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선아키 Dec 08. 2017

마당을 품은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00 여행의 장소


모두들 여행을 다닐 때 꼭 찾는 자신만의 장소가 있으신지? 그 지역의 맛집을 찾아가는 사람도, 그 지역 공원에서 샌드위치라도 입에 물어야 여행이라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엔 미술관을 꼭 찾는다. 그렇다고 미술을 좋아하고 작품을 볼 줄 알아서 미술관에 가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전혀 아니다. 그림에도 관심이 없고, 조각에도 큰 흥미가 없다. 어떤 작품이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 골라낼 수는 있겠지만, 왜인지 설명해야 한다면 조금 난감해진다. 특히 그것이 현대 미술이라면 더 난해하다.


그보다 여행을 다니며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미술작품이 아닌 미술관 그 자체였다. 미술관 건물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공간을 보고 싶어서 관람권을 사서 들어간다. 보고 싶은 것은 언제나 그곳에 있으니, 어떤 전시가 열리든 상관없다. 전시 준비 기간과 겹치지만 않는다면,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은 건축. 계속 그 자리에 있는 상설전이니까.



미술관은 관람객뿐 아니라 건축가에게도 자유로운 장소다. 어떤 건물이 설계하기 가장 어렵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택이라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다. 살아 나가는 공간에는 필요한 것도 많고, 충족시켜야 할 조건들도 많기 때문에 그런 요구사항들을 다 넣고 나면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볼 수 있는 자리는 남아 있지가 않다. 하지만 미술관은 예술이 가진 특성 덕분인지, 전시를 할 수 있기만 하다면 건축가는 미술관에서 조금 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새로운 동선, 공간의 구성, 마감재, 형태까지 최소한의 제한 안에서 움직인다. 그래서 건축가는 미술 작품을 관람객에게 선보이는 것과 동시에 공간도 같이 선물하는 셈이다.


조금 더 자유롭기 때문인지, 미술관은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들과 같다. 덩치를 최대한 크게 부풀려 랜드마크가 되고야 마는 영웅적인 건축물도 있고, 원래 다른 쓰임이던 건물을 다시 고쳐 미술관으로 세심하게 고쳐 사용하는 미술관도 있다. 요새는 도심 안에 더 이상 큰 미술관이 들어설 자리가 남아 있지 않은 탓인지 작은 미술관들도 생겨났다. 그리고 이곳엔 형태 자체를 없애려는 미술관이 있다. 주변의 많은 것들을 가리고 싶지 않아 최대한 투명하고자 한 장소. 무형의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다.




01 과거가 있는 땅


가끔씩 카카오톡 친구들 목록을 살핀다. 친구에게 소개팅을 시켜주고 싶어서 스크롤을 내리기도 하고, 명절이면 누구에게 명절 잘 보내라 안부 인사를 전해야 할까 고민스러워 특히 더 꼼꼼히 본다. 이름과 얼굴을 보는 동시에 이 사람과 내가 언제 처음 만났고, 어떤 일을 함께 했었는지 비눗방울처럼 추억이 퐁퐁 터지면서 떠오른다. 그와 내가 같이 엮었던 몇 가닥의 추억들은 쉽사리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불쑥 나올 기회만 엿보며 가라앉아 있다. 보통 어떤 연락을 할지는 깊이 가라앉은 그 추억의 내용에 달려있다.


건축가에겐 땅도 마찬 가지. 땅에는 그 역사가 녹아 있다. 그것이 국가적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사건이 일이 일어났다면, 그 사실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건물을 지어 놓을 수는 없다. 역사를 인정하고, 수용하고, 담아내는 것이 건축이 할 일이다. 그리고 이곳, 소격동에서는 매우 많은 과거가 있다.



