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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ul 17. 2024

신뢰를 쌓기 어려워요 [데카르트]

신뢰, 완전히 붕괴했어요


한동안 친구들은 내게 같은 인사말을 건넸다.

“거기 너네 동네 아니야?”


그들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두 블록을 지난 오피스텔 건물에 하나씩, <전세 사기 피해>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동네 20대 청년 한 명이 전세 사기로 괴로워하다가 자살을 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최근 소식도 놀라움의 연속이다. 여전히, 아직도. 임차인의 피해는 끝나지 않았다. 2024년 올해 상반기 전세 사기 규모는 2조 7000억 원을 육박하고 있다.



왜 임차인이 사기당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할까?


깡통전세의 뜻을 알아보고, 전세 사기의 수법을 찾아본다. 사기꾼에게 뒤통수 맞지 않겠다며 발버둥 치는 대상의 대부분 2030대 청년이다. 실제 피해자 비율도 10명 중 7명이 2030 세대 청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전세사기 피해 72%가 20·30대 청년… 무자본 갭투기 대다수, 뉴시스, 23.12.05) 피해자가 많았을 지난 한 해, 집주인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청년들은 2023년 한 해, 전세보다 월세, 매매로 집을 계약했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외롭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책임 없는 말


나 역시 갈등 상황이 두렵다. 갈등이 생기기도 전에 두렵다. 실제로 문제가 생기면 ‘결국 내 잘못‘이라고 여겼다. 남 탓을 하는 것보다는 내가 해결하는 게 마음이 편하니까. 한국사회는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개인의 의견보다 집단의 합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즉, 갈등 해결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기보다는 회피가 보다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결국 우리에겐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넘어가는 부작용이 생겼다.


어릴 적부터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이 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관용구가 아닐까? 무언가에 문제를 삼으면 ‘팍팍하게 군다’라는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주변 시선 때문에 문제를 쉽게 제기하지 못했던 지난 시간이 떠오른다. 문제를 미루다가 결국 나중에 눈덩이처럼 커진 문제를 해결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일단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더 이상 파헤치면 더 피곤해진다는 사회적 시선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조금씩 바뀌고 있다. 


결국, 문제를 직면하고, 솔직한 대응을 하는 게 모든 갈등 해결의 시작이다.



신뢰, 완전히 붕괴 되었어요


‘2023년 번영지수’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자본* 수준은 세계 167개국 중, 107위로 개인에 대한 신뢰가 매우 낮은 편이다. 사회적 자본은 구성원 간 협력을 가능케 하는 제도, 규범, 네트워크를 일컫는 말이다. 사회적 자본이 잘 확충된 사회일수록 국민 간의 신뢰도가 높다고 한다. 


한국의 2023 레가툼 번영지수 현황(자료=전국경제인연합회)



특히, 관계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 이로 인해 사회적 협력이 감소하고, 사회적 안전망이 악화되기 쉽다. 즉,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돕는 상호 부조* 시스템이 붕괴되기 시작한다. 마을 안에서 상부상조하며 아이를 기르던 모습은 사라지고, 더 나아가 가족 간에도 서로 기대거나, 기대하지 않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시대예보>의 송길영 작가는 이러한 모습을 ‘미정산세대’라고 일컬었다.


*상호부조론: 사회 진화의 근본적 동력이 개인들 사이의 자발적 협동 관계에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 

(러시아 철학자 크로폿킨)


앞으로는 다 돌려받지 못하거나, 원하는 만큼 돌려받지 못했다고 스스로 느끼는 세대가 나올 것입니다. 이들을 ‘미정산 세대’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조직과 사회에 많은 것을 헌신했다고 믿었지만, 그만큼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처한 ‘미정산세대’는 본인의 몫을 미래세대에게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준비하는 새로운 핵개인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시대예보>, 송길영


각자도생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나 스스로 나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커졌다. 결국 심리적인 불안감과 두려움이 증가하며 청년층의 스트레스 지수 또한 증가한다. 우울감이 심각해진 사람들은 신경정신과에 다니며 병을 치료하며 비용을 지불한다. 결국,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게 되는 셈이다.




신뢰가 사라진 사회에,

데카르트는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요?



삶의 여러 경험을 통해 우리는 쉽게 사람 더 나아가 사회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굳게 믿었던 어른에게 전세 사기, 취업 사기 같은 것을 당하면서 ‘믿을 놈 하나 없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한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내가 못나 보이고, 나의 쓸모를 의심하는 순간이 온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우리는 점차 타인과의 관계 형성을 두려워하고 사회 참여에 소극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결국 이는 개인의 고립으로 이어지고, 사회 전체의 연대감과 발전 가능성을 저해하는 악순환을 만들어 낸다. 


개인의 고립에서 사회적 고립으로 나아가 각자도생 하는 우리에게, 데카르트는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끊임없이 의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진실이라 믿었던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 나 역시, 내가 믿었던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한 때가 있었다. 기존에 진리라고 믿었던 선입견과 관점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바는 한 가지다. 내가 사고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 존재를 증명한다고 믿게 되었다. 곧,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지양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관용어를 듣고 너무 놀라웠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말은 나에게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 말이다.


방법은 이렇다. 우선 감각을 의심하자. 두 번째로 나의 실재에 대해서도, 마지막으로 물질적 보편성, 특성, 단순한 수학적 명제를 의심해 보자. 결국 의심할 수 없는 것은 '생각한다는 사실'과 '그것을 생각하는 말' 뿐이다. 진리에 이르는 방법은 오직 이성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신뢰를 쌓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의심하며, ‘신뢰할 수 없는 사회’라는 사실에 좌절해야 한다는 걸까? 내 말의 의미는 그게 아니다.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통해서 사회적 신뢰와 협력구조 구축이 필요하다. 성급한 판단과 선입견을 배제하고 명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복잡한 문제를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서 문제를 단순하게 접근해 보자. 점차 복잡한 것으로 나아가면서 순서대로 사고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없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명징하다: 깨끗하고 맑다, 또렷하고 분명하다)




데카르트는 급진적 회의주의자다.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살면서 그는 확실한 것을 찾고자 노력했다. 30년 간 일어난 종교 전쟁은 데카르트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골방에서 공부만 한 것이 아니라, 1620년도에는 부사관으로 입대하여 직접 전쟁의 참상을 목격했다. 전역 후, 연구와 집필에 전념한 그는 현실의 위기와 대결하며 회의론자로 거듭나기에 이른다.


그의 연구는 현대 철학자들에게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데카르트에 영향을 받아 칸트 또한 이원론을 기반한 철학을 내세웠고, 니체는 반대로 데카르트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확실한 것은 없다는 바를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사고와 이성을 중시한 데카르트는 계몽주의 시대의 대표 철학자이다.


언제부터인지 믿음 없는 사회로 전락해 버린 한국. 사회적 신뢰를 높이는 방법은 결국 '인간관계에 대한 믿음' 아닐까. 앞서 말했던 모든 이야기들은 앞뒤가 다른, 어른이 사라져 버린 한국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나만큼, 타인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란다. 나는 괜찮은 어른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뢰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겠지.




✔️ 참고자료

<방법서설>, 데카르트

<데카르트에서 들뢰즈까지>, 서울대학교철학사상연구소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송길영

[믿음 없는 사회… 韓 사회 신뢰도, 167국 중 107위], 최지은, 23.03.09, 더나은미래

[인천 전세 사기 피해 건수, 인구수 대비 최고], 김원진, 24.02.22, 인천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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