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를 잃어버린 것 같아요
카페인우울증이라는 말을 알고 있는가? 처음에 들었을 땐, 나처럼 커피를 많이 먹는 사람들이 앓는 우울증이겠거려니 생각했다. 대부분 불면증과 연관되어 있으리라 추측했다. 하지만 알지 못했던 '신조어'였다. 아래 질문을 통해 우선 <카페인우울증>이 무엇인지 유추해 보자.
1. 소셜 미디어에 접속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2. 가족, 친구와 있을 때도 수시로 소셜 미디어를 확인한다,
3. 소셜미디어에 업로드한 글에 좋아요, 댓글이 없으면 초조하다.
4. 좋아요 수가 적으면 우울하다.
5. 다른 사람의 글, 사진을 보고 잠 못 잔 적이 많다.
6. 예쁘다/ 잘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소셜미디어 업로드용 셀카를 하루에 한 번 이상 찍는다.
7. 소셜 미디어에서 내가 몰랐던 맛집/명소가 뜨면 유행에 뒤처지는 느낌을 받는다.
8. 소셜미디어에서 사진으로 본 음식점/여행지에 일부러 찾아간 적이 있다.
9. 비싼 음식을 먹을 땐, 사진을 찍어 올리고 싶다.
10. 사진 찍기 전에 누가 먼저 먹으면 짜증이 난다.
0~3개: 별다른 문제가 없어요.
4~6개: 가벼운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7개 이상: 우울증 혹은 소셜미디어 중독이 의심됩니다.
조금은 감이 오는가? 카페인우울증은 소셜미디어 사용량 증가로 인해 생긴 신조어다.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앞 글자를 딴 줄임말로 타인과 나의 일상을 비교하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우울감을 의미한다. 소셜미디어에서 친구의 행복한 모습이나 성공적인 삶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우울증 100만 명 시대.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이름이다. 환자 수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진료비 또한 5천억 원이나 늘어났다. 그만큼 사회적 비용 또한 증가한 것이다. 비율 중에 20대 여성이 우울증을 제일 많이 앓고 있다. 트렌드에 민감한 나이이자, 여성들에게 있어서 소셜미디어는 일상생활에 매우 깊게 침투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고립되기는 두려워하는 인간의 심리를 십분 활용하여 마케팅을 하기 시작한 게 바로 홈쇼핑의 전략이다. 매진 임박이라는 멘트를 통하여 소비자의 구매를 유도한다. 나 말고 모든 사람들이 구매하는데 '당연히 나도 사야지'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전략이다. 다른 말로 FOMO증후군이라고도 한다.
'Fear of Missing out'의 약자로 소외되는 것에 대한 불안 증상을 말한다. 소셜미디어가 생기면서 더 빨리 더 새로운 정보를 강박적으로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포모(FOMO) 증후군을 시작으로, 카페인우울증으로 건강이 악화된다.
20대 여성이 우울증이 제일 높은 이유 또한 카페인증후군과 깊은 연관이 있다. <2020 인터넷 백서>에 따르면 SNS를 매일 쓴다고 답한 비율은 10대(81.5%), 20대(74.9%), 30대(69%), 40대(62.5%), 50대(61.3%), 60대(44.1%) 순이다.(서울연구원) 게다가 젊은 세대는 유년기부터 디지털 환경을 경험하면서 디지털 의존이 심해진다. 이는 정체성 확립이 되기도 전에 '타인과 비교'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탓에 정서 조절 능력이 떨어진다.
타인과 비교하는 마음이 커지면서 나 자신으로의 기준이 사라진다. 나만 빼고 다 행복해 보이는 탓에 나 삶이 초라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히는 상황에 처한다. 좋아 보이는 모습을 따라 할 때부터 뭔가 잘못되었다. 결국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는다. 그것도 모르고 시간이 지속된다. 시간 낭비를 하게 되면서 공허한 마음이 든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 땐 이미 늦어버렸다.
인스타그램 안에서 좋아요수나, 댓글을 많이 받고 싶어서 팔로우수가 많은 사람을 따라 하다가 '나와 맞지 않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포기했다. 인정욕구를 채우고 자존감을 높이고 싶었지만 허물 뿐인 이미지에는 나라는 사람의 진심이 보이지 않는다. 타인의 반응을 의식하기보다 내 진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우리의 일상적 삶은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 하면서 자아 연출하는 공연과 같다'는 고프먼의 자아연출론은 소셜미디어에서 확실히 작용한다. 사진 뒤에 숨어 내가 하는 이야기를 스스로 연출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진짜 나와 보이는 나를 헷갈리기 쉽다. 오프라인에서의 나와는 완벽하게 다른 온라인에서의 나를 만들어 내면 정체성에 대한 착각이 쉬워진다.
내 손안에 세계를 공고하게 만들어준 스마트폰을 보고 호주 출신의 철학자 데이비드 찰머스는 이런 말을 했다. "아이폰은 이미 자신의 마음의 일부가 되었다."라고 말이다. 이미 소셜미디어가 나의 뇌가 되어버려서 나 스스로 어느 것도 판단하지 못할 때부터 자기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나아가 나의 존재를 의심한다.
