌로 인해 시작되었고, 일본군이 약간의 무력을 행사하여 이 소란을 정리한 정도로 서양 열강에게 전해졌으며 이러한 견해는 일본인들의 현대 역사관에도 이어진다. 운요호 사건과 같이 여기서도 일본은 조작한 사실관계가 현재의 역사관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모종의 외교적 공작이 만주사변으로 대표되는 쇼와시대의 사건과는 달리 군대에 앞서 민간정부의 주도로 진행되었음이 특기할 만 하다. 어쩌면 이는 오히려 메이지시대가 쇼와 시대와는 달랐음을 보여주는 일화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당시 일본의 확장정책에서는 정부가 통제력을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줄 테니. 그러나 저자는 달리말해, 이는 오히려 만주사변과 같은 부도덕한 침략 행위가 군에 앞서 민간정부 중심으로도 이루어졌음을 보이며, 메이지시대 민간 정부 외정의 부도덕함을 보여주는 예시로 제시한다.


이렇듯 일본이 공작을 벌여 명분을 위조하고 사실관계를 은폐하는 행위는 베트남전과 그 전후에 미군이 벌인 - 통킹만 사건과 같은 - 공작들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베트남과 달리 당시는 제국주의 시대였고 힘있는 제국의 침략과 이를 위한 공작은 당시의 관점에서 그토록 부도덕적이라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다만 그와같은 제국주의 시대임을 감안하더라도, 본 저에서 저자가 목적으로 하는 메이지 신화를 부정하는 데에는 충분한 예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본 저의 의도는 당시의 일본이 타 제국주의 국가에 비해 얼마나 정의로웠나, 혹은 부도덕했는가를 비교하는게 목적이 아니라, 메이지 시대에도 쇼와시대만큼 부도덕했음을, 한 국가의 이 두 시대를 비교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러한 부도덕함이 쇼와시대와는 달리, 오히려 정부 주도로 이루어졌음을 통해, 어쩌면 더 부도덕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 조작의 문제는 우리, 즉, 한국의 대중들에게는 감정적으로 민감한 주제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저자는 분명히 일본인이고 저자가 목표로 하는 대상들 또한 일본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본 저에서와 같이 역사의 본 모습을 재조명하고 재해석 하는 행위가 필요로 하는 이유를 일본 대중들에게 설득해야만 하는 필요성을 진다. 4장에서 저자는 그와 같은 정당화를 시도하여 일본인 독자를 설득하려 한다.


저자는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을 중점적으로 연구해온 학자였다. 그렇기 때문인지 그는 이번 장에서 동학농민운동을 중심으로 서술을 시작한다. 대한민국의 근대사에서 동학농민운동이 어떻게 꾸준히 역사 속에서 끄집어올려졌는지, 오랜 세월동안 그 행위가 되풀이 되며 여기에 의미가 붙여지고, 재해석되었는지를 보인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동학농민운동은 끊임없이 변형되고 되풀이되어 화자되었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기에는 학정에 저항하는 농민들의 저항정신이 강조되었고 이는 군사정변의 정당성을 역설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시대가 흘러 광주항쟁 이후에는 민주화진영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민주화운동과 저항을 상징하기 위해 화자되었다. 2000년도 이후 국민의정부가 들어선 뒤로는 여러 과거사 특별위가 조직되어 활동을 시작하였고 동학농민운동 또한 그 과정에서 또다시 재조명 되었다.


이와 같이 꾸준히 연구되고 재조명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참여자들과 의미들이 발굴되고 부여되고 있다. 동학의 인본주의적 사상, 그리고 이 과정에서 참여하고 희생된 여성들에 대한 조명. 이러한 발굴과 재해석들은 동학농민운동을 단순히 한민족이 국가와 외세를 상대로 저항했다는 의미 그 이상을 떠나, 세계와 인간을 위한 인본주의적 사상을 가졌다는 의미가 부여된다.