지금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터가 된 이곳은 조선 시대 종친부 소유의 땅이었던 곳. 대한제국 시절 최초의 현대식 병원이 세워진 후 일제 시대엔 군 시설이 되어 줄곧 군 시설과 병원 시설로 쓰였다. 그 역사의 증거로 붉은 근대식 건물이 아직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데 과거 국군기무사령부, 기무사라 불렸던 곳이다.



이 땅에 국립현대미술관이 들어서면서 기무사 건물은 다시 고쳐져 미술관의 일부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대로에 맞붙어 미술관의 입구 역할도 한다. 진입부에 도로를 따라 서 있는 길쭉한 기무사 건물 덕분에 미술관은 가려진다. 다른 미술관이라면, 눈에 쉽사리 띄지 않는 것이 원망스러웠을 테지만 이곳은 조금 다르다. 기무사가 버티고 있으니 새로 지은 건물 같지 않게 주변과 어우러지기가 수월했다.



미술관의 뒤편으로는 종친부 건물이 한옥 양식을 그대로 유지한 채 서 있다. 미술관과 연결되는 길 끝에 담장도 두르지 않고 한옥을 만나게 되니, 그 경계가 모호해진다. 어디까지가 미술관이고, 어디까지가 종친부인지 도면을 들고 있지 않는 한 알기가 어렵다.



마찬가지로 종친부 건물은 기무사 건물처럼 가려지지 않고 서 있다. 원한다면 종친부든, 기무사든 얼마든지 요리조리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미술관은 몸을 낮게 굽히고 있다.



그런데 이뿐 아니다. 기무사보다, 종친 부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장소는 바로 미술관의 정면에 위치하고 있다. 경복궁이다.



삼청동 쪽의 북촌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미술관과 함께 경복궁에 다다른다. 경복궁 너머로 인왕산의 능선이 배경으로 펼쳐진다. 옛 한양이 어땠었을는지 생각해보면, 금싸라기 땅이 아닐 수 없다. 기무사와 종친부와 경복궁으로 삼면이 둘러싸인 땅. 그것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대지 위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연애를 안 해 본 사람과 살면서 애인을 100번은 갈아치운 사연 많은 사람 중 반드시 한 사람과 새로운 연애를 시작해야 한다면, 당신의 선택은? 어려운 문제다. 경험은 없어도 어렵고, 너무 많아도 힘들다. 정도 차는 있겠지만 사귀는 것이 쉬운 사람은 없는 것처럼, 설계도 그렇다. 땅을 받아놓고 나면 주위에 너무 아무것도 없어도 막막하고, 주변 상황이 중요한 것들로 가득 차 있어도 난감하다. 이곳은 후자. 중간 정도면 좋겠는데, 많아도 너무 많다. 역사도 길고, 주변에 중요한 건물들도 산재해 있다. 어려운 땅이다.




02 마당을 품은 미술관


월요일이 되면 나도 모르게 검은색 옷을 입기 시작한다. 검은색 하의와 상의로 맞추고, 검은색 외투를 걸치고 출근길에 나선다. 월요일에 유독 그렇다. 몇 주째 왜 내가 아침마다 검은 옷을 선택했는지 고민해 봤는데 출근하기 싫어서, 사라지고 싶어서 그랬다. 또 머릿속이 복잡할 때 듣는 노래도 생겼다. 크루셜스타의 <내버려둬>. 후렴구의 가사는 이렇다.


내버려둬 내버려둬 내버려둬

그냥 사라지게 내버려둬


이 후렴구 때문에 백 번은 들었을 이 노래를 버릴 수가 없다. 내가 하도 틀어 두었던 탓에 내 친구 빔도 길을 걷다 종종 흥얼댄다. 내버려 둬. 그냥 사라지게. 스트레스받을 때 소리 내어 부르기 좋다.