지난 6월 한 달 동안, 쇼츠 중독에 빠져 살았다. 상반기 동안 외부 출장을 다녀오느라 힘들었다는 명분 하에 도파민에 찌들어 살길 몇 주. 거울에 비친 내 눈을 바라보고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자기 통제력을 잃어버린 나는 결국 거울 속에 비친 나는 내가 아니라고 말했다. 지금의 못난 나는 내가 아니라는 큰 착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존재에 의구심을 품고, 공허해진 나에게 <존재와 시간>을 쓴 하이데거가 해 준 이야기는 이렇다.
인간은 지금, 여기에 사는 현존재(Dasein)다. 곧 실존을 뜻하는 것으로 존재 방식을 의미한다. 인간 없이는 세계가 없다. 실존하는 현존재의 구성틀은 바로 '세계 내 존재'를 하나의 단일적인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자기 자신의 실존으로 인해 존재하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내 삶을 이해하게 되는 것과 같다.
현존재는 비본래적 실존과 본래적 실존으로 분류한다. 비본래적 실존은 생활세계에서 몰입하는 방식으로 타인(세인)이 지정해 주는 존재를 아무 저항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사는 방식이다. 반대로 본래적 실존은 자신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방식으로, 나의 삶의 목적을 실현해 나가며 존재한다. 결단의 순간을 실현해 나가며 자기 자신으로 살아야 한다. 현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 삶의 목적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카페인 우울증에 걸린다는 건, 소셜미디어 안의 생활세계의 타인의 모습에 초점을 둔 것이다. 자신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문제 삼으며 본인의 가장 고유한 가능성을 구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끊임없이 나에게 집중하면 카페인이라 불리는 소셜미디어는 나에게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
앞서 설명했던 비본래적 실존 상태가 바로 격차성과 같다. 곧, 일상적인 삶에서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서 갖는 관계적 성격을 일컫는 말이다. 부지불식간에 서로 경쟁적으로 되는 과정에 노골적이거나 은밀한 시기심이 생긴다. 격차성이 지배하는 삶을 살게 되면 현존재는 익명의 타인에게 예속된 채 타인들의 변덕에 휘둘리게 된다. 특히 카페인우울증을 앓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가치를 외부 기준에 맞추려 한다. 이 과정에서 점점 더 고립된
일상적인 삶에서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서 갖는 관계적 성격을 격차성이라고 부른다. 보통 사람들의 의식하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서로 경쟁적으로 된다. 그 사이 노골적인 혹은 은밀한 시기심이 지배한다. 이 경우 사람들은 타인과 비교되는 자기 자신을 강하게 의식하면서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전적으로 구별되는 하나의 고립된 주체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격차성이 지배하는 삶에서는 현존재는 자신의 삶의 주체가 아니라, 사실은 익명의 타인들에게 예속된 채 익명의 타인들의 자의와 변덕에 의해 휘둘리게 된다. 또한, 격차성에 사로잡히게 되면 타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상실하고 빈말과 호기심의 표면적 성격에 머무르게 된다.
앞서 말한 본래적 실존을 지향하게 되면 정신적으로 성숙한 현존재가 될 수 있다. 기준이 타인에서 벗어나 생각하는 내가 된다. 상대방에게 현존재의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발견하고 책임지게 된다. 이를 다른 말로는 배려라고 한다. 소셜미디어에 중독된 사람들은 자기 공허함을 숨기기 위해 빈말을 하거나, 허상적인 이미지를 쌓아나간다. 반대로 현존재에 집중하는 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배려를 할 수 있다.
신학자가 되고 싶었던 하이데거는 당시 독일 철학의 독창성을 높인 철학자다. 존재 자체를 궁리한 그는 실존철학 외에도 현상학, 해석학, 포스트모더니즘, 비판철학 등 광범위한 분야를 탐구한 학자다. 그는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으로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존재와 시간>에서 그는 존재, 즉 있음(Being)에 대한 의미에 물음을 던진다. 그가 활동하던 20세기 초중반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있었던 시기다. 이 때문일까? 현대 기술 문명이 인간 존재를 소외시키고 더 나아가 인간을 소모품으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문제도 이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 존재의 본질을 회복하는 일. 예나 지금이나 하이데거가 바라는 일일지도.
내가 누구인지 모를 때 제일 좋은 방법은 바로 '일기장'을 열어보는 거다. 며칠 전에 썼던 혹은 한 해전에 썼던 일기장을 열어보면 그때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때의 나의 현존재는 어땠는지 이해한다. 나부터 이해해 보자. 시선을 바깥에서 나에게로 돌리는 작업을 시작해 보면 어떨까?
참고자료
<SNS 문화 속 '자기 내러티브' 연구>,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논문, 석가
남 부러워 마음 뒤숭숭하면... 당신도 '카.페.인 우울증'
이 앱 켜고 '카페인 우울증' 걸려... 국민 절반이 위험하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현존재>, 김종두 저
<존재와 시간>, 마르틴 하이데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