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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Nov 17. 2017

문화를 담는 그릇

문화 비축기지

00 천하제일 무술대회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만화 드래곤볼을 보신 분들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지만, 드래곤볼에는 '천하제일 무술대회'라는 거창한 이름의 대회가 초반에 아주 중요하게 등장한다. 전 세계에서 무술을 연마하던 무술인들이 각지에서 모여 무술 실력을 겨루는 대회로, 다양한 특색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여 주인공인 손오공과 겨룬다. 최대한 같은 환경에서, 실력을 겨루어서 승패를 가른다. 결국엔 손오공이 어찌어찌하여 우승하게 되지만, 어떤 인물들이 나오는지 지켜보는 것도 만화를 보는 큰 재미다.



대한민국의 건축계에도 천하제일 무술대회가 있다. 건축하는 사람들이 무술대회라니 의아하겠지만, 정말 만화에서만 나오는 것과 같은 대결의 순간들이 우리들에게도 찾아온다. 같은 땅에서 같은 주제를 가지고 서로 디자인을 겨룬다. 조선시대에 관직을 얻기 위해 치르던 과거라 비유할 수도 있을 테다. 건축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현상설계라고 부른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다. 한국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건물에 대해서는 무조건 현상 설계라는 단계를 거쳐서 설계 회사를 선정하게 되어 있다. 나라에서 어느 땅을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 정해서 공모하면, 수많은 설계사무소들은 그것을 보고 지원한다. 그 땅에 어떤 건물이 들어서야 하는지, 각자의 관점과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이 땅에는 이렇게 지어야 합니다!"라고 서로 도면과 CG, 그래픽 작업들을 정리하여 디자인을 제출한다. 치열한 작업을 통해 응모된 작품들을 보고 심사위원들은 1등을 선정한다. 1등으로 뽑힌 설계사무소는 그 땅의 설계권을 가져간다. 마치 대학생 공모전과 같은 시스템이다. 이러한 설계안 선정 방법에 대하여 부정적 의견도 많고, 부작용에 대한 대책도 모색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공공건물이 설계되고 있다.



그리고 몇 년 전, 정확히는 2014년도의 일이다. 끊임없이 현상 설계는 크고 작게 이뤄지고 있었지만, 서울에서 정말 천하제일 무술대회 같은 판이 벌어졌다. 마포 석유 비축기지 설계안 공모였다.


마포구 어딘가, 석유를 담아 저장하던 5개의 탱크. 심지어 1급 보안 시설로, 대중들에게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이 통제되고 있었던 장소를 문화시설로 탈바꿈하겠다는 서울시의 공모 제안은 그 규모나 내용 면에서 모두 건축가들을 꽤나 들뜨게 했다. 서울시에 이만한 규모의 문화시설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는 이제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정말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내가 아는 설계사무소는 모두 참여했다.


당시 나는 대형 설계사무소 현상팀의 인턴으로 있었는데, 회사에서는 마포 석유 비축기지 공모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발표가 나는 날, 1등을 도대체 누가 차지했을까 궁금해하며 모니터 앞으로 팀원들 모두 옹기종기 모였다. 아래는 당시 1등으로 선정된 패널* 이미지다.


*패널은 아래처럼 현상 설계 시 제출하는 도면과 CG와 그래픽 요소들이 모두 정리되어 A0 또는 A1 사이즈 종이에 압축되어 있는 결과물을 말합니다.



모두의 예상을 비껴갔다. 적어도 건축하는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른 이미지였다. 화려한 색감과 그래픽은 없고, 흑백으로 정리되어 차분하고 경건하기까지 했다. 조용하게 탱크의 쓰임에 대해 설명해 내려가는 위 제안은 ROA 건축사사무소와 허서구 교수의 '땅으로부터 읽어 낸 시간'이었다.


딱 하나. 강력한 이미지 한 방으로 다른 모든 경쟁자를 제쳤다. 말하자면 필살기. 모두가 심혈을 기울였던 탱크 내부의 모습을 바라 본 투시도는 온데간데없고 땅을 헤치고 이제 막 탱크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흑백의 콜라주 이미지만 제출했다. 감각적이었다. 용감했고, 다른 제안들과 달라 자극적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던 모양이다. 이견 없이 ROA와 허서구 교수님의 안은 그렇게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몇 년이 지나 올해로 드디어 문을 열었다. 석유를 저장하던 거대한 다섯 개의 탱크에 석유 대신 사람을 담기 위한 건축적 제안들이 이곳에 있다. 문화로 채워진 탱크 사이를 산책할 수 있는 이곳의 새로운 이름은 문화 비축기지다.




