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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과 산책 Aug 07. 2023

9. 유쾌한 동행자

동행의 기술

 여행에서 '어디를 가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가느냐?'이다. 같은 여행지라고 해도 누구와 함께 하는지에 따라 여행의 색과 맛이 전혀 달라지는데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동행자는 유쾌한 동행자이다.  낯선 이국의 풍경들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사람. 예상밖의 일이 펼쳐졌을 때 유쾌하게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 피곤한 일정에도 유쾌한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과 함께 한다면 험난한 여행지도 웃음으로 채워질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내가 아이들의 유쾌한 동행자가 되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짐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지만 일단 내 마음이 그랬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한 때 나의 로망은 남자 둘에 여자 한 명의 조합으로 여행을 가는 것이었다. 청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릴법한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여행도 남자 둘에 여자 한 명의 조합이지만 아들 둘에 엄마 혼자인 조합은 가족물, 그것도 고난과 역경이 펼쳐지는 로드 무비에 가까웠다.


 나의 동행자 두 아들은 한 배에서 나왔지만 전혀 다른 캐릭터이다. 첫째가 꿈꾸는 몽상가 스타일이라면 둘째는 기분파 행동대장 스타일이고, 첫째에게는 털털한 매력이 있다면 둘째는 깔끔한 매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여행에서 종종, 생각보다 자주 두 아이는 투닥거린다. 엄마가 동행자 아들 둘을 데리고 여행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다툼이 일어났을 때 중재를 하는 일이다. 자칫 한쪽 편을 드는 것처럼 말이 나와버리면 다른 한쪽의 아이와 내가 싸우는 꼴이 되고, 두 녀석 모두에게 뭐라고 하면 2대 1일의 싸움으로 번지게 되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는 매우 사소하고 시답잖은 일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예를 들면 '누가 먼저 씻느냐?' 같은 일이다. '이런 일로 싸운다고?' 하며 이해가 안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내가 어렸을 적에도 이 문제는 동생들과 싸울 수 있는 민감한 사항이었다.

"니가 먼저 씻어!"

"내가 왜? 언니가 먼저 씻어!"

"싫은데?"

 "언니가 먼저 씻으면 되잖아!!!" 이런 식이다.

동생들과의 미묘한 갈등을 겪어 본 유경험자이자 유쾌한 동행자가 되기로 다짐한 나는 이런 사소한 문제를 즐겁게 해결하기 위해 루미큐브를 한 판 해서 이기는 사람이 씻는 순서를 정하자고 제안을 해봤다. 시도은 좋았으나 루미큐브가 의외로 빨리 끝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고, 진 사람이 상당히 억울해하며 게임의 결과에 승복하지 않아 결국 씻는 순서는 게임의 결과와 상관없는 경우가 많았다.



 유쾌한 동행자의 면모를 시험하는 사건이 아오낭에서 있었다. 아오낭에 도착한 다음날이었다. 오전 내내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반나절만에 벌겋게 익은 아이들과 점심을 먹으러 호텔 밖으로 나갔다. 햇볕은 뜨거웠지만 수영을 하고 난 다음이라 그런지 상쾌한 기분이었다. 길을 걷다가 해변가 상점에서 아이들이 여행하는 동안 편하게 신을 삼선 슬리퍼를 샀다. 비닐봉지에 담긴 슬리퍼를 각자 손에 쥐고 슬렁슬렁 걸었다. 바닷가에 왔으니 생선을 먹어봐야지 싶어서 구글맵으로 생선요리를 하는 식당을 찾아가 농어요리를 먹었다. 달찌근한 소스와 기름에 튀긴 농어의 조합이 제법 근사했다. 거리에서 디저트로 코코넛 아이스크림과 바나나 로띠도 사 먹었다. 달달한 기분을 만끽하며 아오낭 해변을 걷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그러나 달달함은 거기까지였다. "내 핸드폰이 어디 갔지?" 첫째 아이가 들고 있던 비닐봉지가 찢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그 비닐봉지에 핸드폰을 넣어두었다고 하는 아이의 말은 충격이었다. 핸드폰을 분실한 것이었다. 그것도 여행지에서.


"일단 뛰어!"


둘째 아이는 호텔에 있으라 하고 첫째 아이와 밖으로 뛰어나왔다. 우리가 왔던 길을 살피며 뛰었다. 아오낭 해변에서 핸드폰 찾기 위해 뛰어다닐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당황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며 해변가 상점에서 물건 파는 사람에게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니 옆에 계신 한 아저씨가 핸드폰 기종을 물어보셨다. 기종을 말씀드렸더니 툭툭 기사님들이 계신 곳으로 가보라고 하셨다. 찾을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 다시 뛰었다. 어딘지도 정확히 모르고 알려주시는 방향으로 뛰었다. 툭툭 기사님들이 모여 계신 곳에 도착해 다시 물어보니 핸드폰 기종과 생김새를 들으시고 자기 친구가 가지고 있다고 알려주셨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분과 통화를 하고 한참을 기다려 겨우 핸드폰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툭툭 아저씨를 기다리면서 첫째 아이에게 여행이 지루해질까 봐 이런 에피소드를 만들어준 거냐고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아이도 멋쩍게 웃었다. 뛰어다니느라 화낼 겨를이 없었던 게 다행이었다. 덕분에 나는 예상밖의 일이 일어났을 때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유쾌한 동행자가 되어주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핸드폰을 찾으러 뛰어다니며 다시 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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