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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Dec 01. 2017

서울을 잇는 또 하나의 길

서울로

00 재생하는 서울


내가 사는 동네는 주택단지였다. 1층 아니면 2층의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그 사이 골목길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동네에 공사 소음이 끊이질 않았다. 어디선가 큰 차들이 나타났다. 특히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던 시기에는 더욱 그랬다. 건물을 부수고 폐기물을 나르는 거대한 기계들이 길을 막고 굉음을 내며, 흰 먼지를 피웠다. 빨간 지붕이 있던 집, 파란 대문이 있던 집, 넓은 정원에서 개를 키우던 집, 그리고 감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던 집이 언제 있었냐는 듯 공중으로 사라져 버렸다.


"엄마, 저 앞에 우리가 항상 얘기했던 예쁜 집 있잖아. 부쉈더라."

"응, 새로 지으려나 보더라."


이런 대화가 우리 집에선 왕왕 오갔다. 개성 있던 집들이 허물어지고, 회색 타일로 중무장한 다세대 주택들이 들어섰다. 빌라라고 흔히 부르는 종류의 주택들이었다. 단독주택을 다시 지어 4, 5층짜리 건물로 다시 올리면 어떤 이득이 발생하는지 아니 말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다.  나의 동네는 눈에 보이듯 훤했는데, 이제는 낯설다. 동네가 그렇게 모두 새것으로 바뀌는데, 난 뭔가 잃어가고 있다.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듯이, 우리는 때려 부수는 것에 익숙하다. 잘못되었다 싶으면 판을 뒤엎어 없던 일로 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 헌것을 없애고 새것을 얻으면 좋다고, 더 넓고 튼튼하게 지어 살면 그만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주위를 돌아보며 건축을 소모품처럼 여겼다. 이 도시가 단시간 안에 빠르게 발전된 도시이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주위 나라를 돌아다녀 보니 상황은 달랐다. 파리에서는 100년이 넘은 주택들을 아직도 고쳐서 살고, 도쿄에서는 겨울이면 입에서 김이 나오는 목조 주택에서 아직도 사람이 산다. 공장을 미술관으로 바꾸고, 더 이상 쓰지 않는 기찻길을 공원으로 조성한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 중에서도 소중한 것은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담은 건축은 도시가 지나온 세월이 고스란히 쓰인 일기장과도 같은 기록이다. 그런 건축은 시간을 타고 넘어 아직까지도 그 자리에 남아 그 도시 사람들이 영위할 수 있는 예술이 되고, 삶이 되고, 공원도 된다.


우리는 이제야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보며 건축이 새로 지어지지 않아도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수도 있다고 배운다. 그 쓰임이 다 했으면, 다른 방식으로 바꿔 쓸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이미 말라버린 시내를 다시 파내어 억지로 물을 흘려보내던 서울시가 부수는 것을 멈추고 좀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건축을 다시 쓰는 것, 그것을 도시재생이라는 단어를 붙여 부른다.




01 차 대신 사람이 걷기로 한 길


처음이 아니다. 이거, 어딘가 좀 익숙하다. 많이 들어 본 이야기. 뉴욕에 있는 하이라인의 배경과 비슷하다. 올해 완공되어 시민들에게 개방된 서울로 말이다.


서울에도 이제는 더 이상 사용될 수 없는 차로가 있었다. 1970년에 지어진 서울역 고가도로는 2006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친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았다. 수명이 2, 3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2015년 최종적으로 서울역 앞 고가도로를 폐쇄하고,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모색했다. 뉴욕에서 고가 화물 노선을 공원으로 만들어 성공적인 관광지로 변모한 하이라인을 모델로 삼아서다.



건축가가 건물만 짓는 것인지를 물으면, 서울로와 같은 사례가 그 반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초청하여 서울역 앞 고가도로를 다시 도시의 산책로로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현상 설계를 개최했다. 지명된 7명의 건축가 중 당선의 영광을 가져간 것은 네덜란드 건축가 그룹인 MVRDV.


MVRDV, The Seoul Arboretum
MVRDV, The Seoul Arboretum


MVRDV는 역동적인 형태와 톡톡 튀는 색감을 주로 사용하는 네덜란드 기반의 건축사무소인데, 서울역 앞 고가도로 현상설계에서도 색을 화려하게 칠했다. 한국에서 나는 다양한 식물을 가나다 순으로 콘크리트 화분에 심는 것이 그 주 개념. 고가도로 자체를 식물원으로 만들겠다는 제안은 용감하고, 과감하다. 2015년 당선이 결정되고, 올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서울역 고가도로는 서울로라는 이름으로 개장했다. 그렇게 차가 다니던 길 위에 사람이 올라섰다. 두 발로 한 발자국씩 내딛으며 걸을 수 있는 보행로가 되었다.