01 다시 채워 담자


어렸을 때,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만들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직접 색종이를 접어서 개구리를 만들고, 포도를 만들고, 비행기도 접어 날리는 일련의 과정들을 따라 하기 위해 종이접기 책을 넘겨가며 열심히도 접었다. 그중에서도 색종이뿐 아니라 다른 재료를 사용하여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은 특히 재밌었다. 이를 테면 다 쓰고 남은 휴지심이라던지, 집에서 뭔가를 담아뒀던 큰 박스라던지, 다 먹은 페트병 같은 것들을 자르고, 붙여서 뭔가를 만드는 것.


TV에서 방영하던 만들기 프로그램도 즐겨봤다. 요새로 말하면 먹방 같은 느낌일 것이다. 그중에 기억에 남았던 편이 하나 있다. 다 먹은 투명한 케첩통을 깨끗하게 씻은 뒤, 물고기를 만드는 내용이었다. 물고기처럼 보일 수 있도록 눈을 그리고, 비늘 모양을 매직으로 그렸다. 지느러미도 색종이로 잘라 붙여주었다. 그 뒤에 나는 당연히도 다른 색의 매직으로 케첩통의 겉면을 빽빽하게 색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TV 속 선생님은 투명한 케첩통에 물감을 푼 물을 담았다. 색깔이 있는 물을 담았더니, 매직으로 색칠한 것보다 훨씬 쉽고 깔끔하고 예뻤다. 색을 넣고 싶으면 뭔가를 붙이거나 칠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담는 방법도 있었던 것.


그러니까 서울에는 다섯 개의 다 쓰고 남은 케첩통이 있었던 셈이다. 역사적 이야기가 있으니 버리긴 아깝고, 그대로 놓아두기엔 너무 아까운 면적의 땅이고, 그러니 다른 것을 채워 담아보고자 사업이 시작됐다.



먼저 왜 이 탱크들이 이곳에 남겨지게 되었나 아는 것이 이 공간을 이해하는 첫 단추다.


1970년대, 석유 파동이 일어나자 석유 비축기지를 만들어 서울 시민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의 석유를 비축하기 시작했다. 2000년도에 비축되어 있던 석유를 모두 옮기고 마포 석유 비축기지를 폐쇄하기까지, 22년 정도의 시간 동안 이곳은 서울 시민들이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는 석유와 그것을 지켜내던 사람들이 있었다. 왜 이 시설을 폐쇄하기로 했는지, 우리는 그 이유가 낯설지 않다. 2002년에 열렸던 한일 월드컵 때문이다. 월드컵을 개최하기로 결정된 후, 월드컵 경기장의 부지로 선정된 곳이 바로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지금의 상암 월드컵 경기장. 수많은 사람들이 모일 터였다. 너무 가까워 위험했다. 그렇게 안전 상의 이유로 석유는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장소는 남겨졌다.


올해 석유 비축기지가 문화 비축기지가 되어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되기 전까지, 무려 41년 동안 일반인들의 접근이 차단됐다. 일반인들의 발길이 끊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딱 하나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다는 뜻. 심지어 비밀리에 존재해 왔으니, 주변엔 아무것도 없다. 주변 환경이라곤 탱크를 감싸고 있는 언덕뿐이다. 건축가에게 이러한 프로젝트가 다가왔을 때엔, 딱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 몇십 년 간 존재했던 그 땅의 기억을 읽어내는 것. 고고학자들이 유물을 발견하듯이 조심스럽게. 제대로 읽어낼 수 있으면, 반절 이상은 성공이다. 나머지는 땅의 기억에서 중요한 것들을 골라 선택적으로 지켜나가는 것이 건축가의 의무다. 뭘 보여줄 것인가. 여기서 뭘 해야 할까. 그러한 고민들이 문화 비축기지에선 꽤 선명하게 보인다.




