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리의 트렁크>, 백가흠
어떤 사람은 서울역 앞을 지나며 나에게 말했다. 노숙자들이 이해가 안 간다고. 팔다리가 멀쩡하면 나가서 어떤 일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하지 않겠냐고. 왜 노력하지 않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서. 나는 그것이 오로지 노력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라고 그들의 삶에 대해 항변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지만, 결국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았다.
흉흉한 범죄를 다루는 뉴스가 싫다. 불우이웃 돕기 성금 방송이 싫고, 봉사활동 가는 것도 싫다. 그렇게나 많았던 대학생 봉사활동 동아리들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 기부도 하지 않는다. 맞다. 나는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쳐다보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조대리의 트렁크>는 그런 내 고개를 붙잡고, 눈을 억지로 뜨게 한다.
여기 떨어지고 낙오된 자들이 있다. 사회가 보듬어 품지 못한 채,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노인, 성 소수자, 미혼모, 가출청소년, 취업실패자, 방치되는 아이들, 그리고 여성. 그것이 아니라면 온갖 불법으로 돈을 벌 수밖에 없는 사람들. 우리들은 그들을 보는 것이 불편하다. 그러니 그들의 삶을 날것의 상태로 꺼내어 보여주는 이 소설도 치미는 불편함에 쉬이 읽히지 않았다.
이 소설을 불편하게 여기게 되는 사고 흐름은 두 단계를 거쳐 왔다. 첫째로 이것이 완벽히 100% 허구가 아니라는 것. 작가가 극단적으로 표현했다고 에둘러 피해 가기엔 실제로 벌어졌던 현실의 사건들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니 소설 속 세계는 곧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진다. 고통은 나에게도 찾아올 수 있다는 공감의 영역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그런데 답이 없다. 기약 없는 고통과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깜깜한 일상을 해결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 본질적인 해결책을 내놓질 못하겠다. 시스템의 실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