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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Aug 07. 2024

성장만능주의 괴물에게 [에리히 프롬]이 남긴 말

이렇게 안부를 물어요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 건 2주 전부터였다. 남편이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올라온 글을 읽어줬다. ‘구매한 컴퓨터가 취소되었다.‘는 문장이 신호탄이었다. 티몬과 위메프에서 시스템 오류로 정산 지연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심각한 상황이라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처음엔 [티몬•위메프 정산 지연에… 휴가 앞두고 ‘날벼락’]이라는 제목처럼 소비자 피해가 중점적으로 보도됐다.



다음누날, [“수십억 정산 밀려 파산 눈앞”… 입점 업체들 줄도산 우려]로 파산할 위기에 있는 중소기업이 시선에 들어왔다. 큰 피해를 본 몇 사업체들이 큐텐 그룹의 구영배 대표를 검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작은 소상공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이들의 정산을 기다릴 수 밖에는 없다. 그래서 티몬과 위메프 앞에 그들의 입만 바라보며 진을 치고 앉아있다.




왜 미정산 금액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을까?



티메프(티몬+위메프)의 미정산금액은 어림잡아 1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한 큐텐 구영배 대표는 '미정산금액을 어떻게 해결할 거냐'는 위원의 질문에 이런 대답을 남겼다. "우리가 최대한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 800억"이지만 "정산 자금으로 바로 쓰일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말씀드린다."라고 답변했다.


올해 2월에는 북미, 유럽 기반의 글로벌 온라인 쇼핑몰 '위시' 인수 대금으로 돈 4500만 달러(610백억 원) 자금이 들어갔음을 밝혔다. 이때, 일시적으로 티몬과 위메프의 자금까지 동원했던 것이다. 큐텐 그룹의 몸집 키우기를 위해 계열사의 자본을 유동적으로 사용하였다. 이미 2년 전부터 티메프의 자본잠식 상태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자행한 일들이다. 


그뿐만 아니다. 지난해부터 알리, 테무 등의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이 공격적인 마케팅을 자행하자, 그에 질세라 티에프도 과도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 모든 일은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위한 큰 그림에 불과했다. 쿠팡과 같이 미국 주식 시장에 상장됨으로써 더 높은 가치로 인정받기 위함이었다. 나스닥 상장만 된다면 자본잠식상태 또한 한 번에 해결될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결국 대규모 정산 및 환불 지연사태로 피해를 본 사람들은 일반 서민들이었다. 이들은 집단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이마저도 어려움에 처했다. 티몬과 위메프의 회생 신청으로 민사소송의 실효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돈이 최고야 Ⓒ 슈카월드 코믹스



결과만 좋으면 다 괜찮은 게 정말 맞아?


사태의 추이를 살펴보니, 한국 사회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 결과였다. 티메프의 정산이 늦어져도 나스닥 상장만 하면 '괜찮다'는 성장만능주의. 과도한 경쟁은 장기적으로는 재정적인 불안정을 초래했고, 투명하지 않은 기업 경영은 방만함을 넘어 이기적인 처사다. 늦어진 정산으로 인해 고스란히 피해를 본 중소기업 상당수가 부도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전자상거래,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소비자, 판매자들 또한 타 플랫폼에서의 거래를 소극적으로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사회적 신뢰도가 하락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불안은 더욱 가중되는 상황이다.


지금 한국 사회의 최고 가치는 단연코 '돈'이다. 돈이 많으면 행복이 보장된다고 믿는다. "한국인은 지나치게 물질중심적이며 사회적 관계의 질이 낮다."는 올해 나온 말이 아니다. 이는 2011년도에 심리학 교수 에드 디너가 한국을 보며 언급한 것으로, "이는 한국의 낮은 행복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라고 설명했다.


짧은 시간에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눈감고 귀 막을 수 있는 장치들이 매우 많이 생겼다. '결과가 좋다는 말'로 포장하면서 소수, 약자들이 피해를 보는 게 당연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하는 일,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렇게 사람들의 감정 또한 쉽게 무시당했다. 바로 한국 사회를 자살률 종주국 1위로 만든 이유 아닐까.


전국 만 19세~59세 성인남녀 1000명 대상 '현대인의 정신건강' 인식조사 Ⓒ 트렌드모니터



성장만 외치는 한국 사회에

에리히 프롬이 '잊지 말라' 고하는 말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이면 다 된다는 이기주의적 마음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삶의 방식이 과연 맞는 걸까? 의문을 가지다가 철학자 에리히 프롬이 떠올랐다. 사랑의 형태와 실천 방안에 대해 말해준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곤 <소유냐 존재냐>에서 끊임없이 소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파악한 구절이 떠올랐다. 지금의 한국 사회를 본 그는 이렇게 말해줄 것 같았다.


