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기술
여행을 하면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그리고 약간의 용기를 내어 숙소 밖으로 나선다. 첫 여행지 네팔에서부터 그랬던 것 같다. 낯선 도시의 풍경이 궁금한 탓에 생긴 습관이 아닐까 싶다. 습관처럼 나서는 아침 산책은 목적지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걸어 다니는 것이 아침 산책의 특징이다. 주머니에는 커피 한 잔을 마실 정도의 돈과 방열쇠가 있고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다. 아침의 도시는 이제 막 세수를 마친 친구의 얼굴 같다. 꾸미지 않은 모습이라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아! 물론 나도 세수를 하지 않고 아침산책을 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아침 산책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서 선뜻 시도하기가 어려웠다. 아침 산책은 혼자 하고 싶었고 여행 초반이라 혹시나 내가 산책하는 동안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할 수 도 있다는 걱정스러운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아오낭에 며칠을 머물면서 도시가 익숙해지니 '혹시나' 하는 마음보다는 '괜찮을 거야'라는 마음이 커졌다. 혼자만의 시간도 간절해질 시기였다. 아이들에게 전날 저녁 '엄마의 아침산책'을 미리 예고했다. 아침에 자다가 깼을 때 엄마가 없어도 더 자라고, 한창 클 나이에는 잠이 보약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아이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아들이 둘이어서 좋을 때가 언제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둘만 두고 아침 산책을 나가도 걱정이 덜 되는 순간이라고 말해줄 것이다.
아침 6시, 눈이 떠졌다. 옷을 갈아입고 조용히 호텔 방을 빠져나와 해변을 따라 걸었다. 기암절벽 너머로 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늘은 얼마나 뜨거울지 아직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물이 빠진 해변은 개장을 준비 중인 수영장 같았다. 밀물이 밀려와 바다가 찰랑찰랑해지면 오늘은 바다 수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해변을 달리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여행지에서 달리기를 한다는 하루키 씨가 생각났다.
낯선 도시에 가면 반드시 대중 술집에 가는 사람이 있듯이,
낯선 도시에 가면 반드시 여자와 자는 사람이 있듯이,
나는 낯선 도시에 가면 반드시 달린다. 달릴 때의 느낌을 통해서 비로소이해할 수 있는 일도 세상에는 있기 때문이다.
먼북소리 중에서. 179p
어떤 기분일지 맛보고 싶어서 걷는 속도를 올려 달려보니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맛이었다. 나는 걷는 편이 더 나았다. 아오낭 해변의 끝에서 끝까지 걸으며 시작하는 하루는 내 생에서 몇 번이나 될까? 그 생각을 하니 아오낭 해변에서의 산책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침 산책은 정말이지 평생 지속하고 싶은 습관이다.