02 남겨진 무엇과 새로 생긴 무엇


문화 비축기지에는 굴러온 돌이 있고, 박혀서 움직이지 않은 돌도 있다. 탱크는 총 6개. 눈에 보이지 않은 무형의 탱크까지 합치면 모두 7개다.



T0


문화 비축기지로 들어서면 큰 광장이 먼저 나타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0번째 탱크다. 야외에서 다양한 행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비워졌다.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예상하고 있던 첫인상과는 전혀 달랐다. 탱크가 어떻게 생겼는지, 몇 개 있는지 알고 있었는데 광장에서는 쉽사리 어디에 어떤 탱크가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웠다. 탱크는 콕콕 땅 속에 박혀 숨어 있었다. 탱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산책로를 따라 직접 탱크의 코앞까지 올라가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T1, 재료를 바꾸거나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쑥 깊이 들어가 있는 입구를 가진 T1에 도착한다. 전시와 워크숍 등으로 쓰일 수 있는 다목적 공간.



탱크가 있던 자리까지 도달하기 위해 긴 복도를 지난다. 길게 뽑아진 입구는 저 멀리 밝은 어딘가로 향하게 하여, 걷는 동안 기대를 증폭시킨다. 긴 복도는 또 하나의 전시장으로, 검은 철판으로 마감된 벽과 사선으로 내려오는 콘크리트 에 걸린 활자들과 사진들을 구경하며 걸으면 빛이 환히 들어오는 유리 탱크에 들어선다.



철로 단단히 용접되어 있던 T1의 옛 탱크를 들어내고, 그곳에 전혀 다른 재료인 유리로 다시 탱크를 재현했다. 크기는 가늠할 수 있도록, 빛은 가득 들어오도록. 탱크가 투명해지니, 탱크를 둘러싸고 있던 매봉산의 암벽이 그대로 노출된다.



휘발유를 보관하던 구석의 가장 작은 탱크는 그렇게 빛을 가득 머금고 영역장한다. 조금 더 멀리까지 시야가 닿는다. 작아서 가장 어둡고, 답답했던 탱크가 반전을 꾀했다.



T2, 들어내거나



탱크를 둘러싸고 보호하고 있던 두꺼운 콘크리트 옹벽은 T2에서 마치 유적처럼 남아 있다. T1처럼 이곳도 원래의 철판으로 높게 지어져 있던 탱크를 해체했다. 그래서 내부의 모습을 쉽사리 짐작할 수 없다.



콘크리트 옹벽 사이, 뚫린 길로 들어서면 이곳은 원형의 극장이다. 바깥에서 보였던 높다란 콘크리트 옹벽은 무대의 뒷배경이 다. 탱크가 있었더라면 탱크의 내부가 되었을 넓이의 땅은 모두 객석이 되었다. 콘크리트 좌석들이 높이가 다르게 오와 열을 맞춰 제작되어 박혀있다. 자칫 심심하고 허전했을 수 있는 곳에 콘크리트 의자가 박히니 객석은 조금 더 정리되고 보기 좋다. 돌다리 같아서, 사이사이를 지나다니거나 넘어 다니는 재미가 있다.



뒤로는 다시금 잘린 매봉산의 암벽이 탱크의 흔적들과 함께 극장을 둘러싸고 있다. 탱크가 지하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그런 형태로 남았을 텐데, 오히려 일부러 극장을 위해 다시 땅을 만진 것처럼 자연스럽다. 산자락이 극장을 폭 안고 있는 형상이 되었다.



T3, 놔두거나


여행을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엽서를 사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미처 담지 못했던 여행지의 독특한 풍경이 있다면, 꼭 엽서를 사서 집으로 들고 온다. 때로는 한 장을 여분으로 더 산다. 그러니까 두 장 구매한다. 한 장은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 한 장은 내가 보관하고 간직하기 위해서. T3은 다섯 개의 탱크 중 여분의 엽서 같은 공간.



다른 탱크처럼 입구를 내기 위해 땅을 모두 파내지 않았다. 땅에 묻혀 있는 탱크의 모습을 옛 모습 그대로 보기 위해서 T3 만큼은 언덕을 올라야 한다. 언덕을 오르면 보이지 않던 세 번째 탱크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언덕을 오르니 상암 월드컵 경기장의 모습이 지척으로 보인다. 언덕을 오르다 잔디밭에 털썩 앉아 잠시 쉬기에도 좋다. 이렇게나 가까운데, 여기에 이런 시설이 있는지도 몰랐다니.