월요일이나 여러 가지 일이 모두 한 날에 겹칠 때면, "아, 사라지고 싶다."라고 중얼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대로 나에게 겨냥된 수많은 일들을 그대로 그 자리에 놓아두고, 나만 쏙 빠져나오고 싶은 기분. 회사를 다니며 모두가 한 번쯤 해봤을 그 생각. 그 생각을 이곳에서 건축가도 한 것이 아니었을까. 주변에 거대하게 서 있는 많은 랜드마크들을 그대로 놔두고 쏙 빠져나오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는지 장난스레 추측해 본다.



그래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타이틀은 '무형의 미술관'. 아마 현상 설계 당시부터 계속 지속되어 온 이 장소의 콘셉트일 것이다. 기무사와 경복궁, 종친부와 삼청동 거리까지 쟁쟁한 주변 상황을 그대로 두고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몸을 낮추고 숨어버렸다.



미술관 건물은 비켜섰다. 대신 미술관 앞에는 큰 마당이 자리한다. 미술관은 마당을 중심에 두고 빙 둘러 서 있을 뿐. 주인공은 건물이 아니라 마당인 것처럼 보인다. 아니, 사실 정말로 그렇다. 그래서 나뿐 아니라 이곳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의 모습을 이 마당으로 기억하고 있을 테다.



미술관이 품은 마당은 중심에서 다양한 활동을 그릇처럼 담아낸다. 아이들이 실컷 뛰어노는 운동장이 되기도 하고, 건축이 실제로 지어져 전시되는 파빌리온이 지어지기도 한다. 그게 아니라면 미술관 측에서 야외 전시를 할 수도, 플리마켓을 열 수도 있을 것이다. 가능성은 열려 있다. 비워두니, 많은 것들이 차오를 수 있는 것.



그릇의 재료는 흙이었다. 미술관이 품은 야외의 마당이 하나의 그릇이라면 말이다. 구 기무사 건물에서 쓰였던 벽돌과도 어울리면서, 앞뒤로 마주한 한옥과도 같은 맥락으로 보일 수 있는 재료가 무엇일까 고민한 끝에 건축가는 테라코타를 외벽 마감재로 선정했다. 테라코타 또한 벽돌과도, 한옥의 기와지붕과도 같이 흙을 구운 재료이기 때문에 이질적이지 않게 어울릴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테라코타의 형상은 암키와의 그것과도 같이 약간의 곡률을 가지게 됐다.



미술관은 진입부부터 공간이 뻥 뚫려 있다. 층고를 아낌없이 올려, 얇고 긴 형태의 로비를 최대한 넓어 보이게 한다. 로비는 외부 마당에 붙어 있는데, 사람들은 자연스레 유리 벽 앞 벤치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게 된다. 마당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공간이다.



무형의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두 번째 마당도 다시 외부에 존재한다. 경복궁에서 종친부 쪽으로 크고 높은 길이 건물을 뚫고 나 있으니, 그 길을 쭉 따라 오르면 된다.



종친부 건물의 앞, 미술관의 또 다른 마당이 있다. 뛰어 놀기보다는 조용히 관망하기에 적당한 곳. 이곳은 종친부를 뒤에 두고, 인왕산과 경복궁을 향해 시선을 두게 된다.



야외 마당을 둘러싼 미술관 건물 사이로 인왕산의 실루엣이 그대로 보인다. 꽤 가깝다.



바깥의 마당을 모두 비워 다른 풍경이, 활동이 담길 수 있도록 한 것과 같은 규칙으로 내부에서도 많이 비워냈다. 비워내기 위해 건축가는 여러 박스를 내부에 심어 놓았는데, 이 박스들은 하나하나가 전시장이 되고 로비가 되고 길목이 된다. 그중 가장 큰 박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서울 박스라 한다.



티켓을 사서 전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전, 로비 끝에서 서울 박스 안을 내려다볼 수 있다. 들어가기 전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예상할 수가 없다. 다만 아주 큰 공간이 있는 것을 전시를 보기 전부터 인지하게 된다.



