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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Nov 03. 2017

서울이 가진 시간의 단면

눅서울

00 트리하우스를 꼭 갖고 싶었어요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파트를 떠나 산 적이 없다. 심지어 5살 때 이사 온 지금의 집에서 1년 빼놓고는 20년 넘게 계속 살았다. 평범한 구성이었다. 거실과 주방, 벽으로 나누어져 있는 방들. 아파트를 생각했을 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평면들 중 하나. 그래서 그런지 어렸을 때부터 동생인 민아와 나는 우리가 가졌으면 하는 집에 대한 로망을 자주 이야기했다.


민아는 비밀공간을 가지고 싶다고 줄곧 이야기했다. 남들은 발견하지 못하는 숨겨진 문. 그 작은 문을 열고 나서 펼쳐지는 자신만의 아늑한 공간에 대한 마음이 20대 중반이 된 아직도 굴뚝같은지, 언니가 건축가가 되고 어떤 건물을 짓는지는 하나도 관심이 없으면서 항상 나에게 당부한다. 언니, 나중에 비밀 공간을 꼭 만들어 줘야 해.


반면 나는 앨리스처럼 작은 문을 열어 펼쳐지는 숨은 공간보다는 주변이 모두 책들로 둘러싸인 높은 층고의 서재를 언제나 바랐다. 햇빛이 때에 따라 멋들어지게 들어오면 좋을 것이고, 서재를 음악으로 가득 채울 수 있게 스피커를 놓아둘 것이다. 중앙에는 마호가니 책상 정도가 있으면 더할 나위 없다.



그리고 어떤 소년은 나무 위에 지어지는 트리하우스를 몇십 년 동안 마음 한 구석에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진짜 살아있는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자신만의 아지트로 삼고 싶었으나, 여러 이유로 조금 다른 형태를 통해 그 꿈을 이뤘다. 이번에는 운이 좋게도 직접 건축주를 만나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후암동 골목 삼거리 위에 삐죽 튀어나와 우뚝 솟은 트리하우스, 눅서울의 이야기다.




01 골목으로 삐쭉 튀어나와 있어서 좋았어요


때로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수만큼, 서로 다른 내가 그만큼 존재한다는 생각. 가족과 함께 있는 내가 다르고, 회사에서 보이는 내가 또 다르다. 친구들과 편하게 있을 때의 나는 또 다른 내가 된다. 같은 상황 안에 있어도 누구와 마주 하느냐에 따라 다른 자아가 불쑥 튀어나온다.


사람도 맺는 관계마다 여러 얼굴을 가지는데, 그런 사람들이 몇 백만 명이나 살고 있는 도시가 그렇지 않을 리 없다. 도시에도 여러 얼굴이 있다. 마천루가 높이 솟은 도심 지역이 있는가 하면, 아파트들이 줄지어 늘어선 주거 지역도 있고, 좁은 옛 골목길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동네도 있다. 그것이 특히 서울처럼 짧은 시간 내에 개발된 도시라면 동네마다 가지는 성격이 도드라진다. 골고루 바뀔 틈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후암동은 도심과 골목 그 사이 어딘가, 경계에 있는 어느 한 지점에 위치한 동네다.



눅서울을 찾아가는 동안 서울역 주변의 높다란 건물들 사이를 걸었다. 서울로라는 이름으로 올해 오픈한 옛 고가도로를 만나고, 드라마 미생의 배경이 되었던 서울스퀘어의 입면에서 펼쳐지는 여러 영상들을 보았다. 그리고 공항에서 바로 서울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많은 외국인들과 마주쳤다. 물론 서울역에서 자리를 펴고 누운 노숙자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신식으로 지어진 공항 같은 유리 건물인 서울역사 옆에는 일제 시대에 지어졌던 옛 서울역 건물이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 채 미술관으로써 자리하고 있었다. 그 동네는 그렇게 낯선 것들이 서로 충돌하는 장소였다.



그리고 서울역에서 걸어서 몇 분, 금방 후암동의 골목들이 나타난다. 대로에서 신중하게 살펴보지 않으면 발견하기도 쉽지 않은 좁고 삐뚤빼뚤한 골목이다. 분명 지도 앱을 켜놓고 보면서 걷는데도 다른 골목으로 들어가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아야 했다. 골목의 끝을 신중하게 살펴보고 들어가야 한다.



