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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Nov 10. 2017

공유의 가치

호텔 카푸치노

00 서울 여행


동생 민아가 도쿄에 머물기 시작하자, 나는 곧잘 방학이 되면 도쿄로 넘어갔다. 몇 주씩 도쿄에 눌러앉았다. 하루 정도를 빼놓곤 부지런히 일어나서 갤러리이든 카페든 공원으로든 길을 나섰다. 민아와 함께 있을 때도 있었지만, 민아가 학원에 가 있는 동안에는 혼자 많이 걸었다. 좋았던 곳은 또 가도 좋았다. 여행 책에 있는 굵직굵직한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잘 찾아보면 작지만 매력 있는 가게들이 많아서 질리지 않았다. 누구는 어떻게 한 도시에서 몇 주씩이나 있냐지만, 나는 지금도 다시 도쿄로 가서 알차게 여행할 자신이 있다.


한 도시에서 머무르는 것이 지겹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떠올랐다. 도대체 여행이 뭐길래 꼭 그렇게 나라와 나라를, 도시와 도시 사이를 열심히도 오가야 하는지. 머물면서 여행할 수는 없는 것인지? 몇몇의 도시에 오래 머문 결과, 내가 가진 여행의 본질은 두 가지다. 두 가지만 충족되면 그때부턴 내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여행이다.


놀고먹는 것.

낯선 눈으로 바라보는 것.


그럼 내가 사는 도시 서울은? 조금 더 능숙하게 지하철과 버스를 탈 수 있다 뿐이지, 내가 서울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서울로 여행을 오는 것처럼, 내가 보는 시점만 달리하면 나의 도시 서울도 여행이 가능하다. 그래서 난 때로 서울로 여행을 떠난다. 멀지 않으니, 이동 시간이 짧고 교통비도 많이 들지 않는다. 그 시간과 돈으로 더 편안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집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와 여행 온 기분을 만끽하면서. 나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도시 안에서 여행을 즐기기 시작했다. 스테이케이션(stay+vacation)이라 부른다. 그리고 오늘은 서울의 서울, 강남에 있는 호텔 카푸치노에서 묵었던 이야기다.




01 공유의 가치


때로 TV엔 연예인 누구가 어디에 몇 천이든 몇 억이든 기부하고 있었는데, 그걸 또 숨기고 있었는데, 이번에 어떤 기자에 의해서 밝혀졌다는 스토리의 뉴스가 나온다. 그것이 아니라면 연예인이 직접 해외로 봉사를 가서 어린아이들과 소박하게 찍은 사진들이 기사의 메인 이미지로 떠다닌다. 그렇게 소비되는 뉴스와 이미지들은 아마도 일반 시민들에게도 모종의 자극을 주어 기부하고, 봉사하는 삶을 권장하고 있는 것일 테지만 나는 그저 '좋은 일하시네.' 아니면 '훌륭하신 분이네.' 정도의 리액션으로 그만 그치고 만다. 크게 공감하지 못하고, 아무리 자극적인 이야기와 이미지도 나를 흔들어 놓지 못한다. 슬픈 다큐멘터리를 보았다고 해서 전화기부터 들고 기부하는 종류의 사람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기부가 아닌 공유라면 어떨까. 카 쉐어링(Car Sharing)은 나를 포함해 주변 친구들이 꽤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내가 카 쉐어링을 하는 것은 자가용을 소유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환경적 문제를 막고자 함이 아니다. 그저 그것이 나에게 편하고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환경오염을 막는 것은 덤이다. 차뿐 아니라 집도 공유한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여행객에게 집을 빌려주기도 하고, 누군가와 함께 거실과 주방을 공유하는 코-리빙(co-living) 형태의 집들도 요샌 꽤 많이 생겼다. 혼자서는 갖기 힘든 넓은 공간을 같이 쓰고, 임대료를 나눠서 내니 그것이 이득인 것이다. 심지어 난 또 공유 오피스(Office Sharing)에서 일하고 있다. 내 의지는 아니었지만 그로 인해 매우 크고 쾌적한 탕비실을 얻었고, 사무실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 잡다한 일을 하지 않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공유의 개념은 기부의 맥락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의 접근이다. 무작정 내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내놓아야 하는 희생이 아니라, 나에게도 어떠한 이득이 있고 그와 함께 덤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을 내놓는 것. 게다가 그것이 즐거운 경험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호텔 카푸치노가 가고 싶은 방향이다.



호텔은 무조건 신라 아니면 롯데만 있는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아니, 실제로도 그때에는 작은 규모의 호텔들은 많지 않았다. 호텔을 판단하는 기준은 별이 몇 개인지, 어느 기업에서 운영하는 것인지 정도였다. 분명 신라와 롯데면 최고였는데, 이제는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재미없고, 지루하다. 고급스럽지만, 그만의 이야기가 없기 때문일 테다.


