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오프조이 Oct 03. 2020

삼십 대의 방황에 대하여 -

나는 방황하지 않는 마흔을 꿈꾼다. 



- 방황 彷徨


1.      이리저리 헤매어 돌아다님.  잘 곳을 정하지 못해 거리에서 방황을 계속하였다.

2.      분명한 방향이나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함. 젊은 시절의 방황.


방황이라는 단어를 찾아본다. 

두 번째 단어의 설명엔 '젊은 시절의 방황'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 그렇다면 삼십 대의 방황은? 


서른셋의 나는 약 1년 전에 이직을 했고 업무도 어느 정도 손에 익어가고 있다. 

이직과 함께 준비하던 결혼식도 최근에 올렸다. 

어느 정도 인생의 안정기에 들어선 나는 정작 인생 방황기를 보내고 있다. 


10대의 방황에는 담임선생님과 부모님이 미성년자는 이름으로 어찌어찌 내 멱살을 끌고 가줬고,

20대의 방황에는 똑같지는 않지만 '취업' 혹은 '학업'이라는 공통의 주제로 함께 달려가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30대가 되었다. 오지 않을 것만 갔던 30대가 되었다. 


30대에 들어서니 친구들과 나의 삶은 많은 부분 달라져 있었고,

더 이상 부모님이 케어해주기보다는 내가 부모님을 케어해드려야 할 부분이 많아진 삼십 대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모든 것이 내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는 책임감이었다. 




\ 그리고 시작된 삼십 대의 방황


이직과 결혼이라는 삼십 대에 해야 할 '임무'라는 것을 끝내고 나서

본격적인 나의 방황이 시작되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방황하고 있다.


불과 십 년 전에는 '취업'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토익과 오픽을 보고 

온갖 스터디로 취업준비에 박차를 가했었고 시험의 일정에 따라 내 스케줄도 달라졌다. 

심지어 배워야 할 것들로 넘쳐났었다. 시험을 보느냐 바빴고 서류를 넣기 바빴던 시간들을 보냈다. 


세월이 지나 서른이 되었고, 더 이상 공부하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나의 방황은 더욱 깊어졌다. 


 


\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도 될까? 

 

삼십 대가 되고서야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여유가 생겼고, 

삼십 대, 이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사십 대의 방황은 그때부터 시작되었고 더 복잡해졌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진 요즘에는 정작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우선순위를 모르겠다. 


그동안 정해진 정답을 향해 살아왔던 내가 마주한 삼십 대는 - 

더 이상 객관식이나 주관식이 아니었다. 인생은 서술형이었던 것이다. 

내가 진작에 내 인생의 서술형을 준비할 수 있었더라면 삼십 대에 들어선 지금 덜 방황했을까,

대한민국의 일방적인 교육방식과 나의 인생에 대한 무계획, 나에 대한 무지함에 대해 생각한다. 





\방황하지 않는 마흔을 꿈꾼다. 


삼십 대가 되어서야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는데,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오늘도 방황에 대한 정답을 찾지 못한 듯하다. 


삼십 대의 방황은 어떻게 방향성을 잡아야 하는 것일까. 

이는 먼저 삶을 살아낸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방향을 잡아야 할까,

아니면 책이나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배워야 할까. 


속 시원하게 누군가가 삼십 대의 나에게 - 

"이런 것들을 먼저 준비하면 좋아, 혹은 저런 것들을 시작하면 행복해질 거야."라고 조언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마흔을 준비하고 싶다. 

마흔이 된 나는 나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내가 살아가고 싶은 인생의 방향을 어느 정도는 파악한 사람이고 싶다. 


이제부터 끊임없이 삶의 방향,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할 터. 

나는방황하지 않는 마흔을 꿈꾼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상사, 만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