구불구불한 골목들 사이로, 저 멀리 붉은빛을 띤 N 자가 보이면 빙고. 눅서울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분명한 표시다. 길에서 나란히 늘어선 건물들 중 하나가 아니라, 한 발자국 나와서 도로가 꺾이는 꼭짓점에 위치하기 때문에 대로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동시에 건물 안에서는 서울역 방향의 도로가 훤히 보인다. 건축주는 작은 건물들이 밀집해 있는 후암동 거리를 걸으면서 발견한 이 집을 처음 봤을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골목에서 삐쭉 튀어나와 있는 이 집을 처음 봤을 때 이미 저는 저 안으로 들어가 바깥을 바라보는 상상을 하고 있었어요.



눅서울의 겉모습은 특별날 것이 없다. 리모델링한 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 기존의 외부 벽면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모서리의 벽돌을 제외하면 모두 짙은 색의 철판으로 감싸 졌다. 골목에서 가장 잘 보이는 건물의 면에 넓은 창이 없기 때문인지, 망루처럼 보인다. 건물의 가장 상층부로 가 창문 밖을 살피면, 이 주변 동네를 모두 관찰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한다.




골목과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 대문 앞에 당도하면 굳게 닫힌 문에 붙어 있는 큰 손잡이가 보인다. 시간이 흐르고 손때가 묻은 나무 손잡이는 사실 손잡이로 태어나지 않았다. 건축주가 가지고 있던 베틀의 일부. 천을 짜기 위해 이용했던 그 베틀 말이다. 아주 오래전에 쓰였던 그 베틀이 주는 시간의 촉감을 건물의 초입에서 직접 손을 대어 쓰다듬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02 아니요, 그대로 둬도 괜찮아요


누가 상상할 수 있었으랴. 이곳이 1930년 중반에 지어진 아주 오래된 적산가옥*이라고. 그러니까 이제 10년 조금 넘는 시간만 흐르면 100년을 맞이하는 일본식 주택이다. 건축주는 그 위치와 생김새가 마음에 들어 덜컥 이 집을 사버려, 내부의 마감을 모두 뜯어내는 철거 작업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이 일본식 주택인지 몰랐다고 했다. 증축에 개축을 거듭하여, 원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찾아볼 수 없었던 그 집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혼자 보물을 발견해버린 느낌을 받지 않았을는지.


*지금은 적산가옥이라는 말 흔히 쓰지 않지만, 적(敵)의 재산이라는 의미로, 해방 이후 일본인이 소유하거나 일본식으로 지어진 모든 건물과 부동산을 적산가옥이라 칭했다. 지금은 일식 주택이라 순화하여 정의한다.



베틀 손잡이를 열어젖히자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철판으로 둘러싸인 외부의 모습에서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따뜻한 공기가 흐른다. 한옷의 툇마루로 올라서는 것처럼 발판이 놓여있다. 이 또한 발판으로 태어난 물건이 아니다. 박물관 한 켠에서나 있을 법한 다듬이 판이다. 빨래를 위에 올려놓고, 빨래방망이로 내려치기 위해 존재하던 목재 판이 현재에 와서는 누군가가 발을 딛고 올라서는 계단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말하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사람뿐 아니라 디자인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사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여행은 낯선 태도를 가진 여행자의 마음에서 시작하고, 좋은 사진은 무언가를 세심한 눈으로 바라볼 때 찍힌다. 좋은 리모델링은 오랫동안 한 장소의 단면들을 관찰하는 시간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다. 오래된 물건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 건축주는 후암동 골목에 위치한 9.3평 대지 위 지어져 있는 12평의 주택을 아주 천천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에 마주하는 대문의 손잡이와 현관의 발판, 이 두 가지의 물건이 눅이라는 이름을 가진 공간에서 건축가와 건축주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가장 뚜렷하고 명확하게 알려준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곧바로 주방 겸 거실이다. 이렇게나 작은 공간은 같은 높이 안에서 쓰임이 나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협소 주택들은 수직적으로 지어진다. 주방 위에 거실, 거실 위에 안방이 있는 식이다. 눅서울도 마찬가지의 구성을 갖는다.




탁자 반대편으로는 아일랜드 주방이 있다. 뒤로 T자 나무 부재가 노출된 회벽을 배경으로 갖는다. 리모델링 계획의 초안에서는 주방이 벽에 붙어있었지만, 철거 과정에서 T자를 그리는 나무 구조 부재들이 드러내자 조금 더 그 모양을 살리고 싶은 마음에 계획을 바꾸었다고 했다.