서울로는 땅에서부터 시작해 17m 높이까지 오른다. 차가 다녔던 그 길 위를 사람이 걷는다. 누군가는 나처럼 서울로를 직접 보고 싶어서 이곳을 찾을 테지만, 또 누군가는 근처에 왔다가 잠시 산책할 요량으로 이곳에 올 수도 있다. 의도대로다.



구 서울역을 배경으로, 고가 도로 위에 나무가 심기고 사람이 그 사이를 걷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자동차에게 도로를 내어준 뒤부터 많은 건축가들이 원했던 모습이다. 사람이 천천히 걸을 수 있는 길을 되기 위해 사람과 자동차의 높이를 달리하면 도시는 더욱더 풍요로워지리라고 근대의 많은 건축가들이 믿었다. 여러 시도가 이뤄졌었지만 제대로 이뤄진 것은 없었는데, 서울로가 그 모습을 찾았다.



서울역을 중심으로 주변의 여러 동네로 그 가지를 뻗는다. 아마 이러한 도로의 형태에서 MVRDV는 나무를 연상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나무가 새로운 가지를 뻗어내듯 서울로도 서울역 근처의 동네로 가지를 뻗었다. 중림동으로, 봉래동으로, 서계동으로 그 손을 뻗쳤다. 서울로는 서울역 근처에서 끝나지만, 사람들을 더 멀리까지 보내도록 하는 영향력은 아마 그 방향대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서울로는 여러 방식으로 도시와의 연결점들을 만들었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계단을 만들고, 경사로를 두어 사람들의 접근을 쉽게 하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서울로에서 바로 다른 건물로 진입할 수 있다는 점. 호텔 마누와 대우 재단 빌딩은 서울로와 연결되며 새로운 음식점을 만들었다. 더 많은 건물들이 이런 식으로 공중에서 연결되었다면, 더 활발한 거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여러 현실적인 제약으로 무산되었다.




02 순서대로 줄 지어 선 식물들


한국에서 어떤 식물들이 자라나는지 얼마나 아시는지? 사실 나는 거의 모른다. 눈에 익은 몇 가지 종류를 제외하면, 식물엔 원체 관심이 없었어서 그렇다. 그런데 서울로에서는 아주 친절하게도 가나다 순으로 식물을 심어 놓았다. 현상 설계 당시 당선되었던 건축가 그룹 MVRDV의 주요 개념이다. 그래서 우리는 회현 역에서 내려 아주 큰 식물도감을 펼쳐보듯 걸을 수 있다. 꼭 가나다 순이어야 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긴 하지만.



도로와 같은 높이에서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나무를 바닥에 그대로 심었다. 동그란 경계선만 제외하면 다른 가로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땅과 맞닿아 있기 부분이기 때문에 화분이 크게 올라오지 않아도 흙을 바닥에 내려 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경사로를 따라 길이 땅에서 띄워지면, 그때부터 콘크리트 화분이 등장한다. 고가도로의 재료인 콘크리트를 그대로 사용하여 화분을 제작하고, 그곳에 식물을 가져다 놓았다. 각기 다른 크기의 화분들은 불규칙한 형태로 자리한다.



나무들이 자랄 수 있는 최소한의 흙 깊이는 만족해주어야 했기 때문에 콘크리트 화분은 꽤나 높아졌다. 육중하게 그곳에서 움직일 수 없도록 박혀 있는 콘크리트 화분들은 서울로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면 동선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 사이사이로 재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답.



식물의 종류에 따라 높이 솟은 화분들도 있지만,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높이의 낮은 화분들도 존재한다. 낮은 화분들은 데크 목재를 덧대어 벤치로 활용되고 있는데, 사람들이 많이 찾는 주말 오후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화분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서울로에 겨울이 찾아왔다. 아직 귀가 떨어질 듯 춥지는 않지만, 겨울은 겨울. 바람이 꽤 차다. 서울로의 식물들은 옷을 입기 시작했다.



