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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츠비 Jul 22. 2023

[기러기 남편의 난임일기 5]

새로운 마음으로

지난달 한국에 아내를 보러 가서 강화도로 이른 여름휴가를 다녀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지난번 시술에 실패한 후 힐링을 하기 위해 떠난 강화 여행은 매우 만족스러웠지만, 중국에 또다시 홀로 복귀한 난 다소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무더위도, 바쁜 일도 모두 다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 너무 잘 안다. 그런데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 동력을 잃었을 때 어떻게 다시 일어나야 하는지는 마흔이 되어서도 잘 모르겠다.


한 달 동안 줄곧 무기력함 속에 지내던 나와는 달리 아내는 바빴다. 다음 시술을 위해 난자 채취 과정을 시작했고, 동시에 다음 주 있을 이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혼 5년 만에 우리 집이 생긴다. 은행 돈을 빌려서 가까스로 들어가는 집이지만, 게다가 고금리 탓에 이런저런 걱정이 들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드디어 아내와 나의 첫 보금자리가 생기는데. 새 집을 생각하면 마냥 들뜨는 나와는 달리 아내는 현실로 닥쳐오는 여러 문제들을 직면하고 처리해야 했기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내는 작년부터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우리 아이가 새 집 입주에 맞춰서 그전에 찾아와 주면 너무 좋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난 그때마다 그렇게 될 것이라고 아내에게 힘을 불어넣으면서 나 자신도 간절히 소망했다. 하지만 입주가 코앞에 다가왔음에도 아이는 아직이다.


지난 시술 실패 후 우리의 기대와 달랐던 결과에 우리 부부는 마음이 지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또 힘이 들면 힘이 든 대로 살아진다. 입주가 가까워질수록 챙길 것이 많아진 아내는 다행히도 난임에 대한 걱정이나 고민은 잠시 미뤄둔 듯하다. 물론 병원에 갈 때마다 다시 우울해지기도 하고, 병원 동기들 단톡방에서 동기들의 좋지 않은 소식을 듣거나 반대로 좋은 소식을 들을 때도 마음이 들쑥날쑥한다. 그래도 어렵게 마련한 우리 집으로의 입주가 다가오니 아내와 나 모두 뭔가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힘을 내게 되는 것 같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매일을 간절함으로 살아가며 버텨내다 보면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지는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려고 한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나 없이 잘 버텨주고 있는 너무나도 고맙고 사랑하는 아내를 생각하면 그간 무기력함에 지내던 내 모습이 부끄럽기만 하다. 오늘 난 다시 다짐한다. 힘내자고. 아내와 함께하는 인생의 앞날에 기다리고 있을 행복한 장면과 그 느낌을 떠올리며 일어서보련다.


우리 집이 생겼다. 그리고 아이도 곧 생긴다. 그렇게 우리는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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