언덕을 다 올라 본래의 콘크리트 옹벽 사이 문으로 들어서면, 깊게 잠겨있는 탱크의 원래 모습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직접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낡고 오래된 탱크와 옹벽이 보여주는 시간의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 있다.


T3에서 원래 탱크의 구조를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다. 탱크를 이렇게 지하에 깊게 묻기 위해선, 일단 땅을 다 파야했을 것이다. 땅을 파내고, 탱크에 석유가 가득 차도 그 무게로 땅이 내려앉거나 하지 않도록 콘크리트로 튼튼한 기초를 닦는다. 기초 위에 탱크를 올려놓고, 다시 주변으로 콘크리트 옹벽을 쌓는다. 콘크리트 옹벽은 오로지 탱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주변의 매봉산이 혹여라도 탱크로 밀려들지 못하도록. 철판으로 만들어진 탱크는 석유를 담기엔 충분하나 외부에서 가해지는 충격까지 버텨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옹벽까지 세우고 나서 다시 흙으로 매봉산을 덮는다. 파내었던 부분을 다시 메꾼다. 그렇게 탱크는 지하에 묻힐 수 있었다.



T4, 다른 것을 담아내거나



다시 길게 뽑아진 입구로 들어선다. 입구를 걸으면 다시 콘크리트 구조 사이로 입구에 도착한다. 처음으로, 탱크의 모습을 곧이곧대로 보여준다.



*제가 방문했을 당시 전시 철거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공간이 정리되지 않아 보시기에 불편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T4에선 15m의 높이를 가진 거대한 탱크를 그대로 살려냈다. 문화를 담으려 했던 문화 비축기지의 의도에 가장 알맞다. 전시든 퍼포먼스든, 어떤 활동이 이뤄지든 이 안에서 모두 담아낸다. 높은 층고와 지붕을 받치는 얇은 기둥들은 공간을 최대한 열어준다. 굳이 많은 것을 바꿔내려 애쓰지 않아도, 이것만으로도 우리들에게는 새로운 공간이다.



T4에서는 산책로가 탱크를 두르고 있다. 잊지 말고 꼭 한 바퀴 걸으시길. 땅과 탱크 사이를 걷다 보면 예상치 못한 선물 하나를 만나게 된다. 옹벽에 뿌리내린 오동나무다.



식물과 시간이 만들어 내는 기적은 이러한 모습이 아닐까. 콘크리트가 갈라진 얇은 틈 사이로 이렇게 큰 나무가 자라났다. 일부러 넣으려고 해도 넣지 못할 테다. 그러니 여기서 자라났다고밖에 볼 수 없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10여 년의 세월 동안 이렇게 힘든 곳에 와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었다. 반복되는 계절을 버텨내고, 이렇게나 커져서 삭막할 수 있는 탱크와 콘크리트 사이 길을 풍요롭게 만든다.




T5, 둘러싸거나



새로운 건물은 탱크를 둘러싸면서 생겨났다. 입구만 길게 뽑아내던 T1, T4의 방식과는 다르게 탱크에 새로운 공간을 둘렀다. 마치 콘크리트 옹벽이 그랬던 것처럼 탱크를 둘러싼 새로운 콘크리트 건물은 긴 동선을 가진 전시관이다. 탱크는 그 가운데에 자리하여 건물로 흡수된다.



전시와 전시 사이,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공간들이 있다. 의도된 공간의 틈에서 탱크의 민낯을 마주한다. 아주 거친 콘크리트의 면들을 지나고, 콘크리트 구조 뒤에 숨어 있던 매봉산의 일부를 바라본다. 세월에 따라 거칠어진 탱크의 면들도 손대어 만질 수 있다. 건축가의 의도다. 가까이서, 더 다가와서 이것을 한 번 보라고 이곳을 지나게 한다.



콘크리트 옹벽과 쪼개어진 암반 절개지까지 손에 만져진다. 건물을 세우기 위해 거칠게 뜯어낸 콘크리트 옹벽의 단면도, 세월에 흐름으로 색이 바래고 낡은 탱크까지도 아주 가까이서 바라보게 된다. 