호텔 카푸치노는 스스로를 라이프스타일 호텔이라 소개한다. 요새 여러 곳에서 참 많이 쓰는 말인데, 도대체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것이 뭔지. 라이프스타일. 삶의 방식.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나의 이러한 물음에 호텔 카푸치노는 조금 더 뚜렷한 정의를 내려주었다. 라이프스타일 호텔은 부띠끄 호텔과 같이 디자인과 그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럭셔리를 뺀 개념이라고. 그래서 더 많은 젊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쉽게 와서 기분 좋게 머무를 수 있다.



호텔 카푸치노는 공유하고 싶다. 그것이 카푸치노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다. 아주 작은 곳부터 호텔 공간의 개념까지 같은 맥락으로 이어진다. 내 사소한 행동들이 기부로 이어지도록 세심하고 유쾌하게 설계되었다. 기부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간단하다.



두 대 중 한 대의 엘리베이터에 타서 객실 카드를 찍으면 500원이 기부된다. 1층에 위치한 카페 카푸치노에서 특정 메뉴를 시키면 또다시 수익금의 일부가 비영리 단체에게 돌아간다. 호텔에 묵고 나서 버리고 가는 옷들을 로비에 비치된 상자에 넣으면 그것들은 모아져서 다시 의류 기부 단체에게 전달된다. 객실에 비치된 어매니티를 쓰지 않거나 2박 동안 린넨을 교체하지 않으면, 쿠폰을 준다. 기부하거나, 카페에서 음료로 교환할 수 있다.


엄청난 봉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쉽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것은 유쾌하고 즐거운 경험이다. 단순히 그저 호텔이 모던 스타일로 지어졌다거나, 앤틱 스타일로 지어진 것과는 다르다. 이 호텔, 뭔가를 실천하고 있다.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02 모두의 공간


1층에서 문을 열고 들어서는 호텔의 첫인상은 호텔 설계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무리를 해서라도 호텔 로비에는 각종 예술 작품과 비싼 마감재가 아낌없이 쓰인다. 여기가 이렇게 비싸고 좋은 곳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어 하는 공간이다. 어디든 거의 다 비슷하다. 그런데 이곳에서 호텔 카푸치노는 공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공간을 모두와 함께 나누기로 한다. 어렵고, 돈을 내지 않으면 왠지 죄스러운 호텔의 무거운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가볍고, 장난스러운 브랜딩이 이뤄졌다. 로고부터 호텔보다는 카페 같다. 물론 이름부터 그렇지만.



기존의 호텔들처럼 비밀스럽게 투숙객만 드나들어야 하는 분위기부터 깼다. 전면에 차량이 드나들지 않게 주차동선은 뒤로 뺐다. 그래서 호텔의 주진 입문이 길가로 그대로 노출된다. 차가 지나다니지 않으니 길을 지나던 사람들도 언제나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다.



리셉션은 밝고, 호텔 로비보다는 편집샵에 더 가깝다. 심지어 편집샵으로의 역할도 하고 있다. 꼭 호텔에 투숙하지 않는 사람도 누구라도 들어와서 호텔 카푸치노가 비치하고 있는 물건들을 사거나 구경할 수 있다. 호텔의 로비가 보통 깊숙한 곳에 위치하게 되는 것과는 다른 구성을 취했다. 최대한 입구 바로 앞에 붙었다. 뒤쪽 공간을 카페로 내어주기 위함일 테다. 하지만 카페가 전면으로 나오고, 호텔 로비가 뒤쪽으로 들어갔어도 강력했으리라.




1층에는 호텔 로비와 함께 카페가 있다. 길 가다가 누구나 들어와 커피도 한 잔 할 수 있다. 호텔 투숙객이 아니라고 쫓아내지 않는다. 높은 층고에 넓은 테이블을 갖췄다. 필요하면 일을 할 수도, 공부를 할 수도 있다.



젊은 사람들을 목표로 했을 테다. 카페에서 어떻게 공부나 일을 하느냐고 이해 못하는 어른들도 있겠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카페는 무엇이든 가능한 장소이기 때문에 카페가 제대로, 머물기 쉽게 존재하는 것은 중요하다. 라운지의 푹신한 소파에 눕듯이 앉아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서울에서 필요한 공간은 노트북이나 책을 펼쳐 들고 앉아 몰입할 수 있는 자리니까.




조식이나 저녁을 먹게 되는 레스토랑은 호텔 로비와 분리되며 호텔의 상층부로 올려졌다. 같은 층에 식당과 바(bar)가 함께 있다. 왜 레스토랑과 바를 상부로 올렸는지 단번에 이해된다. 전망 때문이다. 레스토랑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뷰가 아주 끝내준다. 강남에서 보이는 서울을 시원하게 보여준다. 강남의 교보 타워부터 남산의 서울 타워까지 고개만 돌리면 다 보인다.