건물을 재구성하며 구조는 남겼지만, 창의 위치나 크기는 모두 바뀌었는데 그 과정에서 남겨진 창틀은 주방의 장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래서 주방 장의 바닥 부분을 보면 창이 드나들기 위해 파놓은 홈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




좁은 면적 안에서 계단은 확실히 부담이다. 설계자의 입장에서 그렇다. 그래서 좁은 면적을 가졌던 옛 주택들은 굉장히 가파른 계단을 가지고 있는데 눅서울에서도 그랬다. 다만, 안전상의 이유로 계단은 새로 만들게 되었는데 기존의 계단이 가지고 있던 단수와 경사를 그대로 유지했다.


계단 옆에 있는 나무 기둥을 포함해 눅서울 안의 곳곳에는 80년의 세월 동안 증축과 개축을 거듭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건축주는 이 흔적들을 모두 고스란히 남기기로 한다. 깨끗하고 매끈하게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둬도 괜찮다고 공사 중인 현장에 와서는 거듭 말했다.




철거 과정에서 벽에 붙어 있던 벽지를 뜯기 시작하자, 총 11장의 벽지가 붙어 있었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며 더러워지고 낡은 벽지 위에 또 다른 벽지를, 그 위에 또 다른 벽지를 붙이기 반복했던 것. 붙어 있던 모든 것들을 떼어냈을 때 흙벽이 나왔다.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나서, 그 사이에 흙벽을 세웠던 흔적이다. 대나무 살을 대고 짚과 흙을 채웠던 모습이 노출되자 그 일부분을 눈에 보이도록 남겼다. 집안에 걸려 있는 시간의 액자인 셈이다.


천장에 지나가는 전선도 숨기는 대신 원래의 그 자리를 고수하기로 했다. 옛 목조주택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콘크리트 건물이라면, 콘크리트를 타설 하기 전에 그 속에 전선을 매입하지만, 목조 건물은 나무속을 파서 전선을 심을 수 없기 때문에 전선은 모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한옥과 같은 곳에서 자주 쓰이는 전선 배선 방식이다.



주방 옆 가파른 계단을 통해 2층의 침실로 올라올 수 있다.



2층의 중심에는 침대가 있다. 천장에는 노출된 목구조가 보인다. 실생활에서 만나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일까. 언제나 나무로 짜인 지붕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낀다. 목구조의 천장도 원래 모두 가려져 있던 부분이다. 철거 작업을 하면서 드러나자, 그대로 놓아두기로 했다. 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생각하면 훌륭할 정도로 깨끗하게 남아있다. 다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약해진 부분을 철물로 보강했다.




2층에는 또 다른 시간의 액자가 존재한다. 이번에는 더 뚜렷하게 오래된 대나무 살들이 보인다. 현재의 건축을 하는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이러한 흙벽을 쌓아냈는지 사실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어떠한 방식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침대가 놓인 주변은 건축가와 건축주가 아주 긴밀하게 협업한 부분이다. 건축가는 천장의 목구조가 따라 내려온 것과 같이 벽에 나무 살들을 덧대어 패턴을 만들어 냈고,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건축주는 그러한 패턴을 받아서 침대를 직접 제작해냈다. 그래서 천장이 그대로 벽을 타고 내려온 것과 같은 면을 이뤄냈다.




또한 설계는 아주 작은 부분에서 시작하기도 한다. 이를 테면 이런 경우인데, 건축주는 이곳에 딱 저 라디오를 넣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침대 옆의 장은 라디오 사이즈에 맞게 설계되고, 제작되었다.




이 집의 모든 창문은 안으로 ㄱ자로 열린다. 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슬라이딩 방식이 아니라 문이 열고 닫히는 방식과 같다. 케이스먼트, 또는 여닫이 창이라고 한다. 보통 여닫이 창은 바깥으로 열리게 하는 반면 눅서울에서는 모든 창이 안으로 열린다. 안으로 열리면 공간 활용에 불편함이 있을 텐데도 굳이 안으로 열리도록 한 이유는 안으로 열리면 창을 스스로 닦을 수 있기 때문. 그래야 시간이 지나도 깨끗한 유리창 안에 서울의 풍경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이다. 눅서울이 서울을 관망하는 후암동의 망루와도 같은 곳이라고 정의한다면, 바깥을 얼마나 깨끗하게 볼 수 있는지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이 집에는 미처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비밀이 있었는데, 건축주에게 직접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 건물은 옆집과 붙어 있는데, 어느 정도 붙어있냐면 두 집이라고 부르기가 애매할 정도로 붙어 있다. 원래 옆집이 먼저 있었고, 눅서울이 나중에 지어진 집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왜냐면 옆집의 지붕이 눅서울의 지붕을 침범하고 있으니까. 아주 흥미로운 사례다. 혹시 눅서울을 방문하게 되신다면, 숨은 그림을 찾는 마음으로 지붕 곳곳을 자세히 살펴보시길.