다섯 번째 탱크는 이곳, 문화 비축기지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관으로 상설 전시가 이뤄지는 장소다. 그러니 처음부터 어떤 전시가 들어설 것인지 알고 있었을 테다. 그런 것을 감안하면, 전시의 마감 퀄리티는 조금 아쉽다. 건축과 인테리어가 긴밀하게 협업하지 못하면 벌어지는 문제가 곳곳에서 보이고, 들렸다. 영상 전시가 많았는데, 태블릿이 걸리는 부분마다 전선이 벽을 타고 올라간다. 미리 계획했다면 전선도, 바닥의 멀티탭도 보이지 않게 숨길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영상에서 나오는 소리는 공간 전체에 울려서, 큰 영상에서 나오는 윤도현의 목소리가 다른 영상의 소리를 들을 때 방해가 된다. 전시 계획이 조금 더 세밀해야 했다.



다시 한번 다른 문을 통해 탱크의 안으로 진입한다. 이곳은 영상 전시가 이뤄지는 곳. 탱크의 중심에서 영상이 360도로 쏘아진다. 바닥에 있는 흰 돌덩이에 앉아 영상을 감상한다. 사람들은 이곳에 앉기도 하고, 올라가기도 한다. 영상과 함께 소리도 탱크를 가득 채운다.



T6, 새로 짓거나


드디어 새로 굴러들어 온 돌.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탱크의 이야기.



콕콕 숨어 있는 기존 다섯 개의 탱크 대신, 새로 지어진 여섯 번째 탱크는 사람들의 시야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땅 속에 숨지 않고, 우뚝 솟아 위용을 뽐낸다. 앞으로 한 발자국 성큼 나온 여섯 번째 탱크는 다른 탱크에서도, 어디서나 눈에 띈다. 랜드마크다. 나머지 다른 탱크에서도 바깥을 나오면 자연스레 눈이 간다.



T1과 T2를 해체하며 얻어진 탱크의 철판을 재활용하여 새로운 건물은 T6의 외벽 마감재로 사용했다. 용접이 되어 있던 부분에 맞게 잘라, 옮기고 다시 붙였다. 설명을 듣지 않아도 건물 외부에서 힌트가 있다. 단단하게 용접되어 있던 기존 탱크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나사들을 T6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붙였다는 이야기다. 여러 조각을 붙였기 때문에 기존 탱크에 그려져 있던 국방 무늬는 잘라져 서로 이어지지 않는다. 콜라주 혹은 모자이크를 연상시킨다.



T6에서도 전시는 이어진다. 둥근 램프를 따라 올라간다. 새로 지어진 건물인데, 기존 탱크와 이질적이지 않게 느껴진다. 설명이 없었다면, 이것 또한 원래 있던 탱크라고 당연히 어림짐작 하였을는지도 모른다.



기대하지 않은 공간이 숨어 있다. 건물은 누구나 어디서든 볼 수 있게 전면으로 나왔으면서, 발칙하게도 이런 공간을 숨기고 있다. 다른 탱크가 땅 속에 꼭꼭 숨어 있는 대신에 혼자 품고 있는 빈 공간이 여섯 번째 탱크에 있다. 하늘을 담을 수 있는 탱크다.


이렇게 높은 벽으로 둘러싸고 하늘을 담는 공간은 이곳이 첫 번째는 아니다. 뮤지엄 산에서도 안도는 각종 도형의 모양으로 하늘을 담았고, 선농단 역사 문화관에서도 시간이 멈춘 듯 느껴지는 시간의 방을 천장 없이 계획하여 만들었다. 의도는 다르더라도, 비슷한 어휘는 몇 가지 금방 찾아낼 수 있다.


건축가들이 그러한 어휘를 사용했을 때, 방점은 '비움'에 찍힌다. 공간은 비워져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하늘만, 공간만 그대로 떠 있어서, 전시를 보다가 관람객들이 한 숨 돌릴 수 있게 하는 것이 건축가의 의도일 테다. 그런데 공간이 아까웠는지 여기에도 입간판을 세워 각종 텍스트들을 나열해 놓았다. 많이 아쉬웠다. 좋은 사진이 나올 뻔했는데, 빈 공간을 참을 수 었었던 모양이다. T5에 이어서 T6에 이어지는 서울시의 텍스트들이 너무 많아 텍스트들에 깔리는 기분마저 들었다.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비울 수 있을까. 공간 가득 대나무라도 심어놓았으면 비워져 있을 수 있었을까.