전망은 밤에도 마찬가지. 낮이나 밤, 둘 중 하나만 이곳을 찾긴 아깝다. 지척에 수많은 건물들이 각자의 빛을 뿜는 것이 내려다 보인다.




03 침대가 다 했다


그럼 조금 더 건축적인 이야기. 호텔 카푸치노의 위치는 9호선 언주 역 근처. 강남역과 가깝고, 주변엔 큰 상권들이 들어서 있는 곳. 비싼 땅에 지어야 하는 호텔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건축가의 고민은 아름다움보다 공간의 효율이 먼저다. 지나치게 비싼 숙박료로 방을 제공하지 않기 위해선, 주어진 땅에서 최대한의 객실을 넣어야 했다.



대로변에서 보이는 호텔의 입면이 그대로 방이 되었다. 많은 고민이 있었을 테지만, 현란하고 복잡한 외관 대신에 가장 솔직하고 간단한 형태로 건물의 외형을 그려냈다. 구조는 간단하다. 방 하나에 창문이 하나씩.



안으로 들어가 보자. 스탠더드 룸이다. 여기, 결코 넓지 않다. 좁다. 홈페이지 상으로 표시되어 있는 면적은 16.5㎡. 다른 호텔들의 가장 기본 방의 면적이 30㎡가 넘는 것을 감안하면 반절은 좁다. 좁은 공간에서 다른 호텔만큼의 역할은 해야 하니 더 많은 노력이 쓰였을 테다. 필요 없는 것은 최대한 줄이고, 가구도 최대한 없앴다.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얻을 것은 얻고자 했다.



방 키를 찍고 들어오자마자 복도가 이어진다. 오른쪽으로는 화장실이 길게 늘어서 있고, 왼쪽에는 세면대와 간단히 물건을 올려놓을 수 있는 탁자가 마련되어 있다. 객실 내에 꼭 필요한 것들은 복도에서 모두 해결했다. 대신 무언가를 올려놓고 작업을 할 수 있는 책상은 없다. 쉬기 위한 곳이다. 일을 하고자 한다면, 카페로 내려가라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옷을 걸거나, 옷장 안에 걸려 있어야 하는 옷걸이는 복도의 한쪽 벽면에 걸렸다. 그와 함께 많은 것이 걸리기 시작했다. 아이디어가 좋았다. 타공 철판을 방을 가로지르도록 길게 설치해서 원하는 건 뭐든 걸 수 있게 했다. 드라이어도, 컵도, 가운이 걸려 있는 옷걸이도 모두 같은 방식으로 걸려 있으니 정리가 된다. 테이블은 이런 아이디어로 조금 더 작아질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공간을 최대한 줄인 대신에 아낌없이 제공한 것은 침대. 침대만큼은 최대한 넓혔다. 최대한 넓혔다. 2M × 2M의 침대인데, 킹 사이즈의 침대보다 더 크다. 침대를 둘러싼 3면의 벽에 다시 쿠션을 덧대어 침대를 사용할 때에는 체감 상 더 넓게 느껴진다. 실컷 구를 수 있다. 3면이 벽이라 떨어질 염려도 없다. 내가 가졌던 모든 침대 중에 가장 크지만, 가장 아늑하다. 호텔 카푸치노의 스탠더드 룸이 다른 호텔보다 좁아도 좁은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모두 침대 덕분이다. 침대가 다 했다.



외부 입면에서 볼 수 있었던 창이 바로 이곳. 정방형으로 뚫린 창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젖히면 시원한 강남 뷰가 눈앞에 펼쳐진다. 사진에서 보이는 반투명한 흰 커튼 외에도 전동 블라인드가 오르내린다. 침대 옆에 스위치가 있어, 늦잠을 자고 싶다면 전동 블라인드를 내리는 걸 추천. 침대 바로 옆에 창이 있었기 때문에 필요한 장치다.




이 글을 읽는다고 하여도, 굳이 기부를 하기 위해 이 호텔을 찾을 필요는 없다. 그저 접근하기 편한 위치, 강남이 그대로 내려다 보이는 호텔의 루프탑 바와 레스토랑, 넓은데 아늑하기까지 한 침대. 그 정도만 즐기러 가면 충분하다. 아까도 말했듯이, 공유를 통해 이뤄지는 기부는 덤이니까.





제가 묵었던 스탠더드 룸 이외에도 호텔 카푸치노에서는 기존 호텔들과는 다른 구성의 객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애완동물을 데리고 묵을 수 있는 바크 룸(bark room)이나, 마치 게스트하우스에 워크숍을 온 것처럼 4명이서 함께 따로 또 같이 묵을 수 있는 쿼드 룸(quad room)이 그것입니다. 현재 호텔을 찾아올 많은 젊은 사람들의 수요를 반영한 것이겠지요.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제가 묵지 않아 글은 쓸 수 없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참고해주세요:)


http://hotelcappuccino.co.kr/ko/ro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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