외부 벽에서 사용했던 패턴을 그대로 내부로 가져왔다. 다만, 외부의 빛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이기 위해서 재료를 테라코타를 사용하지 않고, 유리로 마감했다. 더군다나 서울 박스에선 다른 대부분의 부분들처럼 반투명하지 않고 투명한 부분에 종친부가 액자 안 그림처럼 들어오게 된다. 의도한 대로일 것이다. 종친부를 내부로 끌어들인다.



전시를 돌아보다 자연스럽게 다시 몇 번이고 서울 박스로 돌아오게 된다. 동선의 중심이다.



건축가는 전시장을 구성하면서 여러 개의 박스를 모두 이 서울 박스와 연결해 놓았는데, 그래서인지 층고가 상당히 높다. 크고 높은 공간에서, 사람들은 아주 작게 변한다.



전시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마당을 하나 더 마주한다. 1층에서 건물에 둘러싸인 미술관 마당도 아니고, 내부에 거대하게 마련된 서울 박스도 아니다. 이곳은 전시의 끝을 알리는 전시마당. 마찬가지로 건물에 둘러싸여 있지만, 내부에서 진입하는 문으로밖에 들어갈 수 없다.



잔디가 깔려 있는 이 전시마당은 무엇으로 쓰일 수 있는지, 보지 않아 아직 감을 잡기가 어렵다. 전시가 끝나고 난 뒤 피크닉이라도 할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었을까? 사람들이 편하게 공원에 온 것처럼 자리를 깔고 앉아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될 수 있었을까? 아직은 그 가능성을 보지 못해 아쉬울 따름. 나처럼 문을 당당히 열고 들어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건물로 4면이 둘러싸여 있어서 접근이 약간 어렵다.



건물은 최대한 몸을 숙이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주변 땅의 많은 요소들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실은 2층 전시실 하나를 빼놓고 모두 지하에 묻혀 있는데, 위의 천창과 유리 재료를 이용해 최대한 햇빛을 안으로 끌어 드렸다. 그래서 지하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하로 느껴지지 않았다.





03 발길이 닿는 대로


직장인이 되어서 가장 아쉬운 점 중 하나가 전시를 보러 평일 낮에 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보고 싶은 전시가 있으면 주말을 피할 수 없다.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전시를 여유롭게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평일 낮이 굉장히 그리워진다. 왜냐면 주말에 시간을 잘 못 맞춰서, 아니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 기가 막히게 잘 맞춰서 미술관에 줄을 서 들어가게 되면, 전시도 줄을 서서 봐야 한다. 조금 더 머물러서 그림을 눈에 담고, 공간에서 숨을 쉬고 싶은 시간들도 뒤에서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사람들 때문에 밀려버리고 만다. 도슨트가 있는 시간엔 훨씬 더 심하다. 사람들에 밀려 다음 스테이지로 이동해야 한다.


그러한 전시 방식을 탈피하고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전시 동선 체계를 기존의 많은 미술관들과 다르게 바꿔 버렸다. 전시의 순서를 없애고, 일자로 이어지던 동선을 여러 갈래로 나누었다. 방사형의 길을 가지게 된 것. 그래서 관람객은 전시의 순서도, 시간도 조금 더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길은 서울 박스에서 나뉜다. 큰 박스 안에서 사람들은 다음 전시를 선택한다. 높고, 넓어 사람들과 크게 부딪힐 일은 없으니 주말에도 넉넉한 시간을 들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사람에 비유하면, 보자마자 그 화려한 위용에 시선이 따라가는 사람은 아닐 테다. 오히려 시간을 들여 바라보게 되었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나는 쪽에 더 가깝다. 그 자리를 묵묵히, 성실하게 지키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눈부신 화려함으로 온몸을 감싼 사람보다, 수수하지만 담백한 사람이 더 오래간다. 그러한 사람이 빈 수레가 아니라 꽉 찬 수레다. 경험상 그렇다. 아마 그것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도 마찬가지 아닐는지.


이전 19화 서울을 잇는 또 하나의 길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사진으로 건축 읽기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