계단을 내려가면 카페. T0부터 T6까지 돌아보고 나서 도착하는 마지막 공간이다. 미리 아는 사람은 먼저 이곳부터 찾을 수도 있고, 전시를 보다가 지치면 순서를 바꿔 T6에 먼저 올 수도 있겠지만 건축가의 의도 상 이곳이 마지막 공간이다.




03 강을 건너고야 마는 과정에 대하여


대학교에서 다른 학과는 다녀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몇몇 학과는 팀으로 진행하는 과제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팀플(팀플레이의 준말. 조별 과제를 뜻한다.)에 대한 막연한 환상까지 갖고 있다고 들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면서, 팀 과제를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다 같이 회식을 하러 가서 인간관계를 더욱더 돈독히 하는 그런 교양이나 강의를 바랐던 적이 나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팀플이 힘든 이유는 셀 수도 없다. 서로 시간 맞추기도 힘들고, 의사 결정 과정도 아주 피곤하다. 누가 뭘 맡아서 해야 하는지, 저 친구가 지금 과제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꼭 필요한 일인지, 결과물을 위해서 누가 더 많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지. 생각할 거리는 이렇게나 많은데, 또 감정이 상하기는 얼마나 쉬운지. 혼자인 편이 훨씬 쉽고, 빠르고, 간편하다.


팀플의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팀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하고, 강력한 장점은 단 한 가지. 각자의 노력이 합쳐져서 큰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간단한 리포트라면 혼자가 더 좋겠지만, 규모가 커지고 범위가 넓어지기 시작하면 그건 도저히 혼자서는 해낼 수 없다. 건축이 그렇다. 건물을 혼자 지을 수는 없다. 한 건물이 지어지기까지 정말 몇십, 몇 백 명의 사람들의 노력이 합쳐진다. 그래야 건물이 온전히, 제대로 설 수 있다.


옛말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했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배는 사공이 혼자 저을 수 없을 만큼 크다. 사공이 여러 명이어야 한다면, 역할 분담이 중요하다. 각자 맡는 역할의 종류가 구분되고, 구별될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상대방의 역할을 존중하는 것과 나의 역할을 지켜내는 일. 정확하게 구분되어 자신의 분야에 충실하다면, 그것으로 이미 성공적인 프로젝트다.



말은 쉬운데, 역시 건축가로서 공공건물을 설계하고 자신의 디자인을 지켜내는 일은 쉽지 않다. 관여하는 단체가 많아지고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면,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르기 마련이다. 그것을 어떻게 중재하고 건축적인 의미를 얼마나 지켜낼 것인가는 오로지 건축가의 몫이다. 


현상설계 당선 이후 다양한 이유로 아예 건물의 형태 자체가 바뀌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프로젝트 자체가 엎어지는 경우도 많다. 다른 사례에 비하면 문화 비축기지는 초반의 현상 설계에서 제안했던 개념을 최대한 유지했다. 기존에 존재했던 다섯 개의 탱크를 재료를 바꾸거나, 들어내거나, 놔두거나, 새로운 것을 담거나, 새로운 공간을 둘러냈다. 다른 탱크에서 제거해 낸 재료를 사용해서 새로운 탱크도 지어냈다. 건축가가 어떤 재료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이곳의 건축을 읽는 방법일 테다. 


서울에 또 하나의 중요한 문화 시설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싶은 장소다. 앞으로 어떤 것들을 담아낼지, 기대가 된다.





당시 현상설계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두 군데에서 자료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시의 '서울을 설계하자' 홈페이지에도 현상설계 입상작들의 이미지를 찾을 수 있었으나 링크 복사가 불가하고 이미지를 크게 보기가 어려워 아래 링크를 첨부합니다. 해외 건축 현상설계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는 웹사이트입니다. 1등이 아닌 다른 작품들의 패널도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아, 건축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서로 대결하는구나' 이해해주시면 되겠습니다.


http://bustler.net/news/search/mapo/3899/results-of-the-rehabilitating-mapo-oil-depot-into-a-cultural-de pot-park-compet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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