에리히 프롬 Ⓒ 구글


끊임없는 '소유욕'은 결국 물건이 나를 소유하게 한다.

소유적 실존양식으로 살게 되면 바로 '물질적 재산'과 '권력'으로 나를 정의 내리기 쉽다. 끊임없는 소비, 축적을 통해 만족을 얻고 싶어 하지만, 불안과 외로움을 더욱 가중시킨다. 소유를 지향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면 타인을 배제하고, 나의 재산을 지키는데 혈안 된다. 나의 재산을 지키고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것에만 집중할 뿐.


모든 사람들이 제각기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하는 한 계급은 형성되기 마련이고 따라서 계급투쟁도, 세계적 시각에서 보면 국제적 전쟁도 불가피한 것이다. 소유욕과 평화는 서로 배척관계에 있다.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소유욕을 가지게 되면 평화를 지키긴 어렵다. (그는 "소유욕과 평화는 서로 배척관계에 있다."고 설명했다.)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바로 경제체계의 발달이다. 이는 인간을 위해 무엇이 좋은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 그저 체계의 성장을 위해 무엇이 좋은가라는 물음에 의해 결정된다. 결국 인간은 도구로 쓰이고 수동적으로 변화한다.


존재하는 한, 능동성을 가지게 된다.

존재하는 자는 소유적 실존양식의 사람처럼 소유하려 탐하지 않는다. 본인의 능력을 생산적으로 활용하고, 능동적 활동을 추진하려 노력한다. 물론 모든 인간 내면에는 소유, 존재적 실존양식이 존재한다. 상반된 성향이 있을 때, 그중 한 가지를 선택하게 되는 건 사회경제적 구조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한국처럼 돈이 최우선의 가치가 된 사회는 소유적 실존양식을 조장하게 된다. 


존재적 인간은 나의 존재, 살아있음에 대해 고민하며 자아 탐구를 할 기회를 가진다. 이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체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존재하고자 하는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표출하려는 욕구', '활동하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는 욕구' 등이 있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사람은 연대하는 사람이다.


사적 소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존재하는 사람들은 같은 대상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아무도 그것을 소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랑, 기쁨, 슬픔 그리고 음악 모든 것들을 나눠 가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생명을 유지하고 경험할 기회가 부여된다.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으면서 또한 다른 사람으로부터 속지도 않는다. 천진하다고는 할 수 있으나 단순하다고 할 수 없는 인간이 된다. 자기 자신을 통찰한다. 자신이 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자기뿐만 아니라 자신이 모르는 자기까지도 통찰한다.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의 삶처럼 스스로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하는 삶을 살았다. 부모 모두 유태인이었고, 그들의 신앙에 따라 탈무드를 가까이에서 접했다. 12살부터 16살때 까지는 외증조부로부터 정기적으로 탈무드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탈무드: 유대인 율법학자들이 사회의 모든 사상에 대하여 구전, 해설한 것을 집대성한 책)


이러한 영향으로 에리히 프롬은 돈을 벌기 위해 경제활동을 하는 근대세계에 대한 관심보다는 정신세계를 자신의 고향으로 삼아 살았다. 제1차 세계대전의 비인간적인 사태가 납득하기 어려웠던 그는 법학을 공부하다, 심리학, 철학 그리고 사회학을 공부했다. 


신앙으로 유태교를 믿지 않았지만, 프롬은 자신의 사상을 유태교의 인본주의 정신에서 발전시켰다. 더 나아가 그는 꾸준히 본인의 삶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평화 운동을 위해 많은 시간을 쏟았으며 정치를 통해 사회를 바꾸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소유와 존재를 동시에 갈망한다. 소유보다 존재를 갈망해야 하는 이유는 올바르게 존재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사유한다. 어떤 마음가짐이 과연 '올바른' 마음가짐인지 따지다보면 종국에는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니까.


소유적 존재양식의 인간은 남들과 비교하여 자신이 우월하다는 데에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의식에서, 그리고 결국 정복하고 약탈하고 죽일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에서 행복을 발견한다.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 참고자료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티몬 위메프 정산 지연에... 휴가 앞두고 날벼락, YTN, 황보혜경, 24.07.24

"수십억 정산 밀려 파산 눈앞"... 입점 업체들 줄도산 우려, YTN, 황보혜경, 24.07.25

한 번에 보는 '티몬·위메프 사태'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디넷코리아, 안희정손희연, 24.07.29

[트렌드모니터] 한국사회 '삶의 행복지수' 100점 만점에 몇점?, 유지영, 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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