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바지 입고 출근해보겠습니다. 물론 운동복 반바지는 아니고 리넨 재질의 시원한 여름용 반바지입니다. 줄무늬 무늬는 가지고 있는 게 없고, 컬러도 하얀색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회색이나 남색으로 정해야겠네요. 출근길 문득 이렇게 다짐해보지만 아무래도 직접 실천하기까지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해 보입니다.
지하철에서 반바지를 입은 -물론 출근하는 것 같은- 분들은 많이 없습니다. 기업 분위기마다 다르겠지만 공기업은 이런데 있어 한없이 보수적입니다. 반바지를 못입으면 보수적이냐 물으실지 모르겠는데, 문제는 분위기입니다. 예컨대, 공사현장에서는 차량을 운전하는 기사분들에게도 안전모 착용을 원칙으로 합니다. 사실 그분들은 운전만 하시기 때문에 안전모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안전모를 벗은 분들이 있으면 나도 안전모를 벗고 싶어 지고, 그렇게 되면 너도나도 안전모를 벗고 왜 나만 이 불편하고 딱딱한 안전모를 써야 하나 항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강제로라도 안전모를 씌우는 분위기를 만듭니다. 그렇게 되면 확실히 조금 더 긴장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반바지를 입으면 너도나도 편한 반바지를 입을 것 같아서 안될 것 같기도 합니다. 반바지는 상대적으로 편한 바지니깐, 반바지를 입고 올 때면 회사가 편안해지기 때문에 업무효율이 떨어진다. 뭐 이런 식 일 겁니다. 하지만 반바지를 입는다고 회사가 편해질까요 라는 건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회사는 불편한 곳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안방만큼 편할 수 없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면 회사를 조금 더 편하게 만드는 분위기로 반바지를 이해하면 안될까요? 아침에 조금 힘든 운동을 간다고 생각하거나, 저녁 먹기 전까지 회사를 자기개발하러 간다고 생각하면 정말 안될까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반바지가 회사 분위기를 조금 더 편하게 바꿀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즐겨입는 반바지 입니다. 혹시 즐겨입는 반바지 입고 출근하고 싶지 않으신가요?
사실 이미 입추와 처서를 지나 밤이 되면 선선한 바람 때문에 창문을 닫는 시점에 반바지를 입을까 고민하는 것이 웃기기는 합니다. 하지만, 반바지를 규정하는케케묵은 '복무규정'의 개정도 여름이 한창일 때 사내 게시판논쟁을 시작으로 가을에 들어설 즈음 윤곽이 그려지곤 합니다. 요는, 반바지를 입는 것도 일종의 새로운 문화라고 생각해야 된다, 그러니깐 편하게 입되 격식을 차리자 정도로 정리되겠습니다. 그래도 공식석상에서 반바지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저는 어쩌면 꼰대일지도 모르겠네요.
참, 여성분들은 샌들을 신고 출근하는걸 봤는데 남성들은 샌들 신은걸 아직 못 봤네요. 남성분들은 다들 샌들은 집에서 편하게 있을 때 신는 신발이야라고 협의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실상은 남성분들도 출근해서는 편한 슬리퍼로 갈아 신는데 말이죠. 그렇게 생각은 해보지만 반바지를 입고 싶다고 부장님께 말을 꺼내는 건 아무래도 저한테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냥 퇴근해서 맨발에 쪼리를 신고 편하게 반바지를 입기로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