여러 세대에 걸쳐 형성되고 변화한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대한민국 내의 인식 변화를 통해, 저자는 인본주의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역사적 재해석을 통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한국 국민인 우리 또한 이 문제를 한국과 일본의 문제, 즉 민족의 문제로 여기고 흥분하고 분노한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근본적으로 일본을 적대시 함에 따라 일본인들을 상대로 할 경우는 그 설득력을 잃는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히 한국과 일본 사이의 민족적 문제가 아니라, 더 광범위한 세계의 평화와 인본주의의 문제라면 어떨까? 저자는 동학농민운동이 대한민국 내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사례를 통해 그와 같은 의미부여가 가능함을 보이고, 이를 통해 일본인 독자들이 이와같은 역사의 재해석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를 촉구할 수 있는 것이다.




책은 전반적으로 여러 사료들을 인용하며, 인용구를 제외한 부분은 굉장히 짧고 쉬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도 저자는 일반 대중을 독자로 설정했기 때문에 일부러 쉬운 서술을 의도한게 아니었을까? 그러한 측면에서 이 책의 첫 이미지는 대중교양서처럼 느껴지지만 정작 여기에서 인용되는 사료들의 분량, 혹은 그 사료에 접근하는 방법에서 느껴지는 저자의 전문성을 생각하면 결코 가벼운 교양서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다만 이 책이 의도한 독자가 1차적으로 일본의 일반 대중들이기 때문에 우리들- 즉 한국의 일반 대중들 - 이 읽기 위해서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된다.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것은 딱히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 같은 것은 아니었다. 사실 독서연습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우연히 집의 책장을 열었는데, 우연히 거기에 이 책이 있었던 것이다. 왜 이런 책이 내 집에 있나 했더니, 원불교학과를 졸업한 우리 형이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은 책이었더라. 그리고 다시한번 보니 내 형에게 그 책을 주신 분이 이 책을 번역하신 분이자,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박맹수' 본인이셨다. 이런 인연이 다 있나. (책 중에 그 분의 배경으로 원불교가 언급될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다.)


다만 계기는 그렇다 했을지라도, 일본과의 초계기 사건으로 외교분쟁이 비화되고 있는 현시대에 나름 유관한 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페이스북에 종종 글을 올리시는 페친이신 '역사학자 전우용' 선생님은 운요호 사건과 최근의 초계기 사건을 연관지어 글을 쓰기도 하셨다. ( https://www.facebook.com/wooyong.chun/posts/2419415508130724 )


개인적으로는 일본의 역사왜곡을 규탄한다는 대단한 의미가 아니더라도, 단순히 최근의 시류에 연관된 과거의 문제를 좀 더 세밀하게 공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점에서도 좋은 독서이자 공부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구한말 역사에 대해서 훑어보듯 공부했던 바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는데, 이를테면 어떻게 일본은 평화적인(?) - 즉 정식으로 군사적 침략은 하지 않는 방식으로 - 조선의 국권을 야금야금 갉아먹어 조선 합병에 이르렀는지, 그 과정의 한 단계 단계를 구성하는 사건들은 알 지언정 이들간에 연게되는 거시적인 흐름을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분명히 교육과정에서 가르쳤을 텐데 내가 잘못 배운 탓이리라.)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본인의 관심사인 동학농민운동으로 부터,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운요호 사건에서부터 비롯하여 일본정부가 의도적으로 조선을 침탈할 의도를 가지고 접근 해 왔으며 공작을 벌여 왔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진실이 왜곡되었는지를 서술했다. 일본인 독자에게는 상식과는 다른 메이지시대 일본의 추악한 모습을 시사한다는 면이 의도였겠지만, 한국인 독자에게는 그 모든 과정이 침략자 일본의 시선에서 서술되고 있다는 점에서 읽어볼 의의가 있지 않을까?


병자호란의 서술에서도 그렇고, 우리는 종종 침략자가 왜 침략을 하였는가 하는 그들 시선의 시점을 망각하고, 왜 우리는 침입을 당하고 말았고 마침내 패배하고야 말았는가 하는 다소 수동적인 관점으로 역사를 보곤 한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패배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주관적인 시선에서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침략과 패배라는 구도에서, 혹은 가해와 피해라는 구도에서, 사건의 원인은 그 침략자에서 찾는것이 1차적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인이 서술한, 조선 침탈의 과정을 그들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의미있는 행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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