말하자면 앞서 말한 민아의 로망은 이런 것이다. 비밀통로 말이다. 비밀통로를 실제로 이용해 보기는 처음이다. 1층에서 계단 아래에 발을 딛고 서 있던 바닥을 조심스레 열면 또 다른 계단이 나타난다.



다시 한번 가파른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가면 아주 작은 실이 하나 나타난다. 방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작다. 보일러실이었던 곳이다. 이곳은 아지트가 되어, 때로는 누군가가 잠을 자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보기엔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조그마한 공간인데 일단 들어서고 나면 생각지도 못한 공간감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래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곳이라고.



눅서울은 거듭해서 말한다. 그대로 놔두어도 괜찮다고. 오래된 많은 것들을 조심스레 만지고, 정리했다. 그것은 방치와는 조금 다른 태도일 것이다. 생긴 모양새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로 다가간다. 있던 것을 존중하고 시간을 이해하려고 한다. 어쩌면 그것은 공간에게만 적용되는 삶의 태도는 아닐 것이다. 나 외의 다른 사람과 맺는 모든 관계에서 필요한 태도는 아닐는지.




03 아늑한 사랑방으로 쓰고 싶었어요


친구 빔과 저녁을 먹다가 내가 문득 물었다. 평소에 빔은 언제나 자신만의 작은 바(bar)를 가지고 싶어 했는데, 어느 날 선물처럼 진짜 작지만 훌륭한 바가 생긴다면 그 이후엔 뭘 하고 싶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빔은 주변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느 날 멋들어진 서재가 생긴다면, 신이 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몇 번이고 파티를 열 테다. 그 이후엔 책 읽을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을 데리고 올 것 같기도 하다. 좋은 것은 나눌 때에 더 좋아지니까.


건축주에게 이곳은 작업실이었다. 365일 살아내야 하는 집이 아니라, 홀로 작업을 하거나 주변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는 사랑방. 그런데 공사를 진행하다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간을 열어두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누군가의 트리하우스는 조금 더 커지고, 조금 더 공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여행자가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건물을 통째로 내어준다.



오래 만난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함께하면 좋을 곳이다. 시간이 뚝뚝 묻어나는 곳에서, 밤이 늦도록 추억을 되새기며 이야기꽃을 피운다면, 그것이 눅서울이 가지는 존재의 이유가 아닐까. 건축주도, 건축가도 그러길 원했듯이.



눅서울에서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모든 요소들이 조심스레 만져졌다. 세심하게 바뀌었다. 마치 고고학자가 새로운 유물을 발견한 때처럼 오래된 많은 것들을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분류하고, 걸러내었다. 새로 공사되는 부분도 최대한 이 건물이 숨기고 있던 원래의 분위기를 유지하고 부각하는 방향으로 계획되었다.


오래된 건물을 다시 쓰기 위한 공사는 어렵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고, 철거하기 전엔 알 수 없다. 계획은 작은 부분 하나하나를 직접 보지 않으면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작은 면적에서 공사를 진행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평당 단가는 더 비싸진다. 좁으면 불편하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눅서울은 80년 된 건물에, 9.3평의 아주 작은 협소 주택이다. 매우 어려운 문제다.


아주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선택지는 두 가지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치열하게 풀어 내거나, 포기하고 다음 문제로 넘어가거나. 눅서울은 전자를 택한 경우다.





눅서울에 대한 이야기는 DOCUMENTUM 5 에 자세히 실려있습니다. DOCUMENTUM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잡지인데, 제가 좋아하는 얼마 안 되는 건축 잡지입니다. 어렵지 않은 언어로, 사진과 도면을 함께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런데 2015년 10월에 나온 5호를 마지막으로 아직 6호가 나오지 않고 있으니 좋아했던 잡지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9708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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