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모든 선택이 정답이다!
바야흐로 대퇴사의 시대다. 연차를 쌓고 이직하는 것뿐만 아니라, 신입사원의 조기 퇴사 또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약 20% 정도가 1년 이내 퇴사하고 있다. (2022년 기준) 2년이 지난 현재,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 기대와는 다른 업무 환경 때문에 퇴사한다. 지나치게 많은 업무량을 버티지 못한다. 준비 운동 없이 입사한 신입사원은 빠르게 지친다. 온보딩 없이 회사를 입사하게 되면 업무 숙련 기간이 없어진 채 일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자질을 의심하기 쉽다.
2.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를 찾는 경우도 있다. 입사 전에는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서, 혹은 재미있어 보여서 들어간 직종이 맞지 않을 수 있는 확률도 있다. 이 과정에서 직무 전환이나 이직을 쉽게 고려하게 된다.
3. 회사의 문화나 분위기가 맞지 않아서 퇴사를 고려한다. 흔히 말하는 조직문화가 좋지 않은 경우, 일이 재미있더라도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다가 퇴사하는 경향이 있다.
4. 내가 이 회사에서 성장할 수 있을까 의심이 된다. 한 해가 지났음에도 같은 일을 하는 기분이 든다. 명확한 커리어 발전 경로가 보이지 않는다. 즉, 배울 선배가 없다면 회사에 남아 있어도 내가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긴 어렵다.
5. 워라밸이 맞지 않는 업무 환경이 부담스럽다. 야근이 일상인 경우, 개인적인 시간이 사라진다. 나에 대한 잠깐의 생각도 허용하지 않는 회사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유연한 근무를 할 수도 없고, 재택근무도 없는 회사의 업무 환경이 자유로운 나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신입사원은 지금 하고 있는 일로 '나를 정의 내린다'. 처음 회사에 입사하면서 온 세상이 회사를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기존에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쉽게 잊을 수밖에 없다. 일을 잘하든 못하든 회사에서의 내가 곧 나라는 정의를 내리는 순간부터 나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분명 우린 오랜 기간 취업 준비한 끝에 보람을 얻고 싶다. 하지만, 팀의 상황, 상사의 상황 등 외부 상황에 휩쓸리기 쉬운 조직 내에서 보람을 느끼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자유롭지 못하다. 앞의 이유처럼 회사의 문화, 분위기에 따라 나의 의견을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취미를 즐기며 나의 취향을 누리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자유로운 선택에 제약이 생긴다.
그 지난한 여정을 거치고도 어렵게 입사한 신입사원들의 퇴사. 나부터 시작해서 사회현상으로 굳어버릴 정도로 많은 이들이 퇴사를 결심한다. 앞서 말했듯 퇴사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들의 선택은 쉽지 않았다. 스트레스로 시작하여 공황장애, 우울장애까지. 견디는 시간 안에서 큰 아픔이 생겨버린 그들에게 어떠한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간다. 퇴사를 결심한 이들에게 사르트르라면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처음 멘트는 뼈 맞은 것처럼 아플 수 있지만, 따뜻한 면모를 지닌 그의 목소리를 잘 들어보자.
선택의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 퇴사를 선택한 건 오롯이 나의 몫임을 받아들이자. 회사의 팀원 때문에, 혹은 분위기 때문에, 선배 탓이라는 말로 회피하는 것은 나의 선택을 타인의 책임으로 미루는 행동임에 틀림없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으면서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
퇴사한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에 눈치를 본다. 다시 취업 레이스에 뛰어든 경우, 고용주의 기준에 나를 맞추고, 그 삶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또한, 내가 진행하는 일에 맞춰 삶의 정답이 결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삶의 의미는 누군가가 부여하는 게 아니다. 직업이 나의 자아와 일치하지 않아, 불편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 불편함을 인정하고 나아가 해소하는 힘을 스스로 길러야 한다. 곧 나에게 자유의지*가 있음을 인정한다.
퇴사하고 나오면 야생에 던져졌다는 말처럼, 퇴사한 이후가 불안해서 퇴사를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보고 사르트르는 이들을 '자기기만*'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처럼 본인의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유의지: 인간에게 주어진 필연적인 것, 인간 자체가 자유라고 말하였음
*자기기만: 자기 양심에 벗어나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일
결국 모든 선택은 나의 책임이다. 선택을 통해 실패도 성공도 할 수 있다. 끊임없는 실패와 성공의 과정안에서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즉, 인간은 기투하는 존재다. 기투(企投, Projet)는 프랑스어로 '앞으로 던져짐'을 의미한다. 뭐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나. 그냥 이 세상에 실존하게 된 것이다. 즉, 인간은 그냥 실존하는 존재자다. 다만, 현재를 넘어서 미래로 나를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앞서 모든 선택지가 정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누구에게 묻고 따지지 말고 나의 선택지를 찾아가라. 다만, 나의 선택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이 끼칠지는 고민하면서 말이다.
사르트르는 1905년에 태어났다. 실제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 시기를 겪으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었다. 끊임없는 전쟁으로 인해 심리, 사회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그 역시 실존적인 불안을 겪게 되었다. 특히, 제1,2차 세계 대전을 통해 전쟁 전후 재건 과정에서 청년들은 본인들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심각하게 겪었을 것이다.
기존에 살아오던 가치관, 세계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였고, 청년 스스로 삶에 대한 주체성과 책임감을 키우기 위해 실존주의가 필요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사르트르 스스로가 사회 상황에서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개인의 고유성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바로 '실존주의 철학'을 형성한 것이다.
2024년을 살아가는 지금, 우리는 자유의지에 따라 살아가고 있을까? 더 많이, 더 자주 소통하면서 자유를 잃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 스스로에게 기준이 있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사르트르의 마음을 전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 참고자료
<미치게 친절한 철학>, 안성헌 저, 행성 B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장 폴 사르트르
<서양철학사> 버트런트 러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