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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ul 31. 2024

감정을 빼고 일하고 싶은 나 [데이비드 흄]

내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는데 말이지


오늘은 참 마음이 좋지 않은 하루였다. 일도 그렇고 사람도 그런 일이 있었다. 울컥하는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결국 눈물이 흘렀다. 늘 나의 감정을 통제하고 싶어서 감정에 대해서 공부를 한다. 공부해서 쉽게 이해되었다면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감정에 대해 고민하진 않았겠지.


감정은 늘 그렇듯 우리 생활의 중심에 있다. 나 역시 좋은 감정으로 하루를 보내고 싶어 아침 일기를 쓴다. 매일 '어떤 감정을 유지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 기대하는 기분을 적어본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일이 생기게 되면 기대한 기분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바로 삶이다.




감정, 빼고 일할 수 있을까?


사실, 감정을 느낀다는 건 지금 나의 상황을 인지하고, 가치에 대해 반응하게 되는 거다. '가치가 있다'는 것은 개념적으로 내 삶을 윤택하게 해 주는 것, 즉 삶의 의미부여와 같다. 하지만, 감정에서의 가치 반응은 긍정적인 영향뿐만이 아니라 부정적인 것 또한 함께 인식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두려움이나 슬픈 감정을 인지함으로써 이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주게 되기도 한다.


이런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 또한, 오늘의 감정 때문이다. 


내가 관리하는 사업체의 제품에서 컴플레인이 발생했다. 갑작스러운 컴플레인의 발생으로 상위 기관의 담당자들이 나에게 직접 전화가 왔다. 실제로 그 제품은 음식이었기 때문에, 혹시 상한 건 아닌지 그리고 제품 제조 과정에서의 문제는 없었는지 확인해 보는 과정이 있었다. 앞에 누가 있던 상관없이 복잡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다행히도 제품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 끝에 만든 우리만의 제품이기에 고객에게 상세한 안내가 필요했다. 왜 이런 맛이 나는지, 어떻게 먹으면 맛있을지 등등. 사전 지식이 없는 고객들에게 이해시키기에는 더욱 친절한 안내가 필요했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이를 개선하기로 협의했다. 


마음이 불편하던 와중, 친구와의 약속이 생각났다. 일을 마무리하고 바로 이들을 보낼 순 없었다. 결국 친구에게 연락을 해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돌아오는 친구의 말에 서운함이 밀려왔다. 네가 일 다해? 나와의 약속이 중요하진 않아? 이 말을 듣고 담당자들과 만나 웃으며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렇다면 감정을 조절할 수 있을까?


복잡한 감정이 들었지만 나는 '프로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마주했다. 대화를 하는 동안에는 잊을 수 있었지만,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집에 돌아오자 다시 나쁜 감정이 올라왔다. 나처럼 많은 사람들은 감정에 좋고, 나쁨이 있다고 말한다. 기쁘고 행복한 것은 좋은 것, 슬프고 화나는 감정은 나쁜 것이다. 감정은 좋고 나쁨이 없다. 그저 다를 뿐이다.


우리가 잘 아는 플라톤은 이성을 마부에 감정을 말에 비유하며 이성의 통제력을 강조할 만큼, 이성이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감정은 통제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내가 판단할 대상이 아니다. 


내가 속상한 감정을 느끼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지 않나?



감정을 조절하고 싶은 나에게

다 괜찮다고 말해준 데이비드 흄의 말


인간의 행동과 관계에 엄청나게 많은 영향을 받는 나. 결국 관계에서 발생한 스트레스가 나의 발목을 잡을 때가 참 많다. 다양한 인간 군집이 모여 있는 조직에서 예민도가 높은 탓에 늘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감정을 완벽하게 제거할 순 없어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진 않을까? 


경험주의자이자 회의주의자인 흄에게 나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던져보았다.



감정을 무시하지 말고 받아들이자

감정이 인간 행동의 주된 원동력이다. 이성이 감정을 통제할 수는 있다. 궁극적으로 감정에 의해 행동이 결정되는 건 사실이다. 감정이 도덕적 판단, 행동의 근간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을 억압하거나 무시하는 건 본인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처사다.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당황스러운 상황은 자주 생길 수 있다. 그때마다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나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친한 친구라고 하더라도 나를 전적으로 다 이해해 줄 수는 없다. 타인 또한 본인에게 나타난 감정을 통하여 나에게 행동한 것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억제하기보다는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가치관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 속에서 어떤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깨달을 수 있고 그를 통해 원동력을 발견하게 된다. 



공감할 줄 알아야, 중요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실제로 다른 사람의 감정이 나에게 표현되고, 관념으로 이해되는 과정에서 나 자신에게 상응하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사람의 열정, 감정에 공감할 때 '상상력에 힘에 의해 관념을 인상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있다. 즉, 내 친구의 감정을 질적으로 유사한 인상으로 경험하게 되는 과정에서 '나라면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완벽하게 공감이 작동하지 않을 때도 분명 존재한다

경험주의자의 입장에서, 상대방이 특정 경험을 하지 못한 경우가 분명 있을 수 있다. 경험과 관찰을 통해 공감이 형성되는 전제 조건을 생각해 보자.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경험을 관찰하거나, 관련된 상황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공감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일반적 규칙(General Rules)이 있다.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안내하는 규칙으로, 경험의 차이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준다.



데이비드 흄은 어느 철학자보다 도덕 판단에 감정을 중시했다. 도덕적 판단이 감정의 산물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철학을 인간 본성에 대한 귀납적이고 실험적인 과학으로 생각한 그는 존 로크의 인식론을 바탕으로 감정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경험을 넘어서는 어떤 것에 대한 지식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인간은 이성보다는 감성적이고 실용적인 감정을 지닌 생물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는 아이작 뉴턴의 과학적 방법을 철학에 적용하려 하며, 철학을 인간 본성에 대한 경험, 실험적 과학으로 간주하였다.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를 통해 이를 읽어 볼 수 있다.


훗날 칸트는 흄의 경험적 지식의 한계를 비판했다. 흄의 회의주의가 인간 지식의 기초를 흔들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극복하고자 자신의 비판 철학을 발전시켰다. 결국 그의 철학은 그 이후에도 많은 철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확인한 흄의 철학 덕분에 큰 위로를 받고 글을 마무리해 본다.




참고자료


Scottish Philosophy in the 18th Century, 2001.06.27, SEP

<감정의 자유>, 주디스 올로프

<감정의 철학 수업>, 겐카 도루

Thinking about the Emotions: A Philosophical History, 2018.01.06, Reviewed by Simo Knuuttila, University of Helsin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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