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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츠비 Jun 10. 2023

[기러기 남편의 난임일기 3]

end와 and

2023.06.10


5월 29일 배아 이식 후 열흘이 흐른 지난 6월 8일, 착상(임신) 여부를 알아보기 위한 피검사를 받기 위해 난임 클리닉 방문을 하루 앞둔 그날 아침, 아내는 잠에서 깨자마자 얼테기(얼리 임신 테스트기)를 꺼내 화장실로 향했다. 난자 채취 때도, 배아 이식 때도 아내와 난 느낌이 좋다는 것을 느꼈기에 내심 기대를 했는데, 대조선 옆에 보여야 할 줄이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실망했지만, 난 하루 뒤 있을 피검사 수치를 보고 실망해도 늦지 않는다며 아내를 다독였다.


피검사 당일이었던 어제, 아내가 전해온 피검사 수치는 7.41. '임신이 되지 않았습니다.'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의 수치였다. 유산 후 꼬박 4개월을 기다렸던 4차 시술이었는데.. 4개월이 넘게 몸 관리와 멘털 관리에 정성을 쏟아온 아내였는데.. 4개월 동안 멀리 떨어져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해야 된다는 마음으로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시각화(심상화) 명상과 확언을 하며 끌어당김의 법칙을 실현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버텨온 나였는데..


그렇게 지난 1월 유산 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4차 인공수정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이미 세 차례의 얼테기를 통해 피검사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았던 아내는 꽤 덤덤해 보였지만, 피검사 당일 병원에서 단톡방 동기들을 만나 4번의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나와 통화할 땐 오히려 괜찮다고 나를 다독이던 아내였는데..


나는 정말 빵점짜리 남편이다. 아내가 기댈 수 있는 넓은 가슴과 넓은 어깨를 가진 것도 아니고, 쓸데없이 감수성만 뛰어나 울기만 할 줄 알았지 위로의 말 한마디를 어떻게 건네야 할지도 잘 모른다. 나 대신 아내를 위로해 준 난임 클리닉 동기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정도로 쓸데없이 솔직해서 아내만 있으면 된다고, 아이는 필요 없다고, 이젠 아이는 싫다고, 우리 둘만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말한 나다. 이미 마음을 추스르고 5차 시도를 생각하기 시작한 아내에게 위로가 됐을 리 만무하다. 이런 바보 남편이 또 어딨을까. 한심하다.


그래도 진심은 진심이다. 정말 아내만 있으면 된다. 아내는 어느 것 하나 특별할 것 없는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존재니까. 능력 없는 나를 나 스스로 아내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존재니까. 그런 아내가 이 말을 했을 때 사무실이라 꾹꾹 눌러 참고 있었던 눈물이 결국 흘러나오고 말았다.


'오빠 마음 잘 알지. 근데 난 살면서 아이가 없을 거 생각하니 마음이 시큰해. 그리고 오빠가 나 닮은 아기 보고 싶은 것처럼 나도 오빠 닮은 아기가 보고 싶어. 그래서 이게 포기가 될까 싶어..'


그랬다. 난 연애시절 아내를 부르던 애칭에 '주니어'를 붙여서 '널 닮은 땡땡주니어가 보고 싶다.'며 아내와 함께 아이를 갖는다는 꿈을, 셋이서 단란하면서도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꿈을 꿔왔고, 인생에 결혼 계획도 2세 계획도 없었던 아내가 내 꿈에 동조해 주면서 아이를 갖기 위한 여정이 시작됐었다. 1번의 유산을 포함한 4번의 난임 시술 실패를 겪은 후 잠시 잊고 있던 내 꿈을 아내가 다시 상기시켜 준 것이다.


이번에도 또 거꾸로 아내에게 위로를 받은 '바보 남편'은 '난 역시 아내가 없으면 얏빠리 난데모나이야 (やっぱりなんでもないや, 역시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혼잣말을 되뇌며, 울며, 이제는 위로 그만 받고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한다.


4차 시술은 실패로 끝났지만, 아내가 있는 한, 우리에게 서로가 있는 한,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한, 행복하고픈 꿈이 있는 한 End가 아닌 And다.


*얏빠리 난데모나이야 (やっぱりなんでもないや, 역시 아무것도 아니야)는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ost 수록곡 'Nandemonaiya' 가사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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