지난 회사에서 난생처음 식물들을 곁에 뒀다. 꽃이나 풀에게 관심을 주었던 것은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이었다. 회사는 식물들로 가득 차 있어서, 여러 아이들의 이름을 알게 되고 각각의 성격들도 배워 나갔다. 잘 자라나는 아이들은 소리가 안 나서 그렇지, 동물처럼 쑥쑥 자라났다. 자라나는 모습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반려견처럼 산책을 시켜줄 필요는 없었지만, 아기새에게 모이를 주듯이 제때제때 물 양을 체크해서 주어야 했다. 물 먹는 속도들이 다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겨울이 되고, 난방을 하기 시작하자 급격히 시들시들해지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잎이 노랗게 바래거나, 하늘로 솟아오르며 자라나던 잎들이 고개를 숙이고 땅을 바라봤다. 물을 시간에 맞춰 적정량을 주었는데도 그러했다. 나는 왜 아픈지, 뭐가 필요한지 척척 알아낼 정도로 고수가 아니어서 그해 겨울 몇 개의 식물들을 그렇게 보냈다. 겨울이란 나기 힘든 계절이었다.


서울로엔 200개가 넘는 식물 종이 600개가 넘는 화분에 담겨 있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이름 순으로 나열한 식물들은 모두 다 성격이 다를 것이기 때문. 어떤 식물은 물에 담겨 있어 영하의 날씨는 견디지 못할 것이고, 또 다른 어떤 식물은 얇은 잎사귀가 추위에 떨어져 나갈지도 모른다. 일단 몇몇의 상록수를 제외하면, 서울로의 식물들이 이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을까?




03 다양해지는 서울의 풍경


사진을 동아리에서 선배들에게 알음알음 배웠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용돈을 모아 처음 샀던 소중한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지치지도 않고 도시 속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선배들에게 정기적으로 보여주고 조언을 받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들의 충고 몇 가지는 지금까지도 내가 셔터를 누를 때 항상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남아 있다. 보는 방향과 높이를 바꾸라는 것. 정확히 말하면 그냥 서서 찍지 말라고 했다. 무릎을 꿇거나, 바닥에 앉거나, 그게 아니라면 어디든 올라서라고 했다. 그것은 다른 시선을 갖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은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들 속에서도 조금 특별해 보였다.


서울로가 가지는 또 하나의 건축적 의미는 그곳에 올라선 사람들에게 다른 시야를 제공하는 것이다. 보는 높이와 방향을 바꾸는 것. 우리가 매일 걷고,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을 다르게, 새롭게 바라보게 해준다는 것. 그것이 서울로가 어떤 구조로, 어떻게 서 있느냐와는 별개로 도시 속에서 가지는 건축적인 가치일 테다.



서울역 주변은 높이 솟은 유리 건물들이 오와 열을 맞추고 있는 강남역과 같은 동네와 조금 성격이 다르다. 높은 건물들이 있긴 하지만, 도로 하나만 건너면 아주 좁은 골목들을 가지고 있는 남대문 시장과 마주한다.



구 서울역과 신 서울역이 이렇게 생겼고, 그 앞 서울스퀘어가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음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이 광경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역시 서울로가 개장하고 난 뒤다.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 안에서 스치듯 볼 수는 있었겠지만, 서울로로 인해 오래도록 서울의 풍경을 눈에 담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동차와 버스들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이렇게 건물들과 눈을 맞댈 수 있는 높이에서 도시를 360도 조망할 수 있는 곳은 내가 기억하기로 서울에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타워나 롯데월드에 올라서면 발밑으로 펼쳐지는 도시를 볼 수 있을 테지만,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듯 걸을 수 있는 길은 없다. 높긴 하지만, 지나치게 높이 솟아 있지는 않기 때문에 서울로에 올라서서 사람들이 걷는 것, 자동차가 다니는 것, 기차가 달리는 것을 근거리에서 볼 수 있다. 도시가 움직이는 모양새다. 살아있는 도시의 모습이다.




좋은 뜻과 건축적인 개념으로 개장하자마자 외국인들이 찾아오는 관광지가 된 서울로에게도 아쉬운 점이 왜 없으랴. 콘크리트 화분은 조금 더 작았으면 좋겠고, 그게 힘들다면 나무들은 높이 솟아 그늘이라도 잔뜩 만들어줬으면 했다. 고작 건물 두 채와 연결되기보다는 더 많은 건물과 연결되어 도시 그 자체가 되었으면 더 멋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도 자체로 의미가 있다. 처음이니까, 이 정도면 잘했다고 칭찬 한 마디 정도는 해줄 수 있겠다. 때려 부수고 다시 새로 번지르르하게 짓는 행위를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는 좋다. 시간을 허무하게 지워내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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